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

인용한 시인 김남주의 시는 체제 분단이 우리네 삶 구석구석에 미치는 영향을 통렬히 드러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다. ‘분단 체제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 자체가 분단 체제이다.’ 이것은 시적 메타포가 아니다. 불신과 불통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우리가 늘 겪는 현실이다.

한국에서 신뢰가 현저히 낮음을 보여주는 통계는 무수히 많다. 사적 관계에서의 신뢰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하위권을 차지한다. 타인이 나에게 보여주는 겉모습은 속내와 다를 것이며, 나는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판단이 인간관계를 지배한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보여준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장시간의 생방송 미디어 이벤트로 진행된 정상회담을 관람하며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애 같은 것을 확인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비핵화라는 의제만이 아니었다. 두 정상 사이에 오가는 제스처와 스킨십, 표정과 눈빛, 농담과 진담, 이 모든 것들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풍요롭고 다채로웠다. 그날 사람들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연출과 즉흥이 어우러진 인간적 상호작용의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런 몰입과 감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연히 그 드라마의 주연이 남과 북의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이런 질문도 던져본다. 극단적인 적대로 치닫던 양측이 손을 맞잡고 화해를 다짐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언제였던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건. 솔직히 말하면 거의 없다. 우리는 증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공동사진기자단

 


많은 경우 적대와 갈등은 불가피하다. 구조적 불평등, 가치와 이익의 충돌이 그 배경이다. 적대와 갈등은 위정자들의 무책임과 아집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한다. 위정자들은 자신들은 최선이며 타인은 최악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킨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싸움이 나면 정치인의 언행이 구사되곤 한다. “당신 같은 인간 때문에 이 나라가 이 꼴이야.” 우리는 어느새 그토록 불신하는 정치인의 언행을 빌려와 타인을 향해 적개심을 표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관람하고 마치 힐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은 그 여운이 다소 씁쓸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의 정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잘 만들어진 휴먼 다큐처럼 다가와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간과해선 안 되는 전제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있음을 인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의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드라마는 애초에 성립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상과 일터에 적용할 수 있는 정상회담의 교훈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배워 일상과 일터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은 없지 않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부정적 역량과 긍정적 역량 모두에서 동등한 상대로 인식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나는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타인이 나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나 또한 동일하게 가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타인 또한 동일하게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역량을 냉철하게 인정하고 공평하게 존중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비핵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평화주의자의 레토릭이나 시인의 메타포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의 분석으로 들리기를 바란다. 사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전쟁터로 바뀐 지 오래라는 것을.

 

 

기자명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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