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➆ 성기완

 

몇 년 전 내가 머물던 제주 김녕에 성기완이 휴가차 찾아왔다. 8월 어느 날의 평화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그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요즘 50살이 된 로커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돼.” 담담한 말투였지만 평소 그답지 않게 어딘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17년간 몸담아왔던 밴드를 그만두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시간이 좀 흐르고 서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밴드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시 보게 되어서 기쁜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져 따라 웃게 되는 바로 그 웃음.

그가 올해 초 선보인 밴드 앗싸(AASSA) 음악은 ‘아프로 아시안 뽕짝’이라는 곡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프리카 비트에 사이키델릭 록·알앤비·솔·프리재즈에 트로트 등을 말 그대로 융합한 음악이다. 아프리카 음악이라니. 무엇이 그를 이렇게 계속 새롭고 흥미로운 작업을 연이어 하는 아티스트로 만들었을까. 지금껏 시집 4권을 발표한 시인이기도 한 성기완을 만나 그의 유연한 변신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들어보았다.

 

ⓒ성기완 제공밴드 앗싸의 멤버 성기완, 한여름, 아미두(왼쪽부터). 앗싸는 4월28일 서울 홍대 앞 클럽 벨로주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이기용:아프리카 음악을 하게 된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성기완: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뿌리〉라는 외국 드라마를 보았다. 아프리카의 추장 아들인 쿤타킨테가 미국에 끌려와 학대를 받는다. 그가 어느 날 탈출해서 도망가다가 붙잡혀 엄지발가락을 도끼로 잘리게 된다. 그때부터 쿤타킨테가 다리를 절뚝이게 되는데 흑인들의 서러운 삶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쿤타킨테의 고향이 바로 내가 전에 방문한 말리, 서아프리카 쪽이다. 그 후로 흑인음악은 무조건 그 영화랑 연관이 된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게 뼛속 깊이 있다.

이기용:아프리카 뮤지션과 멤버를 이뤄 작업하고 있는데,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나?

성기완:곡은 내가 만들지만 비트는 아프리카 뮤지션 아미두가 담당한다. 아프리카 뮤지션들은 비트의 천재들이다. 나는 4분의 4박자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자세히 봤더니 그 친구는 8분의 6박자로 다르게 연주하고 있더라.
좀 당황스러웠지만 아미두가 갖고 있는 비트에 대한 상상력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끼리 나오는 에너지가 우연히 겹치는 과정이 밴드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기용:이번 앨범이 본인의 12번째 정규 앨범이다. 시인이고, 동시에 아프리카 음악을 한국에서 하는 뮤지션이다. 가사도 전과는 달라졌을 것 같다.

성기완:이번 앨범은 가사가 5개 국어 (한국어·영어·프랑스어, 시아무어· 밤바라어 등 아프리카 언어)로 되어 있는데, 듣는 사람한테는 가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말은 나한테 결국 사운드로밖에 들리지 않고, 아미두한테는 우리 가사가 사운드로 들린다. 이번 가사는 단어를 가지고 놀이하는 식으로 바뀐 것 같다. 가사는 아무리 뜻이 중요해도 발음이 음악적이지 않으면 별로이지 않나. 그리고 아무 의미가 없어도 음악 안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가사일 수도 있다. 그 외에 민요도 참고했다. ‘얼싸 좋네’ 하면서 주고받는 그런 관용구 위주로 많이 생각했다. 아프리카 음악이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용:‘언어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을 할 때도 시인의 태도로 임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시인의 태도라는 말의 의미는?

성기완:한마디로 얘기하면 오작동이다. 시인의 태도라는 것은, 사회적인 오작동을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주요 임무다.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 같은데, 일종의 예술적인 노이즈를 생산해내는 것, 그게 시인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기용:본인의 가사 중에서 유달리 애착이 가는 것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성기완:나는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달이 뜨지 않고 네가 뜨는 밤. 지나가는 흰 구름이 쓰는 이름’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실 실제로 그 밤에 어떤 사람이 생각났는데, 구름이 그 이름 모양이랑 비슷하게 보였다. 또 ‘붉은 눈시울 망초, 뜨거운 피 귀뚜리피리’ 이런 말들이 어떤 순간에 입으로 돌돌돌 예쁜 발음이 되어 나왔다. 그런 소리와 비일상적인 이미지들이 연결되는 아주 드문 순간이었다.

이기용:이번 앗싸의 앨범에는 ‘아프리카 비트’ 위에, 사이키델릭 록·리듬 앤드 블루스·솔·트로트·프리재즈 등 다양한 소리들을 유쾌하게 섞어놓았다. 성기완의 음악적 여행은 여전히 상승 곡선을 그리는 듯이 보인다. 그 유연한 동력은 어디서 오나?

성기완:동생들이 넷이나 되다 보니 어릴 때 ‘얘들이랑 뭘 하고 노나’가 큰 문제였다. 동생들과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잘 놀아보는 게 너무나 중요했다. 되도록 사람들과 즐겁게 있으려고 하는 경향은 역시 대가족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심지어 우리 아버지는 피란을 갔는데 폐결핵에 걸려서 각혈을 하는 와중에도 친척들과 깔깔대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극으로 발표했다. 6·25 때 너무 잘 놀았다고 하시더라(웃음).

이기용:음악을 듣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시로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여행과도 같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만난 80세가 넘은 뮤지션도 ‘음악은 여행이다’라고 했다던데?

성기완:아프리카 말리에도 라이브 클럽들이 모여 있는 홍대와 같은 거리가 있다. 거기 벽에 밥 말리, 제임스 브라운 등의 이름이 쭉 쓰여 있다. 그런데 ‘백인’ 뮤지션인 롤링스톤스가 쓰여 있는 것이 의아해서 물었더니, 그분이 ‘그 음악들은 아프리카 음악이 여행 가서 퍼뜨리고 온 자식들이다’라고 하더라. 아프리카 노예들이 퍼뜨린 음악이 블루스를 비롯한 서양음악의 원류들이니까, 지금 자기 귀에 들리는 음악은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걸로 생각되는 것 같다. 흑인들의 역사는 일종의 디아스포라 같은 것이었지 않나. 그런 뼈아픈 강제 이주를 통해서 전파되기 시작한 그 문화가 지금 동양의 끝에 있는 우리 음반에도 들어와 있는 거다.


이번 앗싸의 음반에서 엿보이는 아티스트 성기완의 모습은 흙을 가지고 장난치며 노는 어린아이의 유연함이다. 그는 흙을 빚는 아이처럼 즐겁고 유연하게 소리를 조합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 자신이 여행이라도 떠난 듯 조금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 든다. 그의 음악은 ‘우리 인생에 기쁨의 음악이 울려 퍼지길 바란다면 그렇게 뻣뻣하게 서 있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밴드 앗싸는 4월28일 서울 홍대 앞 클럽 벨로주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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