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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서 며느리가 운다

2018년 05월 06일(일) 제555호
오수경 (자유기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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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지나면 기혼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며느리들! 이번 명절에도 잘 살았어?”라고 물으면 각종 사연이 프리스타일 랩처럼 와르르 쏟아진다. 사적으로 대화창에 머물던 며느리들의 서사가 요즘 들어 공적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첫 신호는 2017년 화제를 모은 웹툰 <며느라기>다.
이 웹툰에서 며느라기란, ‘며느리들이 시댁 식구들한테 예쁨을 받거나 칭찬받고 싶어 하는 시기’를 뜻한다. 웹툰 속 ‘민사린’이 처한 현실은 많은 여성에게 공분을, 남성에게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지난 3월 <SBS 스페셜>은 ‘며느라기-화목하고 불편한 가족 이야기’를 방영했다. 1월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가 개봉되었다. 시어머니 처지에서 보면 눈치 없고, 개념도 없고, 그래서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이 이를 잘 드러낸다. <Myeoneuri:My Son’s Crazy Wife>(며느리:내 아들의 미친 아내).
ⓒ정켈 그림
최근에는 MBC에서 새롭게 선보인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화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는 며느리 세 명이 등장한다. 지난 1월 결혼한 민지영씨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친정에서 준비한 이바지 음식을 가지고 시가로 향한다. “예쁘게 하고 오라”는 시어머니의 당부에 미용실에서 풀 메이크업을 하고 불편한 옷을 입었다. 시가에 도착해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한 채 그 집안 ‘며느리들’이 손님상 차리는 일을 거든다. 세 살 난 아들을 양육하는 임신 8개월의 박세미씨는 명절 전날 밤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 홀로 아이를 안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운전을 해서 시가에 도착한다. 그런 그녀를 기다리는 건 각종 명절 음식 재료들. 아무도 만삭에 가까운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자연분만하면 산모에게 위험하다’는 의사의 소견도 무시하고, 아이의 건강과 아이큐 2% 향상을 위해 자연분만을 강요한다. 아이 키우랴, 인터넷 사업하랴 바쁜 와중에 시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김단빈씨는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손가락을 다쳤는데도 무거운 뚝배기를 나른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행동, 양육방식 등을 사사건건 지적하며 무시한다. 결국 그들은 남편들 앞에서 눈물을 쏟는다.

며느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차적 주체는 같은 여성인 시어머니다. 시어머니는 상대에게 부담과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경험한 방식대로 며느리를 대한다. 며느리는 그 와중에도 누군가의 며느리였을 시어머니를 연민하며 함부로 거스를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두 여성의 갈등을 고부갈등이라 명명하며 여성들 간의 문제로 축소한다. 이 ‘을들의 전쟁’에서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남편이다. 가부장 체계의 꼭대기에 위치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체계가 평화롭게 유지되어야 수혜자가 될 남편은 이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 그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길 희망하며 먼 곳을 바라볼 뿐이다.

남편이 방관자로 전쟁터 바깥에 있는 사이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남편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프로그램 패널로 참석한 김지윤 소장(좋은연애연구소)의 지적처럼 “고부 관계에서 남편은 자신을 중간자로 놓고, 그들 사이에 끼어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게 남편이 방관자로 전쟁터 바깥에 있는 사이 이 전쟁의 내상은 깊어지고 결국 모두 패배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 며느리의 서사가 ‘채팅방’을 뚫고 공적 담론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성 가부장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보았다면, 이제는 며느리의 관점으로 보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아야 우리가 사는 곳이 얼마나 이상한지 폭로할 수 있다. 문제는 ‘내 아들의 미친 아내’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이상한 나라’가 정상이라고 우기는 가부장 사회의 ‘남편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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