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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퀴퍼’에서 러쉬와 만나요”

2018년 05월 30일(수) 제558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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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쉬코리아는 여성 임직원 비율이 70%가 넘는다.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 대한 복지가 마련되어 있고 성 소수자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우미령 대표(사진)는 16년째 러쉬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2002년 스물아홉 살 여성이 알록달록한 색과 맛있는 냄새에 반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수제 비누와 입욕제로 유명한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는 알면 알수록 재밌는 기업이었다. 천연 재료로 만든 비누는 유통기한이 14개월 정도로 짧았다. 포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누를 덩어리째 놓고 치즈처럼 즉석에서 썰어 판매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광고나 마케팅 대신 비영리단체에 버금가는 환경·인권·동물보호 캠페인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 러쉬를 론칭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우미령씨만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 대형 유통사 5~6군데가 러쉬 본사와 접촉 중이었다. 화장품업계 경력이 없는 우씨는 일단 본사로 찾아갔다. 창립자 집에 머물면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판매도 해봤다. 러쉬 본사가 그 열정을 높이 샀다. 대형 유통사 대신 경력 없고 나이도 어린 우씨를 선택했다.

우미령 대표(45)가 이끈 러쉬코리아의 지난 16년은 영리기업이 다르고, 바르게 성장하는 법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한 개 매장, 다섯 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6년 사이에 71개 매장, 820명의 직원을 두게 되었다(2018년 4월 기준). 여성 직원은 물론 여성 임원 비율이 70%에 달하고, 기혼자 유자녀 위주의 사내 복지제도도 비혼자가 누릴 수 있도록 확대했다. 남다른 기업 문화도 눈에 띈다. 러쉬코리아 같은 회사가 한국에서 또 생겨날 수 있을까? 우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세상이 올 거다”라고 자신했다.

입사자뿐 아니라 퇴사자에게도 손편지와 선물을 보낸다.

2002년 서울 명동에 첫 매장을 오픈할 때 다섯 명이 시작해서 지금 820명까지 직원이 늘었다. 처음엔 무슨 체계가 있었겠나.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고 일의 경계도 없었다. 나부터 물건 나르고, 판매도 하고…. 회사는 점점 성장하고 사원 복지도 좋아지는데 고생만 하고 보낸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 회사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간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 잘 지내고 있는지, 당신들 덕분에 오늘날 러쉬코리아가 있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마음만 먹고 있다가, 지난해에 더는 미루지 말자 싶어서 퇴사자 중 연락이 닿는 80여 명에게 두 달간 매일 편지를 썼다.

출장지에서도 직원들에게 손편지를 보내곤 하던데, 답장은 잘 받는지.

주는 만큼은 못 받지만, 그거 생각하고 했으면 오래 못했을 거다(웃음). 나는 몇 년 전부터 나를 러쉬코리아 대표가 아니라 러쉬코리아 ‘해피 피플’의 대표라고 소개한다(러쉬코리아는 임직원을 해피 피플이라고 부르고 직급이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른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가장 기쁘고 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더라.

ⓒ러쉬코리아 제공
2017년 5월30일 러쉬코리아의 한 직원이 사내에서 비혼식을 열고 동료의 축하를 받았다.

러쉬코리아가 실시하고 있는 반려동물 수당과 장례 유급휴가, 비혼 선언 직원에 대한 휴가와 축의금 제공 등은 다른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제도다.

키우는 강아지가 죽어서 복도에서 울고 있는 직원을 봤다. 그 와중에도 퇴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더라.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픈 자신을 돌보고, 죽은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를 치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으려면 사내 보고 절차를 쉽게 만들어야 했다. 제도를 정비하면서 보니까 기혼자에 대한 혜택만 계속 늘고 있더라. 저도 기혼자이고, 여성 임직원이 많은 회사이다 보니 육아를 병행하는 분들도 많다. 자연스럽게 ‘아이도 잘 키우면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려면 회사가 어떤 걸 지원해야 할까’ 위주로 고민해왔던 것 같다. 더 다양한 직원이 누릴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비혼 직원에 대한 지원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 혼자 결정해서 공지 내리고 ‘이거 합시다’라고 한 건 아니다. 내가 못 챙기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혹시나 회사의 여러 제도로 인해 역차별당하는 사례는 없는지 사내 여러 회의 단위를 통해 살펴보고 의견을 모아 바꿔나갔다.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5년째 참가하고 있다. 성 소수자 채용도 적극적으로 하고, 입사 후 커밍아웃한 직원도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생경한 풍경이다.

사람은 경험하는 만큼만 안다. 나도 그랬다. 러쉬코리아를 운영하면서야 성 소수자 존재를 알게 됐다. 직원 중에 성 소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게 ‘상술’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우리가 행진할 때 누군가 그런 피켓을 들고 있더라. ‘우미령 대표 자녀가 넷이라던데 대표님 자녀가 성 소수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 대답이 일회성이 아니라 러쉬코리아 이름으로 ‘꾸준히’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거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내 ‘인정’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저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하면서 재능을 펼치길 바란다. 성 소수자라는 잣대로 사람을 보거나 구분하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의 이런 행동이 놀랍지 않은 시대가 올 거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에도 당연히 참석한다.

2016년 임원 중 한 사람이 한 강연에서 성 소수자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외부 대응도 중요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내부였다. 다른 것보다 우리 조직 내부에 성 소수자가 있지 않나. 우리 직원이 상처받을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 대해 전 직원이 수차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조직의 역량은 사고가 터지면 드러난다. ‘윗분’이라고 해서 어려워하지 않고 여러 직원이 다양한 형태로 임원에게 피드백을 했고, 당사자도 수용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카라’ ‘핫핑크돌핀스’ 같은 동물 보호단체 외에도 청소년 성 소수자를 지원하는 ‘띵동’이나 미혼모·위안부·탈북자·난민단체도 지원한다.

본사의 글로벌 가이드 중 하나가 ‘연예인을 모델로 쓰지 않는다’이다. 어떤 때는 ‘아, 우리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웃음). 그런 제약 덕분에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러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 같다. 2~3년 전부터는 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 지역사회와의 상생 같은 것들. 러쉬의 제품이 오는 ‘근본’에 대한 것들이다.

ⓒ러쉬코리아 제공
2016년 서울 중구에서 열린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러쉬코리아 직원들.

제품 포장도 최소한으로 한다.

포장이 없는 고체 제품이 30% 정도다.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고체 제품은 재활용 용기를 쓰거나 담을 용기가 따로 필요 없게 만든다. 액체 제품은 펌핑 용기에 담기 마련인데, 플라스틱과 스프링이 내장될 수밖에 없고 스프링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으면 재활용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지 계속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제조공장도 있지만, 주 제품 수입처가 영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방사능 이슈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장거리 배송 자체가 환경에 부담이 된다. 또 유통기한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공급받는 게 더 신선하다. 방사능 이슈는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제 영국 본사에서도 걱정했다. 오랫동안 궁리하고 검증한 후에 결정했고 로열티 높은 분들은 계속 믿고 찾아주신다. 그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더 철저히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말한 대로 충성 고객이 많은데,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윤리 소비라는 말이 이제는 식상해졌지만, 소비자로 하여금 내가 쓰고 있는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은 만큼 알 수 있게 한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브랜드에서 진행하는 각종 캠페인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제품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있다 보니 조금 비싸더라도 ‘이걸 쓰겠다’는 거다. 또 진심으로 행복하게 일하는 매장 직원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하지 않을까. 왜 이렇게까지 영업하지? 진짜 좋은가, 진짜 행복한가? 궁금한 거지(웃음). 러쉬는 매장마다 인스토어 트레이너·VMD·캠페이너가 다 따로 있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인스토어 트레이너가 붙어서 제품 교육을 하고, 인스토어 캠페이너가 회사의 철학을 가르친다. VMD도 매장마다 있어서 각 매장의 특성과 고객에 맞게 제품 진열을 바꾼다. 매장에서 매일 쌓이는 고객과의 경험은 본사에 있는 사람은 가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채용 계획이 있을 때도 내부 채용을 우선한다.

화장품 업계 경력이 전무했다. 보석 디자인과 감정을 공부했는데 2002년 러쉬코리아 한국 지사 계약은 어떻게 따냈나.

보석 디자인도 하고, 웨딩 사업도 잠깐 하고, 청소 용역업체도 만들어봤다. 내가 해온 일을 쭉 보니까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몸을 쓰는 일이더라. 몸으로 부딪쳐서 배우고 변화하는 걸 좋아한다. 화장품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발이 묶여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시장조사를 좀 했다. 안경 박람회도 가고, 장난감 박람회도 가고. 당시 뉴욕에 블리스나 프레시 같은 자연주의 화장품이 막 론칭되던 때였다. 제품 이름이 재밌어서 보다가 러쉬라는 브랜드도 알게 됐다. 이게 비누라고? 이게 화장품이라고? 일단 한국에 돌아와서 러쉬 매장이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 갔다. 이런저런 제품을 써보고 바로 러쉬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아예 넘어갔다. 지원하고 계약까지 11개월 걸렸는데, 빨리 된 편이라고 하더라. 당시 5~6곳 정도 대규모 유통사도 계약을 원했다고 하던데. 내가 서류만 보낸 게 아니라 직접 가서 창립자 집에 머물며 제품도 만들고, 판매도 해보고 했던 점을 높이 산 거 같다. 성격이 급한 건 아닌데, 실행력은 좋은 거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저지르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될 때까지 한다.

그런 점이 채용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2016년 첫 신입 공개채용 당시 채용 방식이 화제였다.

지원서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졸업한 고등학교만 적도록 했다. 대학, 경력, 영어 성적 같은 이른바 ‘스펙’은 전혀 보지 않았다. 면접도 막내 직원들이 보고 나는 통보만 받았다(웃음). 경력 공채 때도 지원자가 원하는 시간에 면접을 봤다. 새벽 6시에 면접 본 적도 있다.

ⓒ시사IN 윤무영
러쉬코리아는 임직원을 ‘해피 피플’이라 지칭하고 직급이 아닌 닉네임으로 부른다.
위는 본사 입구에 마련된 러쉬코리아 71개 매장의 해피 피플 사진.

3남1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은 없나.

솔직히 나야 대표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직원들보다야 여유가 있다. 아이들이 넷이나 되다 보니 서로 챙기기도 하고.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를 많이 낳겠다고 계획했기 때문에 일단 낳긴 했다(웃음). 나부터 그러면 안 되는데 육아휴직은 두 달 정도씩만 썼다. 어느 날 보니까 ‘감사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라는 말을 내가 달고 살더라.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그래도 여성이 가정에 묶이지 않고 일터에 남아 버텨야 한다. 그게 내 숙제다. 내가 내 자리에서 버티면서 목소리를 내고, 다른 회사나 조직이 하지 않더라도 나부터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바꾸고, 그런 과정이 다음 세대 여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길로 가야 한다. 여성 직원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쪽으로 계속 고민한다.

중학교 2학년인 큰아이가 대학에 가지 않는 것으로 본인 진로를 결정했다는데.

자기가 알아서 잘 하겠지.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러쉬코리아가 공채에서 이력서를 받지 않고 있는데, 내가 내 자식에게 ‘남들처럼’을 강요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는 직원들 앞에 바로 설 수 없다. 다만 나중에 아이가 ‘엄마 왜 나를 말리지 않았어?’라고 후회할 때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까를 준비하고 있다. 자녀가 공부 잘하면 당연히 좋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나는 러쉬코리아 직원들을 통해 매일매일 눈으로 보고 있다.

러쉬코리아는 여성 임원 비율이 70%다.

여성을 더 우대하거나 남성을 덜 우대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여성·남성을 나누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뽑고, 잘하는 사람과 일한다. 여성 임직원이 많아서 좋은 점은 ‘노(No)’라는 말을 쉽게 빨리 해준다(웃음). 상명하복보다는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한다. 물음표를 선물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글로벌 보험사인 푸르덴셜생명의 첫 여성 CEO를 역임한 손병옥 대표가 어느 날 그러더라. 한국 기업에서 여성 대표나 임원이 얼마나 될 거 같으냐고. 막연하게 아무리 그래도 10%는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국내 30대 그룹에서 여성 임원 비중이 겨우 3% 남짓이다. 아, 더 잘 버텨야겠구나 생각했지(웃음). 책임감이 있다.

의사 결정 단계를 아래로 많이 내려준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SNS 채팅방이 80개쯤 되는 등, 조직의 피로도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답을 못 찾았다. SNS 채팅방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러쉬코리아는 매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SNS가 소통에 필수적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방을 막 새로 만들 때도 있다(웃음). 대신 요즘은 업무 논의가 끝나고 나면 ‘선언’한다. “일이 다 마무리됐습니다. 채팅방 나가셔도 됩니다” 같은 식으로. 업무 시간 외에는 쓰지 않는 등 에티켓을 만들어나가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온라인상으로만 대화하지 않고 정례적으로 크고 작은 피드백 타임도 갖는다. 얼굴을 맞대고 잘한 점, 아쉬운 점을 공유하고 ‘숨은 히어로’를 찾아 칭찬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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