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름만 보고 일단 집어 드는 책이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의 책도 그중 하나인데, 과학에 문외한인 내게 이미 몇 차례 한없이 친절한 ‘과학 대중서’의 세계를 맛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과 대중을 잇는 자칭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과학에 대한 본격적인 지식보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에세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어떤 사회적 이슈나 일상의 풍경에서도 과학의 그림자를 발견해 과학적으로 빗대거나 설명해내고야 마는 경지가 놀랍다. 가령 한 중소기업의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단체 ‘카톡’에 불평하는 직원을 ‘물 흐리는 미꾸라지’로 비유한 걸 예로 들며 미꾸라지가 웅덩이를 흐리는 게 아니라 더러운 물에서도 버티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식이다.
생활 속 오해나 잘못된 상식도 되짚어준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를 전자파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전자파가 발암물질을 만들어내고 인체 세포까지 손상시킨다고 믿는다. 모든 전자제품에서 전자기파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유독 전자레인지와 휴대전화에 예민하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와 암의 발생 사이 약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발암물질 등급표에 따르면 김치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 “우리는 뇌의 10%만을 쓴다”라는 말도 실은 없는 말이다. 권위에 도전하고 신화를 부수는 역할을 하는 과학이 오히려 그에 복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과학에 대한 상식을 폭넓게 얻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책을 관통하는 태도다. 김상욱 물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고. 과학은 잘 모르지만 과학적이면 좋겠다는데 곱씹게 되는 문장이다.
-
빈곤이 파괴한 미래
빈곤이 파괴한 미래
임경지 (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며칠 전에는 영하 30℃의 칼바람이 한반도를 뒤덮었다고 한다. 이러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살을 에는 강풍처럼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손...
-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임진영 (건축 전문 기자)
‘맨션아파트’라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이다. 저택을 말하는 맨션이 집합 주거인 아파트의 수식어라니, 맨션은 어떻게 아파트의 이름이 되었을까. 1978년 프랑스 대사관이 나서서 ...
-
파란만장 황석영을 이해하다
파란만장 황석영을 이해하다
조선희 (소설가·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소설집 〈객지〉가, 내가 읽은 첫 황석영 책이었던 듯싶다. 1979년 무렵, 대학 시절이었다. 〈객지〉에 수록된 〈장사의 꿈〉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은 연극으로, 영화로 ...
-
일제강점기 건축가가 남긴 유산
일제강점기 건축가가 남긴 유산
천경호 (루아크 대표)
길을 걷다 오래된 건물과 마주치면 그 앞에 잠시 서서 가만히 올려다보곤 한다. ‘이 건물은 어떤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하고 생각해...
-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모두 문자화했다”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모두 문자화했다”
임후성 (북콤마 대표)
도착한 원고를 처음 열어보던 때를 기억한다. ‘워터마크’가 전자원고 페이지마다 찍혀 있었다. 길을 가다가 앞사람 신발 뒤축을 밟은 적이 있지 않은가. 보통은 잠깐 돌아보다 마는데,...
-
‘나쁜 여자’가 여는 더 나은 삶
‘나쁜 여자’가 여는 더 나은 삶
정철수 (이매진 대표)
법무부 고위 간부의 여성 검사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뉴스를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면서도 자기가 당한 범죄 앞에서 오랫동안 번민했다는 역설 때문이었다. 한편...
-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
김주희 (궁리 편집자)
2013년 이맘때였다. 한 시민 강좌에서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를 처음 봤다. 미국 뉴스쿨에서 〈정치적 적들 간의 화해를 위한 헌법 짓기〉라는 논문을 마치고 10년 만에 모국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