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대표적인 분쟁은 무엇일까? 대번에 둘이 떠오른다. 한반도 문제,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두 분쟁 모두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맞물려 시작되어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둘로 갈린 한반도는 남북이 하나 되어야 궁극적인 평화가 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반대다. 한 공간에 사는 이스라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견원지간인 이들 두 민족이 잘 갈라서야 평화를 얻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하 평화협상)은 매끄러운 분리가 목표다.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5월14일, 유대인들은 환호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분노에 휩싸여 거리로 나섰다. 이날 미국은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전이다. 유대인에게는 축일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나라 잃은 ‘대재앙의 날(알 나크바)’인 이날,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봉쇄로 갇혀 있는 가자 지구 사람들의 분노가 컸다. 접경 지역에서 이스라엘은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쐈다. 60명이 넘는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폭력 시위대를 향한 정당한 진압 작전이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Reuter

오슬로 평화협정과 1995년 라빈 총리 암살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언젠가는 어려움을 뚫고 다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날의 비극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 적절한 출발점은 1993~1995년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해소될 조짐을 드러낸 때다. 냉전이 끝나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팔 걷고 나섰다. 미국 중동정책의 두 축은 이스라엘과 걸프다. 민주당 정부는 주로 중동 분쟁의 역사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반면 공화당 정부는 석유 메이저와 군산복합체의 연계성이 높은 걸프 지역에 관심을 갖는 편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중재는 유효했다. 약속의 땅 단 한 평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할 수 없다며 협상을 거부하던 이스라엘 측도 회담장으로 나왔다. 마침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은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는다. 라빈 총리는 더 이상 땅에 집착하다가 소중한 유대인의 생명을 잃지는 말자며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land for peace)’을 선언했다. 불행히도 라빈 총리는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극우 유대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오슬로 협정을 계기로 양자 간 평화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협상 목표는 명료했다. 현재 이스라엘 점령 지역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로 독립해 이스라엘과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는 것이다. 이른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다. 그러나 벌써 20년을 훌쩍 넘기며 협상을 해왔는데 거의 진척이 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해법을 지지하고 있고,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증오하며 때론 폭력으로 고통받기도 하니 빨리 갈라설 만도 한데 지지부진하다.

 

 

 

 

두 국가 해법의 핵심은 팔레스타인의 최종 지위(final status)에 관한 협상이다.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의 지위를 갖는지, 즉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에 관해 어떻게 합의할 것인지가 문제다. 쟁점은 크게 셋이다. 첫째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어떻게 철수시킬 것인가, 둘째 동예루살렘은 누구 소유로 할 것인가, 셋째 각지에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자기 땅으로 귀환시킬 것인가. 조금씩 양보하여 합의점을 찾기에는 쟁점들의 성격 자체가 제로섬에 가깝다.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부터 보자. 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구(웨스트뱅크) 이스라엘 정착촌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4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5대 정착촌(기브앗 지브·말레 아두밈·아리엘·구쉬 에찌온·모딘)은 이미 촌락 수준을 넘어서서 도시 규모로 자리 잡았다. 수십 년간 터 잡고 살아온 정착촌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정부는 강제로 이주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서안 지구 북부 접경 이스라엘 영토를 그만큼 넘기겠다고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처지에서 수용하기 어렵다. 자국 영토 안에 오랜 적국의 도시가 자리 잡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이들 정착민을 방호하기 위한 이스라엘 정규군 주둔을 인정하면 그게 어떻게 제대로 된 독립이냐며 거부하고 있다.

5월14일 유혈 사태의 뿌리인 동예루살렘 영유권 논란은 더 답이 없다. 유대교 핵심 성지인 성전산(템플마운트) 위에 이슬람 성지(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세 번째 성지)가 묘하게 겹쳐 자리 잡았기에 물리적인 분할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효적 지배는 이스라엘이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의 근거가 예루살렘이므로 양보할 의사도 이유도 없다며 완강하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에는 요르단 관할이었던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것이니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주인임을 주장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했고, 텔아비브에 있는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전격 이전했다. 이로 인해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향 귀환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완강하게 반대한다. 이 난민들은 수십 년간 떠돌면서 반이스라엘 분노를 키워왔다. 이스라엘은 이 난민들이 곧 테러리스트 위험 인자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귀환을 거부한다.

 

 

 

 

ⓒAP Photo5월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이전 개관한 날,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오른쪽)이 현판 제막식에 참석했다.

 

이렇듯 협상의 핵심 쟁점 자체가 타협점을 도출하기 힘든 성격을 띠고 있지만, 더욱 큰 걸림돌은 양국 지도층과 국민의 의지다. 협상을 바라보는 유대인의 시선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중도·진보 세력과, 신이 주신 영토를 적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시온주의자와 종교인들의 입장으로 선명하게 나뉜다. 최근 협상 반대 세력의 우위가 오래 유지되면서 협상 동력이 추락한 상태다. 특히 우파 유대 민족주의 및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등 보수파로 구성된 현 네타냐후 연립정부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를 적극 막지 않는 등 평화협상에 소극적이다.

독립을 희구해온 팔레스타인 대중의 속내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일단 파타와 하마스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높지 않다. 팔레스타인 대중은 독립이 가시화되면 정파 간 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스스럼없이 내놓기도 한다. 지금은 이스라엘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기에 단합하는 것 같지만 막상 국가가 되면 집안싸움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안팎의 비판에 노출되어 있다.

독립 후의 경제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지금은 그런대로 먹고살지만,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고려하면 삶의 질을 현재 수준으로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중간 지대인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의 경제 의존도가 높아서, 독립하면 오히려 생활수준이 낮아질 거라고 믿기도 한다. 국민이 긴가민가하는 독립이 탄력을 받기란 쉽지 않다.

쟁점은 타협점을 찾기 어렵고, 지도층과 국민의 의지는 한데 모이지 않는다. 중재자 역을 맡아야 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했다. 일련의 악재 때문에 두 국가 해법의 실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셈이다. 당사자들이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협상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니 오히려 현상유지 가능성이 점차 높아졌다고나 할까?

 

 

 

ⓒReuter1993년 9월 라빈 총리(왼쪽)와 아라파트 PLO 의장(오른쪽)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만났다.

‘두 국가 해법’ 말고 다른 방안은?

하지만 이스라엘 처지에서 현상 유지도 답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이스라엘은 점령 지역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인종차별 국가가 된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국제사회의 강한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스라엘 시민으로 인정해 선거권을 주기도 어렵다. 인구 변동에 따라 정권을 아랍인들에게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누를 수 없다. 이스라엘은 민주국가냐 유대국가냐 사이에서 하나를 버려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자들은 다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혹시 두 국가 해법 말고 다른 방안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은 이상적인 해법으로, 하나의 나라를 유지하되 두 개의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정치적으로 공존하는 모델을 이야기한다. 참고할 만한 모델로 벨기에가 거론된다. 물론 역사적 구원(舊怨) 관계에 비추어볼 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이 우세하다.

그러다 보니 좀 더 거칠면서 획기적인 제안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1967년 이전으로 돌아가 서안 지구를 요르단 관할로 되돌리고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요르단 시민권과 이스라엘 영주권을 동시에 허용하는 이른바 요르단 플랜(세 국가 해법)이 대표적이다. 조금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서안 지구 7개 주요 부족들이 UAE식의 연방을 구성해 국제사회가 건국을 지원하는 케다르 플랜(여덟 국가 해법)도 있다. 급하니 이런저런 제안들이 나오는데 역시 두 국가 해법 이상의 제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혹자는 시간이 팔레스타인 편이라는 말을 한다. 인구 증가 추이를 보면 아이를 많이 낳는 팔레스타인인이 곧 유대인들을 넘어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비의 역전이 곧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우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에서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며 지배하는 사례를 이미 보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스라엘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종차별과 탄압의 길을 가려 할지도 모른다.

현재로서 두 국가 해법 말고는 뚜렷한 다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사회 역시 이 이상의 합의를 도출해내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양자 모두 딱히 성사할 의지가 없다. 믿을 만한 중재자도 이제 없다. 더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이 방안을 포기하지도 못한 채 딱 그 지점에 멈추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도발적 중동정책을 애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소수이지만 있다. 심정지 상태로 누워 있는 두 국가 해법에 제세동기로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안 될 협상안을 앞에 두고 당위론만 반복하느니 세게 자극을 주어 변화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는 기대다. 어쨌든 오바마 정부 때 최악의 대미 관계로 고심하던 이스라엘은 자신감을 얻었고, 설마 하며 바라보던 아랍 측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예로 든다.

불가측성 외에는 예측 가능한 것이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상, 이스라엘에 대사관 이전을 선물한 다음 순서로 팔레스타인에게 선물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풍문도 있다. 이를 통해 트럼프식 평화협상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파격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한반도 문제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님을 다시 새기게 된다. 온갖 우여곡절과 가슴 졸임 그리고 좌절과 기대를 반복하며 끈기를 갖고 오래 걷기를 각오해야 하는 길이다.

 

 

기자명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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