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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싱크탱크 탄압? 진실은 이렇다

2018년 05월 01일(화) 제554호
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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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미연구소 사안과 관련해 김동석 미국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가 글을 보내왔다. 그는 2007년 미국 의회의 ‘121결의안(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아베 일본 총리가 2015년 워싱턴을 방문했다. 필자는 당시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했다. 일본 정부 지원을 받는 싱크탱크나 로비스트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한국계 싱크탱크들은 정중동이었다. 화가 나서 한국 중앙 일간지 소속 한 특파원을 만나 한국계 싱크탱크들은 뭘 하는지 물었다. 그는 특파원으로 부임하며 특별히 한국계 싱크탱크에 관심이 많았다. 이 특파원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한미연구소(USKI)와 한미경제연구소(KEI) 문을 닫는 게 낫다. 대미 공공외교 강화를 위해 존치가 필요하다면 환골탈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10년 이상 풀뿌리 활동가로서 경험한 한미연구소나 한미경제연구소에 대해 내린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의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들려왔다. 한미연구소 연구원의 지인은 이렇게 전했다. “2~3년 전에 한반도 전문 외국 언론인이 북·미 관계와 한·미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한미연구소에 1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내고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왔다. 하지만 연구소 측 지원도 없고, 연구할 여건도 안 된다고 판단해 6개월 만에 워싱턴의 다른 연구기관으로 떠났다.” 한미연구소의 전 직원은 “운영을 책임진 2~3명이 학교(존스홉킨스 대학)의 지휘 감독에서 벗어나 운영을 좌지우지했다. 한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소를 개인 회사처럼 운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위)은 2007년 1월부터 재직해왔다. 일부 보수 신문은 ‘그를 찍어내기 위해 청와대 압력으로 예산 지원이 중단되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런데도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보수 신문은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을 찍어내기 위해 청와대 압력으로 예산 지원이 중단돼 문을 닫게 되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현장에서 보기에 보수 언론의 이런 지적은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존스홉킨스 대학조차 한미연구소 운영이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후 미국이 맡게 될 국제적인 여러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1943년 워싱턴에 설립한 대학원이 SAIS다. 독립된 전문대학원으로 설립되었다가 1950년 존스홉킨스 대학에 편입되었다. SAIS의 강점 중 하나는 지역학 및 언어 프로그램이다. 특히 아시아학은 미국 내 다른 어느 대학보다 뛰어나다. 아시아학은 중국학·일본학·한국학·동남아시아학·남아시아학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학도 석사학위가 수여되는 미국 내 몇 안 되는 국제대학원 중 하나다. 한국학 전공자는 평균 2년에 한 명 정도 국무부에 진출한다. 아울러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 규모도 한국학 전공자를 포함해 매년 30~40명이다.

논란이 된 한미연구소는 바로 이 SAIS 산하 부설 연구소다. 2006년 한·미 동맹 관계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 정부나 SAIS는 연구소 설립을 통해 한국학과 프로그램 강화를 바랐다. 한국 정부가 한미연구소를 지원하는 목적도 SAIS의 한국학과 측면 지원이었다. 존스홉킨스 대학도 한국학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데 한미연구소가 기여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설립 직후인 2007년 1월부터 소장으로 재직한 구재회 박사는 정식으로 임용된 교수가 아니어서 학과와 통합 운영이 불가능했다. 결국 정부 지원금은 애초 계획과 달리 한미연구소에서 받아 그 안에서만 소화되었다.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한미연구소가 연구 실적도 저조하고 운영도 불투명했다는 점이다. 한미연구소의 전 직원은 SAIS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에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이 중단된다는 보고가 있자마자, 학교 측(SAIS)이 곧바로 한미연구소 폐쇄 결정을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한미연구소 예산을 지원한다. 그런데 그동안 관리 감독이 부실했다. 10여 년 동안 구재회 박사가 소장을, 비한국인 제니 타운 씨가 부소장을 맡았다. 한미연구소의 전 연구원은 “명목상 운영위원회가 있지만, 소장과 부소장이 실질적인 운영을 했다. 예산 집행은 제니 타운 부소장이 혼자서 다 했고, 구재회 소장도 비용이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KACE
김동석 상임이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21결의안’ 채택을 도운 교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은 왜 연구소를 폐쇄했나

한미연구소는 초기 한국 정부로부터 6억원가량 지원을 받기 시작해 지원금이 꾸준히 늘어 매년 20억원 가까이 지원을 받았다. 큰돈이 지원되지만 한미연구소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연구소의 ‘주력’ 사업이 있다. ‘38노스’라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다. 이것 말고 한미연구소가 자체 발간하는 연구 실적은 미미하다. 한미연구소가 개최하는 콘퍼런스나 세미나, 포럼도 한·미 동맹 강화나 공공외교에 기여한다고 보기 힘든 주제가 많다. 그래서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서도 한미연구소가 설립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점점 커져왔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한·미 관계와 관련해 집중해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다. 2007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추진할 때 한미연구소와 한미경제연구소 존재를 처음 알았다. 일본계 싱크탱크와 로비스트들은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한국계 싱크탱크를 찾다 두 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도움을 바라며 몇 차례 접촉을 했다. 하지만 두 연구소 모두 결의안 채택에 관심이 없었다. 동시에 싱크탱크로서 어떤 기대를 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후에도 한미연구소는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이 잠시 워싱턴에 머물기 위한 쉼터 구실을 했다. 이것이 불투명한 운영에도 불구하고 한미연구소가 문을 닫지 않고 큰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뒷배경’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유력 정치인·관료·언론인을 방문연구원으로 받아들여 인맥을 구축한 것이다. 필자는 워싱턴에서 활동하며 SAIS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한미연구소에 예산을 지원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찾아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한국 국회가 한미연구소에 매년 20억원 이상씩 국민 세금을 가져다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고하라는 조건을 달아 예산 지원을 통과시켰다. 국회 차원에서 불투명한 운영을 문제 삼은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포함해 26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한미연구소 운영진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돈을 주면 그만큼 일을 하는지, 제대로 공정하게 쓰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게 맞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 ‘미국 싱크탱크의 성향 검열’ ‘학문의 자유 침해’라며 본질을 흐려 보도했다. 미국에 있는 한국 특파원이라면 한미연구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예산도 불투명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사실은 존스홉킨스 대학은 한국 정부가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는 이유보다, 학교가 요구하는 학문(연구 실적)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에 한미연구소 폐쇄를 결정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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