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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른이 된 친구의 얼굴

2018년 04월 27일(금) 제553호
김현 (시인)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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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란 얼마나 많은 행위의 연결에 관해 몰두하는 사람인지. 헤어질 때 여러 번 손 흔들지 않고 돌아서는 친구의 담백한 얼굴은 혼자를 책임질 줄 아는 얼굴이었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친구가 지어 보였던 표정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10여 년 동안 어울려 지내면서도 좀처럼 보지 못한 친구의 얼굴이었다. 항상 어리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익힌 덤덤한 표정은 굳이 소리 내지 않고도 말하고 있었다. ‘이제 혼자인 시간이 익숙합니다.’ 말하자면 그 얼굴은 어느새 어른이 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시사IN 이명익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익힌 덤덤한 표정은 굳이 소리 내지 않고도 말하고 있었다.
‘이제 혼자인 시간이 익숙합니다.’

일주일간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여행업에 종사하는 친구가 있어서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문에 더 가까웠다. 휴식과 식도락 관광이 주요한 계획이었지만, 그보다 여행을 핑계 삼아 타국에 사는 친구의 살림살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휴가를 얻어 한국에 올 때마다 듣게 되는 친구의 외국인 노동자 생활 얘기는 무턱대고 씩씩하기만 한 것이라서 진짜 그런가 싶은 의문을 늘 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 풀기가 무섭게 거의 티 나지 않게 등을 떠밀어 친구의 자취방으로 갔다. 좁은 원룸 한쪽에 빨래를 널어둔 빨래 건조대가 보였고 미니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장·냉동 칸에 한국산 인스턴트식품들이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게, 그 보통의 풍경에 마음이 놓였다. 똑같구나. 거기나 여기나. 친구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 그제야 친구의 얼굴에 드리운 이방인의 그늘이, 친구의 언어에 담긴 노동자의 고단이 보이고 들렸다. 현지 식당에 들어가서도 베트남어로 음식을 주문할 줄 아는 이가 된 친구의 적응력과 노동의 온갖 피로를 ‘존나’라는 단어에 집약시킬 줄 아는 친구의 언어 습관은 이상하게도 나와 친구 사이의 거리를 더 좁게 만들었다. 수년 전, 타국에서 벌어먹는 삶을 선택하고 시작했던 친구의 첫 얼굴이 떠올랐다. 미래에 대한 설렘보다 불안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20대 후반의 얼굴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스러웠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친구인 나를 보면서 친구는 드디어 어른스럽게 인생에 관해 귀띔할 줄 알았다.

어른이란 어떤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일까.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되는 일이나 속내와는 다른 감정을 표출하는 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길 줄 아는 온유함, 지금 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단호함, 나의 생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가늠해볼 줄 아는 상상력…. 어른의 기본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책임을 스스로 물을 수 있고 책임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으며 책임에 관해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란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행위의 연결에 관해 몰두하는 사람인지. 떠나가는 친구를 향해 여러 번 손 흔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 돌아서는 친구의 담백한 얼굴은 혼자를 책임질 줄 아는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은 오래 살아남는다.

당신은 헤어질 때 어떤 표정을 짓습니까

배워서 만드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히 만들어지는 얼굴도 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얼굴은 배워야 나타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며 살아온 얼굴은 그 자체로 예의 바르다. 전자가 어른스러운 얼굴이라면, 후자야말로 어른의 얼굴. 어른스러운 얼굴이 감정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얼굴이라면, 어른의 얼굴은 감정의 기복으로 축조된 얼굴이다. 타국살이 수년 동안 친구의 얼굴에 쌓인 것은 어떤 허물어짐의 결과일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방증하는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헤어질 때 어떤 얼굴을 하게 되는가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른이란 나이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당신은 헤어질 때 주로 어떤 표정을 짓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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