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마리나(다니엘라 베가)의 생일이었다. 남자친구 오를란도 (프란시스코 레예스)가 케이크를 준비했다. 중국 식당에서 중국인 직원들이 중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색다른 파티였고 사랑스러운 이벤트였다. 집으로 간 마리나와 오를란도는 기쁘게 사랑을 나누었다. 둘이 함께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그날은 다니엘의 생일이기도 했다. 마리나는 다니엘로 태어나 오랫동안 남자로 살았다. 삶의 어떤 순간 자신이 ‘남자로 태어난 여자’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마리나가 되었다. 오를란도 앞에서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끈 것도 마리나였고, 그와 기쁘게 사랑을 나눈 사람도 마리나였다. 둘이 함께 보낸 마지막 밤에 다니엘은 없었다.

그 자리에 없던 다니엘을 불러낸 건 의사, 경찰, 그리고 오를란도의 가족. 마리나를 앞에 두고 다니엘을 의심하는 자들. 이미 세상으로 나온 마리나는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서, 아직 신분증에 갇힌 다니엘만 불러 세우는 사람들. 그렇게 마리나는 오를란도 사망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유족이 감추고만 싶은 고인의 ‘오점’으로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에서 스물일곱 살 트랜스우먼 마리나를 연기한 트랜스젠더 배우 다니엘라 베가. 감독은 시나리오 조언을 구하려고 만난 헤어 디자이너에게 아예 주연을 맡겼다. 다니엘라는 자신이 직접 겪은 차별과 혐오와 배제의 기억을 마리나의 대사에, 표정에, 행동에 꾹꾹 눌러 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 더 바랄 게 없는 연기.

영화에서 마리나가, 아니 다니엘라가 자주 화면 안에 홀로 남는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관객과 눈을 맞춘다. 김혜리 〈씨네21〉 기자가 물었다. 화면 비율을 와이드 스크린으로 선택하고 프레임 중앙에 마리나를 자주 배치한 이유. 감독이 답했다. “평생 사회 주변부로 밀쳐져온 마리나라는 인물을 이 영화의 중심으로 확고히 세우고 싶었습니다 (〈씨네21〉 제1150호, 〈판타스틱 우먼〉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 ‘공백, 시네마 고유의 언어’).”

‘운 좋은 마주침’을 원한다면

렐리오 감독의 이 말에서 나는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션 베이커 감독을 떠올렸다. 트랜스젠더 이야기 〈탠저린〉과 홈리스 이야기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역시 ‘사회 주변부 마이너리티’를 연이어 영화의 중심에 세운 그는, 그들이 “더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덜 재현되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말했다.

렐리오와 베이커에게 영화는, 엄연히 존재하는데 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의 존재 증명이다. 〈판타스틱 우먼〉에서 다니엘라가 부르는 노래 ‘옴브라 마이 푸’의 가사처럼, “이 세상 그 어떤 그늘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이토록 감미로운 그늘”로 초대받은 관객이 그들과 함께 비를 피하고 해를 기다리는 2시간 안팎의 시간이다.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칠 것 같지 않은 인물과 운 좋게 마주치는 곳이 극장이라고 믿는다면, 한 번도 연결되었다고 느낀 적 없는 존재와 잠시나마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시간이 영화라는 데 동의한다면, 〈판타스틱 우먼〉은 당신이 지금 극장에 가서 가장 먼저 챙겨 보아야 할 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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