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지 않는 몇 가지 선언이 있다. 그중 하나, 바로 “난 음악 없인 못 살아요”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무엇을 논하든 간에 ‘절대’를 상정하는 문장은 언제나 불편하다. 예외를 허락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지 않아서 그렇다. 예외와 여지는 곧 가능성이다.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절대를 상정하는 선언은 크든 작든 폭력으로서 기능한다.
괜히 돌려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과 같이 말해보겠다. 음악 없이도 우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건 반박 불가의 팩트다. 영화도, 사진도, 미술도, 게임도 다 마찬가지다. 이것들 없이도 우리는 아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최후의 보루, 문학은 어떤가.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로 대신한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소설가 장정일이 〈시사IN〉에 기고한 칼럼 역시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시사IN〉 제549호 장정일의 독서일기 ‘문학의 신화화를 거부한다’ 참조).
오해 말기를. 나는 몇 주 전에도 박효신의 ‘숨’을 들으면서 펑펑 운 사람이다. 약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 음악을 듣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간절하게 밀려와서였다. 잠시 뒤 어느새 멈춘 눈물. 내 안의 뭔가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나는 이게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씻김굿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예술이든 실재하는 삶보다 위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예술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경험 혹은 체험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태도를 ‘함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음악 없인 못 살아”라며 섣부르게 선언하는 대신 이 양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머물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경이의 순간을 맞이하면 되는 거다. 단언컨대, 음악은 세상을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다만 음악은, 그리고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아주 조금은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할렐루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얼마 전 텔레비전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곡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 깊이 감동했던 기억이 밀려왔다. 곡의 정체는 ‘할렐루야’. 이제는 세상에 없는 레너드 코언이 1984년 발표한 곡이다. 기실 이 곡은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전혀 아니다. “이건 승전가가 아니야. 차갑고 망가져버린 할렐루야지”라는 노랫말을 보라.
해석하기 영 쉽지 않은 곡이다. 그러나 레너드 코언이 창조한 성스러운 멜로디가 가사와 만났을 때 어떤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빚어진다. 그 기이한 매혹에 잠식된 건 나만이 아니었다. 제프 버클리를 필두로 유투(U2)의 보노, 루퍼스 웨인라이트, 토리 켈리 등 수많은 가수가 앞다투어 이 곡을 다시 불렀으니까. 이 곡을 들으며 진심으로 울먹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음악이라는 게 별것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음악 없이도 아주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절대를 상정하지 않고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때론 양립 가능함을 깨달아가는 것. 전선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 주의에 물들지 않으며,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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