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오후 도쿄 호쿠토피아 사쿠라홀에서 ‘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 강연과 콘서트’가 열렸다. 재일조선인·일본인·한국인으로 구성된 ‘제주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도쿄(이하 4·3을 생각하는 모임)’ 실행위원회는 2017년 69주년 도쿄 행사를 끝내고 70주년을 어떻게 꾸릴지 논의해왔다. 그래서 매년 400~500명 규모로 치르던 행사를 70주년을 맞아 1300명 규모로 키웠다. 객석을 메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약 1400명이 행사장 1~2층 좌석은 물론 통로까지 들어섰다. 1988년 4월3일 도쿄에서 개최한 40주년 기념 강연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행사를 치러왔지만 올해처럼 많은 이들을 맞아본 적이 없다.

70주년을 맞아 24쪽짜리 컬러로 된 자료집을 만들었다. 제주 4·3을 소개하고 1957년 김석범의 소설 〈간수 박 서방〉과 〈까마귀의 죽음〉 출간부터 2018년 70주년 위령제 제주 방문단까지, 4·3을 생각하는 모임의 지난 활동을 돌이켜보는 자료집이다. 이 자료집에는 재일조선인 상공인 17명이 광고를 실어 행사를 후원했다. 조총련계라거나 제주도가 고향이 아니라거나 해서 거리를 두어왔던 사람들이, 광고로 후원하며 4·3 70주년을 함께했다. 그리고 4·3에 관여하는 것을 꺼려왔던 ‘재일본 간토제주도민협회’도 같이 참석했다. 매년 ‘마지막’이라며 금세 ‘다음’을 준비하는 조동현 4·3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이 지난 1년간 제주와 서울, 그리고 민단·조총련 사이를 뛰어다녀서 맺은 결실이다. 그래서 2018년 도쿄의 4·3 70주년 행사는 도쿄의 재일조선인 사회가 한마음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이 되었다.

ⓒ김기삼 제공4월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영란 무용연구소 단원들과 금강산가극단 송영숙씨가 진혼무 ‘4·3의 바람’을 선보이고 있다.
묵념으로 연 기념행사는 진혼무 ‘4·3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4·3의 바람은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4·3 생존자인 재일조선인 2세 무용가 김영란씨가 창작한 ‘조선 무용’이다. 그의 어머니는 학살을 목격했고 시어머니는 쌍둥이 언니를 잃었다. 4·3을 생각하는 모임을 통해 당시 실상을 접한 김씨는 ‘무용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너무도 참혹한 역사를 과연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궁리한 끝에 ‘4·3의 바람’을 만들었다. 김영란 무용연구소의 단원 13명과 금강산가극단의 송영숙씨가 ‘4·3의 바람’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재일조선인 3세다. 단원 김선옥씨는 아직 전할 말이 많이 남았다는 혼들의 마음을 춤으로 다 전하지 못한 것 같다며 눈물지었다.

93세 작가 김석범도 무대에 섰다. 일본에서 제주 4·3은 김석범 작가를 빼고 말할 수 없다. 4·3을 생각하는 모임 실행위원회의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은 그의 소설을 통해 4·3을 알게 되고 배웠다. 한국에서의 제주 4·3 진상 규명 운동의 불을 지핀 1988년 4월3일 도쿄 40주년 행사도 김석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2016년 가을부터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에 새롭게 4·3에 관한 소설 〈바다 저 밑에서〉를 연재 중이다. ‘김석범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70주년 기획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연합뉴스4·3 70주년 기념 강연 ‘제주 4·3항쟁의 정의를 이야기하자’에서 대담 중인 김석범 작가.
“제주 4·3의 남은 과제는 정명(正名)”

“젖먹이까지 빨갱이로, 임신 중인 여성의 배를 갈라 빨갱이의 씨를 ‘멸종’시키는, 가스실이나 폭격으로 단시간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마 위의 생선이나 고기를 잘라내듯이, 살아 있는 인간의 살과 마음을, 육체, 존재를 거대한 도마 위에서 난도질하는 살육. 빨갱이 말살, 민주주의 옹호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개개인의 몸과 마음을 세분화하는 대량 학살.”

김석범 작가는 소설 〈바다 저 밑에서〉의 도입부를 낭독하며 4·3은 그냥 ‘사건’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2008년 60주년 위령제와 유골 발굴 현장을 찾아 6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슬퍼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며 울었던 그는 지난 4월3일 70주년 위령제에서 헌화하며 다시 울었다. 희생자의 이름을 호명하며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라고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듣고 가슴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려서 나오는 눈물이라고 했다. 4월21일 도쿄 강연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4·3의 ‘진실’을 ‘사실’로 명백히 했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음을 선언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의한 ‘기억의 타살’과 스스로의 기억을 지우는 ‘기억의 자살’로 인한 역사의 부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석범 작가는 제주 4·3의 남은 과제로 ‘정명(正名)’ 문제를 들었다. 그리고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안에 누워 있는 백비에 이름을 새겨 살아 숨 쉬도록 하늘 아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범 작가의 이야기를 이어 받은 문경수 리쓰메이칸 특임교수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절실한 과제인 희생자 규정 문제를 들었다. 현재 4·3 희생자는 첫째 항쟁 지도부, 둘째 식민지 권력이라 할 수 있는 군·경찰·우익, 셋째 양자의 격돌에 휘말려 희생된 다수의 도민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는 희생자로 인정되어 명예회복이 되었다. 문경수 교수는 70주년을 맞아 역사적으로 남북 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항쟁 지도부도 포함한 모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쟁 지도부는 ‘빨갱이’니까 희생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남과 북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일본에서 ‘북’, 즉 조총련계 동포들을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남북 화해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일본인 실행위원들은 제주 4·3운동에 참여하며 국가 폭력이 어떻게 자행되었으며, 그 폭력의 진상을 어떻게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하는지, 국가가 어떻게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지 지켜봐왔다. 이들은 한반도의 분단과 식민지 지배에 책임이 있는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주 4·3운동에서 배우고 있다. 나이·성별·직업에 관계없이 전단지를 배포하고 표를 팔고, 손님을 안내하며, 통역과 번역에서 청소까지, 각자 자기 자리를 지켜온 4·3을 생각하는 모임 실행위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매년 행사가 열린다.

2부는 가수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 콘서트였다. 4·3을 대표하는 곡 ‘잠들지 않는 남도’는 오랫동안 4·3 공식 행사에서 금기시되었다. 그것을 깬 것이 2013년 4·3을 생각하는 모임이 꾸린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24명으로 구성된 시민합창단이었다. 65주년 제주도 위령제 식전 행사에서 바다를 건너간 이들이 되살린 ‘잠들지 않는 남도’를, 70주년 위령제에서 유족 합창단이 불렀고, 지난 4월21일 다시 도쿄에서 사람들은 원곡자 안치환과 함께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다.

1988년 40주년처럼, 일본에서 ‘제주 4·3항쟁’으로 정명하고 시작한 도쿄의 70주년은 특별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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