쌍돛을 한껏 펼쳤다. 돌고 있는 물레는 지금 닻줄을 감는가 푸는가. 사람 반신은 족히 넘을 듯한 지름의 물레 다루기가 만만찮을 테지. 사내들은 한참 삿대를 버티고 있다. 강류와 직각을 이룬 뱃전으로 물결이 부서진다. 분주한 가운데 거룻배는 제 볼 일 본다고 고깃배에 붙어 있다. 거룻배에 실린 독 하나는 젓독, 하나는 소금독이다. 조선 후기에 점점 쓰임이 늘어난 조기젓·준치젓·밴댕이젓·새우젓 등은 고깃배에서 바로 받아 그 자리에서 소금 질러 갈무리했다. 질박한 젓독, 소금독이야말로 조선 후기 어업 부가가치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강의 흐름에 배를 맡긴 나룻배만이 고깃배 너머에서 한가하다.
조선 후기 화원 유운홍(1797~1859)이 남긴 풍경이다. 조선 시대 고깃배의 어로가 이랬다. 이 모습은 1930년대를 지나도록 한반도의 강과 그 하구, 그리고 연안을 수놓았다. 돛 하나짜리 배인 야거리, 야거리보다 큰 쌍돛배인 중선배, 중선배보다 큰 당도리 따위가 하구와 연안을 누비며 그물질을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둠벙과 계곡의 민물고기가 가장 만만했고 본격적인 고깃배의 어로는 하구와 연안의 수산자원에 집중됐다.
〈동아일보〉 1938년 7월27일자를 보자. 강화도 포구는 유운홍이 그린 고깃배와 그 생김새가 별로 다르지 않은 고깃배로 가득하다. 횟감으로 숭어·조개·준치·농어·민어·병어·고등어·뱅어· 웅어·가물치·붕어·새우가 거론되고 먹어온 대로 민물고기와 짠물고기가 뒤섞인다. 아무려나 취재 떠난 일행은 기어코 민어회를 먹겠다고 어선을 뒤진다. 예나 오늘이나 민어의 인기는 변함이 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려(1766~1822)의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이 있다. 주인공 장파총은 중년이 되도록 가난을 면치 못한 몰락 양반으로 이웃이 권한 대로 생선 장사에 나선 끝에 입신할 수 있었다. 당시 수산물 시세는 안 잡힐 때는 진주처럼 비싸고, 너무 많이 잡히면 흙덩이 값으로 폭락할 정도였다. 그만큼 상업화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장파총은 음력 3월 조기, 4월 도다리, 5월 준치, 6월 송어·연어알·전복, 7월 숭어, 8월 민어, 9월 농어, 10월 명태 하는 식으로 철철이 값나가는 수산물을 쫓아다녔다.
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얻은 수산물에 어떤 상상력을 더했을까. 장파총은 김제를 지나다 잉어회에 겨자장을 곁들인 밥상을 받았다. 겨자장은 회의 짝으로 가장 널리 쓰였다. 예컨대 홍만선(1643~1715)이 편찬한 〈산림경제(山林經濟)〉는 겨자장에 잘 어울리는 횟감으로 숭어·누치·쏘가리·은어·밴댕이· 웅어·민어·고등어·전복·해삼·대합·석화를 꼽았다.
힘들여 얻은 자원 귀하게 여기고 귀한 만큼 맛있게 먹으려는 궁리
초장도 일찍이 활용했다. 1670년에 쓰인 〈음식디미방〉은 대합회에 초장을 곁들이도록 했다. 고추가 조선에 들어오고 고추장이 퍼진 뒤의 〈고조리서(古調理書)〉에는 겨자장, 초장뿐 아니라 식초와 꿀로 맛을 더한 초고추장인 윤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동아일보〉 1931년 5월21일자 ‘생선회 만드는 법’에 따르면 웅어회는 막걸리에 빨아 고추장을 곁들이고, 밴댕이회에는 고추장, 조개회에는 파와 고춧가루로 먼저 양념을 한 뒤 겨자 또는 고추장, 전복회에는 초장을 곁들이면 좋다고 했다.
이런 궁리가 회의 질감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데를 향하기도 했다. 생회에 대해서 횟감을 데쳐 식감을 달리한 숙회가 따로였다. 녹말을 생선살에 묻힌 뒤 데치는 방식도 있었다. 민어·건대구·약대구 등은 수분 조절과 숙성을 거쳐 이색적인 질감과 풍미를 더한 횟감이다. 힘들여 얻은 자원, 귀하게 여기고, 귀한 만큼 맛있게 먹으려는 궁리는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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