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재미 삼아 사주팔자나 한번 보자 싶었다. 권기준씨(가명)에게 처음 ‘경제적공진화모임(이하 경공모)’을 소개한 건 여동생이었다. 이 모임을 이끄는 ‘드루킹’이라는 인물이 주식 투자에 능하고, 자미두수 역학에 밝다고 했다. 그를 만났다. 생년월일을 알려주고, 사주를 보았다. 족집게였다.

권씨는 경공모에 가입하고 활동했다. 폐쇄적인 모임이었지만,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집단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변호사·회계사·주식투자자처럼 전문직을 가진 사람도 회원이었다. 단체의 정치적 성향도 권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에 자주 나갔고,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단체 내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깊이 활동할수록, 아내와 자주 다투었다. 아내는 권씨가 이상한 단체에서 활동한다고 걱정했다. 어느 날, 모임을 이끌던 드루킹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남도청 제공네이버 뉴스의 댓글 공감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드루킹’ 김 아무개씨.
4월1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드루킹이라는 아이디로 알려진 김 아무개씨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올해 1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네이버 뉴스의 댓글 공감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공감수를 늘려 이른바 ‘베댓(베스트 댓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드루킹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09년 결성된 경공모는 현재 회원 2500여 명이다. 회비를 모아 강연을 열고, 회원에게 상품을 파는 등 회원 중심으로 활동했다. 지난 대선 때에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다는 등 온라인 여론 활동도 펼쳤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드루킹을 비롯한 몇몇 회원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 순위를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 모임의 기이한 측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공모는 철저히 등급을 나누어 운영됐다. 아예 등급에 따라 네이버 카페를 분리해 따로 운영했다. 핵심 조직원 500여 명과 일반 조직원 2000여 명이 서로 다른 카페에서 활동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500여 명도 여러 등급으로 나뉘었다. 경공모는 드루킹이 체포된 후 네이버 카페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텔레그램 단체방을 통해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경공모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텔레그램 단체방을 20~30명 단위로 분리해 운영한다. 상부 인사(핵심 인사)와 활동한 지 얼마 안 된 일반 회원 간에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여러 텔레그램 단체방을 거쳐 지시 사항이 내려가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시사IN 신선영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을 이용해왔다.
복수의 경공모 회원은 처음 이 조직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권씨처럼 “드루킹이 사주를 잘 보고, 주식 투자에 밝아서”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감도 조직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기준씨 역시 경공모 활동을 통해 경제적 대가가 뒤따를 것이라 기대했다. 물론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단체 차원에서 정치적 지지 활동에 따른 대가를 정치권에 요구하며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오간 게 문제였다.

드루킹과 경공모의 활동 가운데 가장 비정상적인 순간은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드루킹은 대선 이후 김경수 의원에게 경공모에서 활동하던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인 도 아무개씨를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했다. 청와대는 도 변호사와 면담한 후 그가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집착한 이유는 ‘일본 대지진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그가 블로그에 올린 ‘송하비결의 재해석-일본 대지진이 온다’라는 글에서 〈송하비결〉이라는 문헌을 일종의 예언서로 판단했다. 그는 ‘조만간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살아남은 일본인으로부터 경제력과 기술을 흡수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경공모 회원들도 ‘드루킹의 예언’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오사카 총영사 인사 청탁이 거절되자, 드루킹과 일부 회원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드루킹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했는지 4월20일 현재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평소 온라인 공론장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그가 남긴 흔적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드루킹, “여권 진영이 종편 인수해야”

드루킹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일종의 전쟁터로 여겼다. 자신의 팟캐스트가 ‘팟빵’ 같은 플랫폼에서 순위가 낮은 이유를 추천 조작 때문이라 여겼고(2017년 7월26일 페이스북), 자유한국당 디지털 정당위원회를 3000명 단위의 댓글 부대라 여기며 “온라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2017년 10월11일 페이스북)”라고 주장했다.

드루킹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지속적으로 ‘미디어 장악’을 주장했다. 〈시사IN〉은 드루킹이 지난해 11월 작성했고 현재는 비공개 상태인 글을 확인했다. ‘인터넷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드루킹은 장기적으로 여권 진영이 종편을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편을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흡수할 도구로 봤다. 이 글에서 그는 ‘만약 안철수가 집권했다면 정보 생산자(언론)와 유통업자(포털), 댓글 부대까지 손에 넣었을지 모른다. 댓글 부대란 정보의 소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라고 주장했다.

드루킹과 경공모가 댓글을 달고 공감 순위를 조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필요한 건 경공모 회원 등으로부터 빌린 네이버 아이디 614개와 매크로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1월17일 〈연합뉴스〉가 네이버에 송고한 “남북 ‘한반도기 앞세워 공동입장·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종합)” 기사를 살펴보자. “문체부 청와대 여당 다 실수하는 거다. 국민들 뿔났다!!!”라는 댓글과 “땀 흘린 선수들이 무슨 죄냐?”라는 댓글이 상위에 달려 있다. 수사기관은 이 기사가 올라온 이후, 두 댓글이 순식간에 600번 이상 추천을 받았다고 밝혔다. 짧은 시간에 공감수를 확보한 댓글은 상위에 노출되고, 그 뒤부터 하락하지 않는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원천 차단하려면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마다 ‘캡차(그림에 있는 문자를 사람이 직접 눈으로 인식하고 입력하는 방식)’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 경우 로그인 과정이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다. 포털사이트는 같은 IP 주소로 반복해 로그인을 하는 등 ‘의심 가는 상황’에서만 캡차 입력을 요구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드루킹은 IP 주소를 수시로 변경하면서 네이버 ‘차단막’을 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인 방지책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다음소프트 최재원 이사는 “이번 사태를 무조건 ‘기술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결국 사람이 작정하고 플랫폼을 왜곡하려는 걸 기술적으로 원천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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