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바다낚시 사진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풍경. 사진 찍은 이들의 사연을 접하니, 풍경 사진이 달리 보였다. 5·18 시민군 양동남씨와 서정열씨. 두 분 모두 쉰이 넘은 나이에 카메라를 손에 잡았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요청해 지난 2년간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가 진행한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들은 ‘5월 광주’를 카메라에 담았다. 자신이 고문당한 곳을 찾아갔고, 자신이 체포된 도청을 수없이 방문했다. 그리고 자신이 담고 싶었던 일상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특집을 준비했다. 이번 기획은 지난해 10월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비매품으로 발간한 〈기억의 회복 2〉에 많이 기댔다. 두 분이 찍은 사진도 지면에 담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반대하며 방아타령을 트는 등 광주에 상처를 남겼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치유의 기념사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대통령의 기념사는 울림이 적지 않았다. 그 기념사와 5월 희생자 명단을 〈시사IN〉 제506호에 국장 편지 대신 전재했다. 그렇게 상처가 치유된 줄 알았다.

하지만 상처는 깊었다. 임종진 사진 심리치료 전문가의 진단대로 완벽한 형태의 치유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세월은 상처를 조금씩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양동남씨와 서정열씨가 당사자로서 상처가 깊다면, 문건양·김길자 어르신은 참척(慘慽)의 고통을 당했다. 그해 5월 막내아들을 잃은 부모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의 투사로 지냈다. 가택연금을 당하면 담을 넘어 거리로 나섰고, 경찰에 구타당해 머리가 깨져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양동남씨도 서정열씨도 문건양·김길자 어르신도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치유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동지를 잃고 자식을 잃은 이들은 38년이 지났는데도 웃는 게 어색하다. 낚시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웃다가도 먼저 간 이들이 떠올라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자책을 한다. 이제는 마음 놓고 웃으시라고, 등산도 다니고 꽃구경도 다니며 그저 재밌게 사셔도 된다고 주저 없이 말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주먹밥과 헌혈’ 정신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면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상처받은 이들이 편안한 웃음을 뒤늦게나마 되찾으면 좋겠다. 다시 5월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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