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이 사람들로 붐볐다. 1·2호선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각각의 출구를 찾아 직진했다. 장대비를 피해 사진 찍을 곳을 찾는 동안 장강명 작가(43)가 스스로를 이곳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역을 스쳐 가는 수많은 갑남을녀처럼, 보통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입구를 통과하고 싶어 하는 문학 공모전과 공채 제도에 대해 2년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냈다. 〈당선, 합격, 계급〉.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각종 시험제도가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는지 파헤쳤다. 소설이 아니라 르포다.

옛날부터 의문이었다. 왜 소설가가 되려면 공모전을 거쳐야 하는 걸까. 작가 지망생들도 그에게 질문했다. 문학상마다 원하는 스타일이 있나? 미등단 작가에게 차별이 있나? 때로는 당선에 유리한 서체, 줄 간격 등이 미신처럼 떠돌았다. 실질적인 조언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취재하는 동안 공모전이 기업의 공채 제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이 치열하고 단체 시험인 데다 합격 이후엔 좀처럼 합격자 신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이라는 점에서 입시와 각종 고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이 늘어나면서 늪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시사IN 이명익자신을 “보통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한 장강명 작가는 2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통과하고자 하는 공모전과 공채 제도에 대해 취재했다.

장편소설 공모전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문학동네소설상은 1995년에 만들어졌다. 이듬해 한겨레문학상과 문학동네작가상이 만들어졌고 이후 경쟁적으로 공모전이 늘어나 상금이 1억원대까지 치솟았다. 상금이 고액인 데다 데뷔와 동시에 단행본이 나온다는 점에서 ‘발탁’에 가까워 단편소설 공모전보다 공채와 비교하기 적합했다. 작가가 장편소설 공모전을 취재하게 된 계기다. 이 기획안을 들고 출판사에 찾아간 게 2015년 초였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그가 ‘데스크’의 심정으로 사안을 대하니 취재할 게 많았다. 민음사, 문학동네, 한겨레출판사 전·현직 대표를 인터뷰하고 각종 심사위원들과 작가들을 만났다. 작가 지망생 520명에게 설문을 돌리고 삼성직무적성검사 시험장과 로스쿨 학생들의 시위 현장도 찾았다.

장 작가 본인의 뿌리도 장편소설 공모전이다. 삼성 공채를 통과한 경험까지 합치면 문학상과 공채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차례 좌절도 겪었다. 일간지 기자로 일하던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등 장편문학 공모상만 네 번 탔다. 첫 번째 상을 타고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는데 말이 등단 작가이지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상을 탈 때까지도 그랬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틈틈이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날 불쑥 사표를 낸 뒤 본의 아니게 전업 작가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작가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은 두 가지였다. 베스트셀러를 써서 독자의 인정을 받는 것. 또 하나는 공모전이었다. 장편소설 공모전에는 기성 작가도 도전할 수 있었다. 등단 이후 직접 출판사에 투고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소설이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책에선 그가 데뷔했던 한겨레문학상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담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가 심사할 당시 응모 원고는 238편으로 사과 상자로 10상자 분량이었다. 장 작가는 그중 예심에서 31편을 심사했다. 지루해도 끝까지 읽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겼고 엑셀 프로그램으로 표를 만들어 별점을 매긴 뒤 짧은 평가를 남겼다. 하루에 네 편을 읽기도 했고 어떤 원고는 이해가 안 되어 5일이 걸리기도 했다. 심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스스로 너무 본인 취향이 아닌지 의심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보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본심 현장은 치열했다. 취재 전 의구심 중 하나가 ‘게으르게 심사하는 건 아닐까’였는데 의외로 날선 비평이 오갔다.

대안은 ‘독자 중심의 독서공동체’

세심하게 공정성을 따지는구나 싶어서 안심되는 한편, 수능도 그렇고 우리가 ‘공정성 있는 시험’을 너무 믿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원고를 순서대로 세워 첫 번째 작품을 뽑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런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문학작품을 줄 세우는 게 불가능한 일인데 마치 가능한 것처럼 하고 있다. 연장해서 보면 학생의 수학능력을 예상한다거나(입시), 구직자의 업무 능력을 예상하는 것(공채)도 가능하지 않은 일인데 가능한 것처럼 군다. 뽑는 사람도 그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시험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누구도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차별과 억압을 낳게 되는 구조다.”

장 작가는 문학공모전을 없애는 데에는 반대하지만 신인을 발견하는 다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채도 마찬가지다. 공모전과 공채 둘 다 안전성이 높고 ‘제너럴리스트’를 뽑기에 좋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 소설이 역동성을 잃어가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대안은 독자들의 ‘문예운동’이다. 비평가가 아닌, 독자 중심의 독서공동체가 능동적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다양한 작품을 응원하는 형태다. 그 운동을 자극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서평이다. 그는 지난해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으로 50인의 서평을 묶은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그런 일을 정부가 이어갔으면 한다.

책 곳곳에 신문기자로 지냈던 11년의 흔적과 그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저널리스트로서 기본 교육은 잘 받은 편이라 자부한다’는 부분이나 언론사 채용 시스템에 대한 조언이 그렇다. 그는 스스로 ‘기자 일’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게 기자를 그만두고 나니까 취재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시간이 없어 취재가 다 안 끝났는데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번에 취재를 하며 ‘북 저널리즘’이 언론사에 하나의 활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포털’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애쓰기보다 뉴스 생산자의 본령을 지키면서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저자로 데뷔시키면 어떨까. 책을 내기 편한 형태로 연재를 한다든지 기자의 관심 분야를 독려하는 방식이다. 기자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언론사는 전문성 있는 스타 기자를 보유하게 된다.

장강명 작가의 본업은 (당연히) 단행본 저술이다. 하루 여덟 시간을 재가며 글 쓰는 걸로 유명하다. 외부 활동도 늘리고 있다. 책과 관련된 사람이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 마케터, 서점 관계자까지 여럿이라 책임감이 생겼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은둔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독서 팟캐스트나 방송 활동을 하는 건 독자와의 접점을 넓혀야 하는 시대적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다.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서 패널 섭외가 많이 오지만 현안에 반응하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 곧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초대됐던 탈북자 지성호씨를 주제로 한 르포를 한 권 더 발간할 예정이다.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제임스 엘로이의 추리소설 〈블랙 달리아〉를 권했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추리소설이다. 소설이건 르포건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시의성 있는 주제를 파고드는 장강명 작가 고유의 스타일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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