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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울증을 드러낼 때가 됐다

2018년 05월 18일(금) 제557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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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낸 독립 출판물을 내놓았다. WHO는 인류에게 가장 큰 부담을 초래하는 10대 질환 중 3위를 우울증으로 꼽았다. 우리는 우울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녹음은 습관이었다. 사람들과 대화 도중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겁이 나고 걱정됐다. 집에 돌아오면 녹음된 것을 들으며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몸서리쳤다.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녹음된 내용을 기록했다. 휘발되는 의사의 말을 글자로 붙잡아두고 싶었다. 기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특별한 이유나 감정 없이도 무시로 찾아왔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죽음을 상상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곁에서 내내 동동대던 애인이 물었다. “세희야, 배 안 고파? 너 좋아하는 떡볶이 먹으러 가자.” 보글보글 끓는 즉석 떡볶이 냄비를 앞에 두고 백세희씨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 와중에 떡볶이가 맛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맛있지? 나 죽고 싶은 거 맞을까? 왜 이렇게 난리야, 나는….”

ⓒ시사IN 윤무영
‘눈물 젖은 떡볶이’는 백씨의 책 제목에 영향을 줬다. 독립 출판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1292명이 모아준 2000만원으로 만든 백씨의 우울증 정신과 치료 일기다. 각종 전문가가 쓴 우울증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의사가 아닌 치료받는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우울증을 앓는 내가 여기 있다고 크게 손 흔들고 싶었다. 책은 지난 2월 1쇄 1500부를 모두 소진하고, 4월에 2쇄 500부를 찍었다. 정식 출판도 논의 중이다.

백씨 역시 자기 마음의 상처에 둔감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마음의 문제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나약하고, 내가 소심하고, 내가 사회에 부적절한 성향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화살의 과녁은 모두 자신이었다. 그래서 매일 자책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과호흡과 무기력에 하염없이 울며 고통 속에서 수많은 밤을 건넜다. 특히 불면은 우울증의 가장 흔한 증상일 뿐 아니라 우울증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갔다. 멀쩡해 보여야 했다. 직장도 있고, 애인도 있고, 친구도 있는 내가 우울하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힘들다는 기색을 슬쩍 내비치면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네가 뭐가 모자라서 우울하냐는 거죠. 근데 뭔가 모자라야만 힘든 건가. 나도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잘 모르겠으니까, 잘 안 되니까 답답했어요.” 말 그대로 ‘늪’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우울은 일상에 균열을 내고 누수를 만들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우울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기 장애나 통증으로도 나타난다는 걸 백씨는 그때 처음 알았다.

ⓒ시사IN 윤무영
동화작가 조제씨는 소셜 펀딩을 통해 <우울증이 있는 우리들을 위한 칭찬책>(위)을 펴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보건법 제4조 2항에 따라 2001년부터 5년마다 한 번씩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한다. 가장 최근에는 2016년에 실시됐다. 이 조사에서는 정신질환별 유병률을 조사할 뿐 아니라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도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 기분장애(질병분류체계에 따라 주요우울장애와 양극성장애가 대표적인 기분장애로 구분되며, 통상 주요우울장애는 우울증으로 양극성장애는 조울증으로 표현된다) 환자는 ‘그 정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75.9%)라고 답한 응답이 가장 높았다.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고 생각했다’(68.1 %)는 그 뒤를 잇는다. 우울증 치료의 첫 번째 장애물은 “나는 우울증이 아니야”라는 생각이다. 이처럼 신체 질환과 달리 정신장애는 당사자가 병의 정도를 인지 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분장애로 의욕이 저하되어 치료를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정신건강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호전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건강보험 자료 등을 이용해서는 병의 규모나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다.

백씨 역시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에 이르러서야 정신과를 찾았다. ‘자살 생각’에 시달리고서였다. 자해는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졌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제대로 된 상담을 받아보고 약을 먹어보자 싶었죠.” 우울증 진단은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 보고가 질병 여부 판단을 가른다. 우울증 환자가 100명 있다면 100명의 증상이 모두 다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는 자신에게 맞는 병원을 찾기까지 실패를 거듭하곤 한다. 고통스럽지만 자연스럽고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은 “내담자는 남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러 오기 때문에 정신과야말로 내담자와 의사의 합이 중요하다. 쉽게 이야기하면 미용사 같은 거고, ‘취향’도 탄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병원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옮기는 게 맞다”라고 조언한다.

당사자 시각에서 쓴 우울증의 기록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는 13주에 걸친 내밀한 상담 기록뿐만 아니라 백씨가 복용하는 약의 효능과 부작용까지 담겨 있다. ‘새로 처방한 명인탄산리튬정과 메틸페니데이트 때문인지 두통이 생겼다. 하지만 불안하고 초조해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증상은 얕아졌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식이다. “사람들이 상담은 한 번쯤 받아볼까 생각하지만, 약을 먹는 건 굉장히 겁내더라고요. 저라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고, 그래서 처방전을 하나하나 검색해봤죠. 상담을 통해 증상에 따라 약을 조절하는 일이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어요.”

백씨의 왼쪽 팔에는 ‘look from one to the other’(‘시선을 옮기다’라는 뜻)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나에게서 타인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그리고 다수에서 소수로, 쓸모 있지만 나를 녹슬게 하는 것들에서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로 시선을 옮기자는 의미예요.” 타투를 자세히 보면 ‘to’가 빠져 있다. 의도한 건 아니다. 타투이스트의 실수지만 그마저도 부족한 대로, 아픈 대로 ‘나 같아’ 이제는 마음에 든다.

동화작가인 조제씨(가명)가 <우울증이 있는 우리들을 위한 칭찬책>을 만든 이유도 자신의 우울을 다른 각도로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연말 ‘우울 삽화(Depre-ssive Episode·우울 증세가 나타나는 기간)’가 재발한 직후, 지독한 무기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3개월 가까이 침대에서 거의 일어나질 못했다. 밥을 먹기는커녕 세수하는 일조차 너무 어려웠다. 세수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자꾸 눈물이 났다. 자살 방법을 수없이 검색했지만 복잡하고 어려워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시사IN 윤무영
한 여성이 간이 정신 진단검사(SCL-90-R)를 하고 있다.

정신과 임상의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실제 우울증 환자의 자살 생각이 자살 계획과 시도로 이어질 때는 우울증이 어느 정도 호전돼 ‘기력을 회복한’ 이후일 때가 많다. “자살 생각이 심각한 경우라도 우울한 환자는 자살을 시도할 에너지나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대한민국 최고 명의가 들려주는 우울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겨우 세수를 마친 지난 1월의 어느 날, 조제씨는 몇 주 만에야 정신과를 찾았다. 그리고 트위터에 자신의 상태를 쭉 기록했다. 마지막에는 “나는 오늘 일어나서 세수를 했어요. 참 잘했습니다”라는 짧은 글과 ‘상쾌한 얼굴’을 간단히 그려 올렸다. “저한테는 그게 너무 대단한 일이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난 나, 세수한 나. 세수했다고 누가 칭찬해주지는 않으니까, 나라도 칭찬하자 싶었죠(웃음).” 우울할 때는 긴 글을 못 읽는다는 점에 착안해 그리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쓱 그린 그림과 칭찬을 한두 문장 적어 트위터에 타래로 이어 올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된 나를 칭찬하고, 오늘 살아 있는 내가 귀엽다고 칭찬했다. 아무것도 못하는 걸 견디느라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응원도 건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천 리트윗 끝에 달린 한 답글이 조제씨를 한 걸음 더 움직이게 했다. “이거 종이책으로 만들어서 베개 밑에 두고 싶어요.”

출판사에서는 책으로 만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내친김에 독립 출판 관련 강의를 한 달 동안 들었다. 조제씨도 백씨처럼 텀블벅을 통해 출판 자금을 모았다. 600여 명이 650만원을 모아줬다. 분량도 ‘리워드’도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워크북처럼 쓸 수 있도록 ‘칭찬 일기장’을 만들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둘 수 있는 엽서 두 장을 25쪽 분량의 짧은 ‘칭찬책’과 함께 구성했다. 작업을 하다가 힘들다고 트위터에 올리면 ‘힘내라’는 말 대신 “안 해도 돼요”라는 답글이 달렸다. 그런 말이 되레 마무리를 도왔다. “한국은 본인에게 엄격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잖아요. 이 책을 보고 ‘처음으로 나를 칭찬해봤어요’ ‘이 책만이 나를 칭찬해줬어요’라는 독자 반응에 뭉클했어요.”

조제씨는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자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이나 가족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적잖이 놀랐다. “독립 출판 중심이긴 하지만, 우울증 관련한 책들이 당사자 시각으로 나오는 건 이런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너희는 한 번도 자살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항상 죽고 싶어!’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린다고 해야 하나(웃음). 실은 ‘잘’ 살고 싶어서 죽고 싶거든요.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이 많이 아프던 많은 날에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제 ‘덜 아픈 날’에는 자신이 그 내미는 손이 되기를 바란다. 짧은 기자 생활과 온라인 서점 MD를 거쳐, 결국 동화를 쓰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스스로는 인간에게 애착하지 못해 책에 애착했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기여하는 게 우울증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기여하는 방법이 무언가를 쓰고 만드는 일 같아요.”

5월에는 작은 카페에서 ‘칭찬책’의 내용을 전시하고, 6월부터는 우울증 환자들을 모아 자조 모임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제씨가 몇 년 전 환시(幻視)를 보기 시작했을 때, 정신과 의사는 그를 집단 치료에 집어넣었다. 사람이 싫은데 사람들 틈에 있어야 했다. “그날 집에 오면서 엄청 울었어요. 저는 사람이 정말 싫은데 마치 응급실 링거처럼 사람들이 저를 치료하는 걸 느꼈거든요. 만화 <그린빌에서 만나요>를 보면 그런 비유가 있어요. 활엽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선인장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선인장은 물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죽잖아요. 딱 저는 그런 사람인 거 같아요. 활엽수 같은 사람 부럽죠. 그렇지만 저는 선인장 같은 사람인데 어쩌겠어요.”

우울 성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울증에 대해 가장 견디기 힘든 편견은 약에 관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약을 끊어야 병이 회복됐다고 생각하지만 조제씨는 약을 끊을 계획이 전혀 없다. 지금 자신이 괜찮아 보인다면 그건 일정 부분 약의 도움 덕이라고 생각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나 심장 약은 절대 끊으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안 먹었다고 하면 혼내고.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있다고 그 이유로 끊지 않잖아요. 우울증 약도 저한테는 그만큼 중요한데 왜?”

기분장애의 양상이 사람에 따라 다양한 만큼 우울증 치료 역시 ‘완전히’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우울증 걸린 사람 100명이 한두 달간 약을 복용하면 그중 30명 정도만 회복한다. 나머지 20명은 상당히 회복되지만 여전히 우울한 상태가 남아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주 조금 나아지거나 차도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 50명이 다른 약을 시도해보면 그중 15명이 나아지고, 또 다른 약을 시도하면 그중에서 또 일부가 나아지는 식이다(앨릭스 코브, <우울할 땐 뇌과학>).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면서도 심각한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에게 가장 큰 부담을 초래하는 10대 질환 중 3위를 우울증으로 꼽았고, 2030년에는 1위가 되리라 예측한다. WHO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약 4%에 해당하는 3억2200만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이는 2005년에 비해 18.4% 증가한 수치다.

한국의 보건의료 수준은 낮은 영아사망률이나 평균수명 등에서는 최상위 국가 중 하나지만, 정신건강 면에서는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우울증을 심각한 질병으로 여기지 않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도 높다. 신체 질환은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과 더불어 질병 부담도 줄고 있지만, 기분장애는 그 속도가 신체 질환에 비해 더딘 편이다.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미국 43.1%(2015년), 캐나다 46.5%(2014년) 등인 데 비해 한국은 22.2%(2016년)에 불과하다. 우울증 역시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초기 진단과 개입이 증상을 완화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빨간불’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울증 환자의 50%는 마흔 살 이전에 첫 번째 ‘우울 삽화’를 경험하며 초기 치료에 실패할 경우 큰 스트레스 없이도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평생 5~6회 이상의 우울 삽화를 반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16년 보건복지부 역학조사(위 인포그래픽 참조)에 따르면 주요우울장애를 포함한 기분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6.9%이다. 그러나 정신과 임상의들은 적게 잡아도 15~20%의 국민이 우울증이라 부를 만한 증상을 겪는다고 보고 있다. 반면 역학조사 결과는 2011년에 비해 주요우울장애가 감소한 걸로 나타난다.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보고서가 “정말 우울증이 감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라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점이다. 특히 2016년 조사에서는 전 연령층에서 주요우울장애가 감소됐지만 20대 남성 미취업자층에서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조사팀은 전반적인 유병률 감소 이유 중 하나로 생애주기별 정신건강검진, 우울증 선별검사,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한 무료 정신과 상담 서비스 등 정신건강 서비스 확대 정책 활성화를 꼽는다. 2017년 현재 공공 정신보건 전문기관인 정신건강증진센터는 16개 광역시와 209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중증’이거나 ‘위급’한 정신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이는 대상자에게 적절하고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담당자의 역량이나 재량에 의해 지역 협력 병원과 연계되는 폭도 제각각이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은 ‘공중보건의 재앙’

그 자신이 우울증 환자로 가장 최신의 뇌과학 연구를 집대성해 우울증을 살펴본 <우울할 땐 뇌과학>의 앨릭스 코브는 누구에게나 우울 성향이 있으며, 진화의 결과 뇌가 그런 성향에 빠지기 쉽게 배선되어 있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것에 의해 뇌의 감정 회로가 더 쉽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하강 나선은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다시 말해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뇌의 긍정적 피드백 시스템은 아주 작은 변화로도 충분한 효과를 낸다. 그 방법이라는 건 다소 싱겁다. 쉬워서 간과하기 쉽고, 간단해서 무시하기 좋은 것들이다. 이를테면 걷기다. “우울증에 걸린 뇌는 아마 포기하라고 말할 것이다. 운동을 하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의견은 고맙게 잘 들었다고 대답하고 이제 걸으러 나가자.”

우울증에 관한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한낮의 우울>(민음사, 2004)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은 700여 쪽을 할애해 자신의 우울증 투병 과정과 관련 연구를 종합해 탐구한 결과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 책의 출간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울증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우울증을 견디기가 한결 더 수월해졌고 재발을 방지하기도 쉬워졌다는 점이다.” 앤드루 솔로몬은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점이 사회에 만연한 우울을 감춘다고 지적한다. 이는 일정 부분 우울증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사회적 오명 때문이다. 그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의 말을 빌려 그런 편견이야말로 ‘공중보건의 재앙’이라고 부른다. 미국 신경과학자 앨릭스 코브도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해는 인정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백세희씨나 조제씨의 경우처럼 한국에서도 우울증 당사자로부터 ‘드러내기’가 시작됐다. 이런 움직임이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바꾸는 하나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그 시도의 주춧돌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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