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고속철도 통합을 검토하는 연구 용역을 제안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코레일과 수서발 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의 통합을 약속했고, 작년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장관도 철도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고속철도 통합을 이야기했기에 예상되었던 바다.

그런데 연구 용역이 제안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부 언론에서 통합이 부당하다는 기사를 내놓는다. 그만큼 고속철도 분리와 통합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두 의견이 부딪쳐왔으니 논쟁의 뿌리가 깊다. 한쪽은 철도 민영화를, 다른 쪽은 철도 공공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를 보면 공공성 쪽이 우세하다.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계획이 노무현 정부에서 철도공사로 귀결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공사 체제가 유지되었다. 반면 새로 출범한 SR은 쟁점으로 남아 있다. 박근혜 정부는 SR만이라도 민영화하려 했으나 철도노조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민영화 대신 분리 운영에서 멈추었다. 별도 회사로 운영하면 경쟁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고 언제든지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절충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속철도의 통합을 검토한다니 민영화 쪽에선 비상 상황인 셈이다. 현행 ‘경쟁 체제’를 사수하기 위해 ‘경쟁 vs 독점’ 구도를 내세운다. 벌써부터 언론 기사의 제목이 강하다. ‘요금 싼 SRT 없애는 게 철도 공공성 강화?’, ‘철도 경쟁 체제 허물면 독점 폐해 어떻게 할 건가?’ 현재 SRT는 KTX에 비해 요금이 10% 싸다. 그러고도 작년에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그러할 전망이다. 경쟁 체제를 도입하니 요금이 내려도 경영은 양호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는 한 꺼풀만 벗겨보면 금세 허상이 드러나는 주장이다. 지금 고속철도에 경쟁이 존재하는가? 현재 SR의 고속철도 운행에서 관제, 차량 정비, 유지 보수, 매표, 사고 복구는 모두 코레일이 대행한다. 정부가 정한 선로 배분에 따라 같은 궤도를 달리기 때문에 속도와 안전성도 같다.

차이는 출발역·요금·서비스에서 존재한다. 우선 출발역은 경영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 요인이다. 강북 사람은 서울역에서, 강남 사람은 수서역에서 열차를 탈 것이다. 요금은 SRT가 싸다. 애초 SR의 면허 취득 조건이 KTX 대비 10% 요금 인하였다. SR이 싼 요금으로도 흑자를 기록하는 건 애초 고속철도가 알짜 사업이기 때문이다. 코레일 역시 고속철도 부문에서는 상당한 흑자를 낸다. 다만 코레일은 이를 일반철도와 화물철도의 적자 보전에 사용하고, SR은 철도산업에서 노른자만 운영한다. 요금 인하는 경쟁이 아니라 정책 특혜의 결과이다.

KTX에 비해 저렴한 SRT 요금은 정책 특혜의 결과일 뿐

경쟁의 효과는 서비스 부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넓은 좌석, 충전 콘센트 등은 신규 차량의 이점으로 두 회사의 설립연도 차이에서 비롯된다. 결국 경영이 영향을 미치는 건 승무원 복장, 모바일 앱 일부 기능, 특실 견과류 등이 전부이다.

과연 이 차이를 위해 분리 운영을 고수해야 할까? 우선 경영관리 인력, 사옥, 광고비 등 공연한 중복 지출만 연 260억원이다. 열차를 따로 운영하기에 차량 배치에서 불필요한 대기시간이 생긴다. 코레일 철도망에서는 고속철도 승객이 줄기 때문에 고속철도 흑자로 일반철도를 지원하는 교차 보조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향후 일반철도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볼 개연성이 크다.

 

 

ⓒ연합뉴스18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이 코레일과 SR(SRT 운영회사)로 분리된 고속철도 운영 주체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4.18

 


통합하면 경쟁이 없는 독점이라고? 고속철도는 이미 저비용 항공, 고속버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속철도 분리 운영에서 객실 서비스를 빼고는 모두 정책적 사안이다. 중복 비용을 유발하면서 특정 지역 주민만 혜택을 누린다면, 이런 시행착오는 연장할 필요가 없다.

싼 요금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통합으로 중복 비용을 없애고 차량 배치를 늘리면 전체 노선에서 고속철도 요금을 10% 내릴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저렴하게 고속철도를 이용하고, 지역의 일반철도도 튼튼히 하자는 게 ‘고속철도 통합’이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