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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즈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2018년 06월 01일(금) 제558호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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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대표적인 1.5세대 재즈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의 소리를 기록하는 데 애쓰고, 동시대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➈ 임인건

재즈 음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마도 똑같은 곡을 두 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변주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 일회성이 주는 자유로움 덕분에 재즈를 듣다 보면 어느덧 마음의 경계가 풀어지고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이런 재즈의 자유로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가져봤을 어린 시절의 편견 없는 순수함 말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피아노를 접하게 되고 20대 중반이 넘어서 비로소 재즈를 시작한 임인건. 그는 음악이 그에게 저절로 왔다고 했다(사람들은 그를 대표적인 1.5세대 재즈 뮤지션이라 평한다). 그는 1986년 즈음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의 소개로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연주를 시작한 이래 2013년 제주로 이주하기까지 25년이 넘도록 야누스에서 연주했다.

1989년에 발표된 그의 1집 앨범 <비단구두>는 한국의 첫 번째 피아노 솔로 연주 앨범이다. 2016년에는 재즈 싱어 박성연을 비롯한 여러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한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가 그의 주도로 제작 발표됐다. 그는 현재 제주 동북쪽 해안마을 하도리에서 ‘하도리 가는 길’이라는 카페 겸 공연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기용:드물게도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현재까지 재즈 피아니스트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피아노에 빠진 계기는?

임인건:피아노를 처음 접한 것은 열여섯 살 때쯤이다. 중학교 2~3학년 때 갑자기 피아노에 호기심을 느껴서  미친 듯이 쳤다. 한번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10∼11시간씩 쳤다. 아침 8시가 되면 어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빵 반쪽, 우유 한 모금만 먹고는 했다. 점심때는 많이 먹으면 피아노 못 치니까 라면 반 개. 저녁 8시에 밥 먹고 잠깐 산책하고 또 피아노 치고. 그 무렵 밤에 자다 깨서 화장실 가다가 안방 앞을 지나가는데 ‘큰일이다. 인건이 병원에 보내야 되지 않나’ 하고 어머니·아버지가 한탄하시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피아노에 빠진 이후로는 거의 피아노만 붙들고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피아노 뚜껑을 자물쇠로 잠가놔서 동네 교회에 가서 청소해주고 밤늦게까지 피아노 친 후 집에 들어갈 정도였다.

이기용:1989년 처음 발표됐고 최근에 전곡이 재녹음된 <비단구두>는 스튜디오가 아닌 푸른 숲속에서 만들어진 듯 깨끗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나?

임인건:<비단구두>는 ‘나도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앨범이다. 그전에는 나 자신을 단지 재즈 연주자로만 생각했는데 나도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쁨과 행복이 아주 컸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피아노 연주자이자 동시에 창작자로 인식하게 만들어준 앨범이다.

이기용:1980년대에는 재즈를 접하기 어렵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땐데, 어떻게 재즈에 빠지게 됐는지.

임인건:피아노에 빠진 이후로 드뷔시 음악도 치고, 라벨 작품 같은 클래식 곡들도 치고 나중에는 현대음악까지 여러 음악을 했다. 하지만 아직 내 것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의 음악을 듣고는 머리가 뻥하고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치고 싶어서 내가 지금까지 헤매고 있었구나. 앞으로 이런 연주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용: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재즈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임인건:클래식은 정해진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게 우선이다. 반면 재즈는 주어진 코드 내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그 음악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와 용건이 있어서 만났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 얘기도 하고 술도 한잔 하는 등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지 않나. 그런 자유로운 감성이 재즈의 특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악기에 귀천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악기든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 평등함이 또 재즈의 생명이다. 그런 게 있다면 뭐든 재즈라고 생각한다.

이기용:
야누스는 재즈 싱어 박성연이 1978년 신촌에서 문을 열었다. 2016년에 발매한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는 한국 재즈의 산실인 야누스에서 활동한 국내 재즈 1세대들이 참여한 앨범인데,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나?

임인건:재즈 1세대의 앨범을 늦게라도 제작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일이다. 일본과 독도 문제로 마찰이 잦으니 당시 KBS PD가 사료를 들고 일본에 갔다. 일본인 관계자에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쓰여진 역사책을 보여주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본인이 한국의 역사 기록의 빈약함을 비웃었는데 그 모습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한국 재즈 1세대 음반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 재즈 1세대 뮤지션들의 음반 있니?’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거다. 야누스는 재즈 자체가 매우 희귀할 때 1세대 재즈 연주자들이 연습하고 공연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재즈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재즈에 헌신해온 이동기 선생님(인터뷰를 하고 얼마 후에 타계. 클라리넷 연주자)과 박성연 선생님 등이 이미 몸이 많이 아픈 시점이라 더 이상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곡 써서 앨범 녹음을 한 거다.

이기용:야누스에서만 오랜 세월 연주했다. 제주로 오기 전 그곳에서 한 마지막 공연은 어땠나?

임인건:어두침침한 그 지하에 손님이 단 두 명 앉아 있는 가운데 마지막 연주를 했다. 슬프기도 했지만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가까스로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기 위해 일어섰는데 박성연 선생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면서 퇴직금이라고 5만원을 봉투에 넣어주시더라. 손님들이 없어서 재정난으로 형편이 어려울 때였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주방으로 휙 들어가버리셨다. 나오시라 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주방에 대고 인사를 드렸다. 나오면서 보니까 5만원짜리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뭉클했다. 언젠가는 어려운 시절 재즈에 헌신했던 많은 분들과 야누스를 기억하는 ‘퇴직금 5만원’이라는 곡을 쓰고 싶다.



한번 밖으로 나간 소리는 사라져버리기에 붙잡을 수 없다. 1978년에 문을 연 야누스에서 연주하던 1세대 재즈 뮤지션들은 이제 모두 고령이어서 얼마나 그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정작 재즈 분야에서 소위 명성이 있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한국 재즈의 명맥을 잇는다거나 앞선 세대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는 데 무관심할 때, 선배 뮤지션들의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 임인건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BMK, 계피, 강아솔, 김목인 등 동시대 뮤지션들과도 꾸준히 협업하며 현재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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