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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무지한 북한 인권 전문가

2018년 05월 17일(목) 제556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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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기자질을 한 지 벌써 33년이 넘었다. 그동안 부끄러운 글을 쓴 게 어디 한두 번일까마는 가능하다면 데이터베이스마다 들어가 꼭 지워버리고 싶은 기사가 하나 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인터뷰한 글이다. 전 직장에서는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특집을 내보냈는데 나는 이 기획이 싫었다. 너무나 뻔한 현재 권력 구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는 언론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자리를 항상 같은 인물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바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다.

나는 김대중 주필이 매년 독보적으로 1위에 오르는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글 종착지가 결국에는 멸공·친미· 반민주화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그의 글을 편집한다면 고쳐주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만큼 비약이 심하고 비논리적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를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을까 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특집을 쓸 때면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 다녔는데 어느 한 해만은 선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때 그에게 정작 묻고 싶은 것들은 묻어두고 인터뷰를 ‘좋게’ 끝내고 말아 내내 찜찜함이 가슴속에 남았다. 당시 그가 류근일 논설위원실장과 서로 글을 바꿔 읽으며 고쳐준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류근일씨 역시 언론 부문 영향력 있는 인물 상위에 오르곤 했다.

공식 직함을 내려놓았고, 그리고 이미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뿐만 아니라 김어준씨에게마저 영향력 있는 인물 상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김씨와 류씨 두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쓴다. 기자질을 한 지 50년은 족히 넘었을 두 사람이 아직 글을 쓴다는 점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읽어주지도 않는지 갈수록 글의 힘이 떨어져만 간다는 게 문제다. 이분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의 국면 국면마다 헛발질을 해댔다. 자기들이 설정한, 실체가 없는 친북·좌파·반미 세력이라는 풍차를 향해 지치지도 않고 돌진하는 중이다. 이분들의 글을 끝까지 읽으려면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 때처럼 불신을 자발적으로 유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분들을 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유독 북한의 인권 문제만 나오면 핏대를 올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주 4·3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에 전국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 민주화 과정에서의 숱한 의문사와 고문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태는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방어하는 태도를 보여온 분들이 아니던가. 제주도민이나 광주시민, 그리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글에서는 예사로 ‘폭도’라고 불린다.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러시아나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이분들은 관심이 없다.

이들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느덧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나 어버이연합 같은, 인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극우 집단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 남북 화해를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부터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 문제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북한 인권 분야는 수상한 인물과 믿을 수 없는 정보가 유통되는 탁한 물이 되고 말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는 이 북한 인권 문제가 책임 있는 이들의 공적인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에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끊임없이 설득해나가야 할 중요한 안건이 되어야 마땅하다.

ⓒ한성원 그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은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나아가 북한이 정상 국가로서 순조롭게 국제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북한과의 화해 국면에서 항상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이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였던 게 바로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가운데도 북한과 관련해 ‘절대로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김정은 체제를 용인하면 더욱 많은 북한의 인민이 고통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북한은 인권 문제에 언제나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북한에는 정치범 강제수용소나 교화소가 없고 일반 감옥만 있다는 게 공식 주장이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이런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29일 정세 논설에서 “인권의 불모지, 자유의 폐허 지대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라며 선제공격을 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하지만 미국 상원은 4월24일(현지 시각)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 내부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주입하는 것을 강화시킨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인종차별, 총기에 의한 살인, 마리화나 남용까지 거론하며 미국이야말로 인권 탄압 국가라는 역공을 펴고 있지만 미국 내 북한 인권에 대한 여론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이다.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고 잔인하게 인권을 유린한다는 증언과 증거가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신뢰하기 힘든 탈북자나 관련 단체의 엽기적인 폭로는 제외한다 치더라도 북한의 인권은 참담한 수준이다. 국제변호사협회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판사 패널 3명에게 탈북자 중 정치범 수용소 간수 출신, 죄수 등의 증언을 듣고 보고서를 써달라는 의뢰를 한 뒤 지난해 12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살인, 노예화, 고문, 성폭력을 포함해 공인된 11개 전쟁범죄 중 10개를 저질렀다는 판결을 받았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를 지냈으며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도 한 토머스 버겐설은 북한의 수용소가 자기가 젊은 시절 경험한 나치 수용소나 오랫동안 인권 분야에서 일하며 목격한 그 어떤 험악한 곳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었으며 국제범죄를 많이 다뤄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나비 필라이 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한마디로 북한은 전 국민이 협박을 당하는 상태라고 정리했다.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목에 도사린 암초

국제변호사협회는 북한 인권 문제의 랜드마크가 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에 자극을 받았다.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에 따르면 유엔 보고서는 구소련의 저항 작가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군도>만큼이나 중요한 문건이다. 이 보고서는 4개의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와 그보다 작은 교화소들이 북한 전역에 섬처럼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유엔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국제변호사협회 조사에서 수용소의 의사 출신이 포함된 증인들은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지다 처형된 사례를 포함해 중노동과 굶주림, 질병으로 사망한 숱한 죽음을 증언했다. 거꾸로 매달기, 전기 충격, 물 먹이기, 고춧가루 탄 물을 코에 붓기 등 군사독재 시절 우리에게도 익숙한 악랄한 고문 사례를 폭로했다. 많은 여성이 강간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임신해 강제 낙태를 당하다 죽음을 맞았다. 이 국제변호사협회 보고서는 “너무나 오랜 동안 북한 인민이 세계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게 무엇보다도 공포스러운 일”이라고 끝을 맺었다.

최근에는 수감자 형기가 정해져 있는, 정치범 수용소보다는 한 단계 급이 낮은 교화소의 정체도 위성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레그 스칼라튜에 따르면 이 교화소는 북한 전역의 도시 외곽과 산중의 넓은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시장에서 너무 많은 돈을 긁어모으는 것과 같은 심각한 경제 범죄나 북한을 탈출하려고 시도했던 이들이 대개 이곳에 갇힌다. 사람들은 거의 기아에 가까운 상태에서 감옥 내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한다. 평양 외곽 개천에 위치한 1번 교화소에는 여성 2000명을 포함한 6000명이 수감돼 있다.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독성 물질에 노출된 상태로 가죽 제품을 만드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와 교화소 등에 수용된 인원은 적게는 8만명, 많게는 2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만약 미투 운동을 벌인다면 북한 여성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런던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가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성폭력과 성희롱은 거의 국가적 전염병 수준이다. 강간이 감옥에서 고문의 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은 여성을 규제하는 법과 규범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다. 남성들은 성폭력을 정상적인 행동으로 생각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남성은 여성의 성을 힘으로 빼앗는 데 거리낌이 없다. 공포와 체념이 문화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여성은 입을 닫고 살아간다.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목에 도사린 큰 암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만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통 큰 결단을 내린다면 그를 정말 다시 보겠다. 인권변호사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경륜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화해의 열기가 북한의 음습한 감옥에도 가닿을 수 있을까. 일단 인권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이 문제를 빼앗아오는 게 순서다. 그들이 자기들에게 인권 문제를 단죄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게 어이없다.

참고한 활자: <북핵 롤러코스터>(시사IN북), <워싱턴포스트>,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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