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을 담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하 S그룹 문건) 작성·지시·보고 등에 삼성인력개발원·삼성경제연구소·삼성에버랜드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노조 와해 공작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공유되고 시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시사IN〉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2014년 11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수사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오른쪽 표 참조)이 상세히 쓰여 있다. 수사보고서는 전체 126쪽이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삼성그룹에 면죄부를 주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병현)도 무혐의 처분했다. “문건을 삼성그룹이 작성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라는 이유였다. 검찰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가담했음을 뜻하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S그룹 문건은 2013년 10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문건에는 ‘노조 설립 時(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채증 지속 *SMD(삼성디스플레이)는 문제 인력 개개인에 대한 「100과사전」을 제작,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 주량 등을 활용 중’과 같이 불법 사찰 관련 내용이 담겼다.
 

ⓒ시사IN 조남진2011년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한 조장희 부위원장과 백승진 사무국장, 박원우 위원장(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JTBC에 S그룹 문건을 폭로하면서, 2013년 10월 삼성에버랜드 노조 조합원 등이 삼성 관계자들을 부당노동행위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했다.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고소·고발을 접수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조사에 나섰다. 참고인 신분으로 삼성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했다. 수사보고서에 담긴 이들의 진술 내용을 종합하면 S전략 문건 생산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삼성인력개발원 조○○ 상무는 삼성경제연구소(SERI) 이○○ 부장에게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그는 자신이 주관하는 2011년 12월 삼성 계열사 내 CEO 세미나 때 분임토의에서 활용할 “바람직한 조직 문화 구축” 참고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지시를 받은 삼성경제연구소 이 부장은 같은 연구소 소속 공○○·권○○ 과장에게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이 부장은 며칠 후 에버랜드 노조 설립 사례를 콕 찍어 추가하라고 지시한 뒤 에버랜드 문○○ 부장에게 직접 연락했다.

문 부장은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 설립신고증 등을 보내주었다. 문 부장은 에버랜드 직원 개인 간의 대화인 문자 메시지 캡처본도 전송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삼성경제연구소 공 과장과 권 과장은 S그룹 문건에 에버랜드 사례를 넣었다. “11.6.4日 사무실 복합기 근처에서 현장 여사원이 노조 설립 시 행동요령 문서 일부분 발견, 11.7.7日 조장희(노조 부위원장) 책상에서 노조 설립총회 대자보 발견.”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그룹의 싱크탱크 구실을 하는 민간 연구소다. 대외적으로 경제·경영·산업·금융 등 연구를 표방한 삼성경제연구소가 비공식적으로 ‘노조 와해 전략 연구’도 해왔던 셈이다. 당사자들이 인정한 진술만 살펴보아도, 삼성인력개발원-삼성경제연구소-삼성에버랜드 사이 공식 업무 협조로 S그룹 문건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역할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수사보고서에 적혀 있다. 2013년 10월14일 JTBC가 S그룹 문건을 입수한 다음,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에 확인 요청을 했다. 미래전략실 윤○○ 상무는 삼성경제연구소 이 부장에게 문건을 전달하고 전화를 걸었다. 문건 작성 주체를 미리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사불란한 대응이었다. 처음부터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미래전략실이 해당 문건의 존재를 알았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미래전략실 윤 상무는 2014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조사 때 “문서가 노사관계 및 노조 관련 내용이라 노사관계 전문가인 삼성경제연구소 이 부장에게 확인을 요청했다”라고 진술했다. 윤 상무의 확인 요청에, 삼성경제연구소 이 부장은 1시간 만에 회신을 보냈다.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2011년 말 고위 임원 세미나용으로 우리가 만든 참고자료의 일부인 것 같다”라고 문건 작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나흘 후 이 부장은 말을 바꿨다. 전체 내용을 검토해보니 자신들이 작성한 문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삼성 추가 조사 안 해

당시 S그룹 문건 자료가 CEO 세미나에서 발표됐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삼성그룹 수뇌부의 개입 여부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문건 작성과 지시를 한 이들은 “검토해보니 분량이 너무 많고 실무자가 알아야 할 내용이라 취지에 맞지 않아 작성이 중단됐다”라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수사보고서에는 S그룹 문건과 관련해 “작성 경위 및 작성 중단 과정에 대한 삼성인력개발원 조 상무, 삼성경제연구소 이 부장, 삼성경제연구소 공 과장의 진술이 일치하고 내용이 구체적이라 신빙성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럼에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S그룹 문건이 실행되었는지 등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윗선에 보고된 바가 없다고 판단해, 당시 고소·고발을 당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은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은 “초기 진술을 번복했다고 하나 관련자들이 문제의 문건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는데도 노동부는 이를 외면하고 삼성에 면죄부를 주었다. 지금이라도 지연된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가 노조 와해 관련 문건을 확보하면서, 4년 가까이 지체된 수사가 다시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사 중이라 별도로 답변할 내용이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