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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기록을 음악으로 남겨야 한다”

2018년 05월 16일(수) 제556호
이기용 (록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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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승우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노브레인을 결성한 이래 20년 가까이 가장 ‘댄디’하고 뜨거운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왔다.
얼마 전 세 번째 밴드와 결별하게 된 그를 두 차례 만났다.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➇ 차승우


몇 년 전 어느 날 ‘홍대에 공연을 보러 왔다’며 한 친구가 제주에 있는 내게 짤막한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그 영상에는 모노톤즈라는 새로운 밴드로 돌아온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노브레인을 결성한 이래 국내 록 음악 신에서 20년 가까이 가장 ‘댄디’하고 뜨거운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왔다. 그는 격렬한 밤의 로커다. 그러나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는 내가 아는 차승우의 기타 소리가 아니었다. 그 음악은 듣는 사람을 언제까지나 밤의 대기 위로 둥실둥실 밀어낼 것 같았다. 흡사 안개 사이를 떠다니는 것 같은 음악. 그 곡의 제목이 ‘인투 더 나잇’이다. 그것은 당시 기준으로 ‘최근 몇 년간 내가 들어본 가장 멋진 록 음악’이었다. 자신이 늘 해왔던 방식이 아닌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음악가들에게 저절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밤늦도록 음악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은 차승우와 그의 밴드 모노톤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인투 더 나잇> VIP 시사회 바로 전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영화 <인투 더 나잇> 홍보 일정 중에 밴드 멤버 두 명에 대한 ‘미투’ 폭로가 나온 것이다. 이에 곧바로 영화사 시네마 달은 영화 상영을 중단하기로 했고, 차승우·훈조도 밴드 해체를 결정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던 밴드와 세 번째로 결별하게 된 그와 나는 일주일쯤 뒤에 다시 만났다.

ⓒ팬더웨일 컴퍼니 제공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노브레인, 문샤이너스, 모노톤즈에서 밴드 활동을 해왔다.


이기용:당시 상황은 어땠나?

차승우:첫 번째 폭로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멤버를 곧바로 밴드에서 퇴출시켰고, 우리는 더 이상의 사고가 없기를 바라며 예정된 GV(관객과의 대화)를 소화하고 있었다. 물론 관객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두 번째 사건은 당일 극장 안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중에 집에서 걸려온 전화로 알게 되었다. “일이 또 터졌어”라는 말이었다. 출처는 트위터라고 하더라. 일단 비상계단으로 나가서 내가 먼저 사실 확인을 하고 영화사 대표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영화 상영을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시네마 달 대표는 관객들에게 GV를 못하게 되었다는 발표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나머지 멤버인 보컬 훈조와 나도 합정동의 인적 드문 카페를 찾아 들어가 이번 사태에 대한 밴드의 입장문을 썼다. 사실을 인지했다면 최대한 빨리 사과하고 밴드 해체를 발표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기용:그러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 어떤 심정인가?

차승우:사건이 있고 참 생각을 많이 했다. 음악이라 함은 사람을 꿈꾸게 하거나 춤추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사건에 연루된 멤버들이 음악을 그릇된 방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거기엔 미리 사태를 알지 못한 밴드 리더로서 내 책임도 큰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한편 더 이상 무너지지 말자, 잠식당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다. 허무하다. 30대 중·후반의 기록이 어느 날 거짓말처럼 다 사라져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보컬 훈조와 서로 도울 일은 돕겠지만 앞으로 모노톤즈가 연상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게 피해자들에 대한 남은 멤버들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앞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노래를 만들고 싶다.

이기용:‘인투 더 나잇’은 두 번째 밴드 문샤이너스가 해체되고 홀로 영종도에 살면서 만든 노래라고 들었다.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상황도 결국 음악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차승우: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기록을 음악으로 남겨야 한다. 이 시간마저 무위로 돌리기 싫기 때문에 음악으로 결국 증명해야 하는 거다. 진심이 담긴 음악으로 그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당연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이기용:분위기를 좀 바꿔보자. 고등학생 때 결성한 노브레인부터 20년 넘게 록 밴드를 해왔다. 어느 순간 록 음악에 사로잡히게 되었나?

차승우:어릴 적 누나가 좋아하는 당시 팝송 중에 비틀스 노래가 있었다. 그냥 충격이었다. 인생을 바꿔버릴 정도로 강렬한 3분이었다. 그 3분으로 내 인생의 모든 결론이 났다고 생각한다.

이기용:비틀스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했나?

차승우:1964년도 미국 <에드 설리번 쇼>에 나온 비틀스를 보면 모든 예술적인 것, 세상의 모든 좋은 게 거기 다 몰려 있다. 그들의 눈동자, 표정, 움직임 모두에서 반짝반짝하는 아우라가 보인다. 비틀스는 미국에 처음 입성하자마자 스스로의 힘으로 전 세계 문화를 바꿔나갔다. 그 첫 무대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내 인생도 바꿔놓았다.

이기용:시대와 함께 음악 역시 변하고 있다. 여전히 록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만족하나?

차승우:그렇다. 록 음악은 대체 불가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록 음악에서는 전통음악 같은 데에서 추하다고 여기는 그런 것들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느꼈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그런 역할을 하는 데에 충분히 만족한다.

이기용:직업으로서의 음악이 뮤지션에게 계속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음악이 구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 차승우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일 듯한데.

차승우:밴드를 탈퇴하거나 밴드가 와해되거나 할 때마다 다 터닝 포인트였다. 밴드가 곧 내 인생이었으니까. 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반복하고, 그러면서 또 부단히 노력하는 것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음악을 그만둘 생각은 할 수가 없다. 음악 없는 인생은 인간 차승우의 죽음이다. 그래서 그냥 애쓰지 말고 이 고단함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했다. 그랬더니 재미가 찾아오더라. 누구나 음악이든 그림이든 그런 것에 사로잡힐 때는,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는 것 같다.


공연에서 음악이 최고의 절정을 맞이하는 순간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밴드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관객이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차승우에게 음악 인생에서 커다란 시련은 지금일 수 있다. 두 번에 걸쳐 그와 인터뷰하면서 그런 염려는 줄어들었다. 그는 충분히 이성적이었다. 피해자와 팬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즉각적인 영화 상영 중단과 밴드 해체를 결정했다. 나는 그의 음악에 대한 깨끗하고 뜨거운 열정이 이번 일로 좌절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음악과 그를 좋아했던 이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그가 밴드에서 연주할 수 없게 된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들은 그가 멋진 음악으로 돌아올 때 강력한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음악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는 자신의 가장 뜨거운 지지자들을 확보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최근의 전화 통화에서 차승우는 올여름 발표를 목표로 디지털 싱글 두 곡을 작업하고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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