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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블랙리스트를 공개합니다

2018년 06월 05일(화) 제559호
김은지·주진우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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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작성한 역사학자 블랙리스트를 단독 입수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거나 반대한 것으로 추정된 연구자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힘이 없다. <시사IN>이 ‘철 지난’ 국정 역사 교과서를 주목한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학계의 조직적 반발, ‘복면 집필진’ 논란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인 2017년에 맞춰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박근혜 청와대가 진두지휘했고, 교육부가 손발이 되어 움직였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국정화는 백지화됐다. 지난해 9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꾸려졌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정화를 거부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와 같은 해명을 쏟아냈다. 결국 세금 44억원을 들여 역사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부른 국정화를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사IN>은 국정화와 관련한 교육부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불법·편법이 난무했던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3월 진상조사위도 재발 방지를 강조했다. 진상조사위는 국정화 과정에서 위법 행위자를 처벌하고 교육부가 사과 및 재발 방지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재 교육부는 관련자 징계를 검토 중이다.



동그라미 두 개(◎)나 한 개(○)가 붙어야 지원 대상이 되었다. 동그라미 두 개가 표시된 연구자 이름 옆 비고란에는 ‘적극 협조’라고 쓰여 있었다. ‘반대 선언 참여’ ‘반대 선언 참여 추정’ ‘반대 토론회 참석’으로 표기된 연구자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시사IN>이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블랙리스트(아래 <그림 1>)를 단독 입수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작성한 문건이다.

비고란에 ‘반대 선언 참여’ ‘반대 선언 참여 추정’ ‘반대 토론회 참석’으로 표기되면 대부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국정화에 동의하지 않는 연구자를 따로 분류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블랙리스트는 실제로 작동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국정화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이들이 주로 피해를 보았다. 국정화 협조자로 분류된 연구자들에게 연구비가 지원되었고, 비협조자로 낙인찍힌 연구자들은 대부분 지원을 받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구자 가운데 단독 응모가 아닌 공동연구 분야에 지원한 연구자 한 명만 지원을 받았다.

2015년 10월 만들어진 ‘국정화 비밀 TF(이하 국정화 TF)’가 당시 야당과 언론에 발각되자, 교육부는 국정화 TF를 대체해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을 공개적으로 만들었다. <시사IN>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의 컴퓨터와 USB 등에 남아 있거나 복원된 문건을 입수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분야, 연구자, 연구 주제 등이 쓰인 블랙리스트 문건을 자세히 살펴보자. 가장 오른쪽 부분인 ‘비고’와 ‘지원 여부’를 보면, 연구 주제가 아닌 국정화 찬반이 연구 지원을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교육부는 왜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을까? 2015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 역사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되고 균형 잃은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나라로 인식하게 되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2015년 11월10일).” 그해 국정교과서 추진을 강하게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에 맞서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성명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대책을 강구했다. 2016년 1월부터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 계획 개요(안)’를 작성했다(아래 <그림 2> 참조). 이 같은 계획을 짠 배경을 해당 문건에서는 “국정화 반대 여론이 매우 큰 역사학계에 정책 지지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역사학계의 편향된 연구 지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 기본 방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현대사 연구에 대해 집중 지원”이라고 명시했다. 공공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사업이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교육부는 국정화에 동의하지 않은 연구자들을 분류했다.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작성한 ‘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 계획 개요(안)<(그림 2>)’. 연구 공모 결과, 1대 1이 겨우 넘거나 미달된 분야도 있었다. ‘역사 분야 학술연구지원 공모 결과 검토(<그림 3)>’ 문건을 보면 국정화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을 배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구 과제 접수가 끝나고, 같은 해인 2016년 7월26일 공모 결과 검토(위 <그림 3> 참조)가 이뤄졌다. 전체 27개 어젠다 중 30개 과제가 접수됐다. 1대 1이 겨우 넘는 경쟁률이었다. 미달된 분야도 있었다. 연구 과제가 접수되지 않은 어젠다가 6개였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역사학계 연구자들의 불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부 스스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에 대한 학계의 반발로 인해 교육부의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불참하도록 종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접수율이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지원자 가운데 교육부가 파악한 국정화 반대 선언에 참여했거나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구자는 총 11명이었다. 박근혜 청와대는 “(국정화)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고 밝혔다. 지원자가 적어서 고심하던 교육부는 반대자 중 2명을 지원 대상자로 선정하자는 수정안을 올렸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교육부 김 아무개 사무관은 지난해 11월2일 진상조사위에 이렇게 진술했다. “청와대에서 지원 여부 기본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학술진흥 지원자들을 국정화 반대 리스트와 비교하거나 (인터넷 언론) 슬로우뉴스 등에 올라온 반대 리스트 등과 비교해 지원 여부에 관한 문서를 작성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정화 찬반을 기준으로 세우면서, 교육부 공무원들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반대 참여 추정’ 따위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반대 토론회 참석’으로 분류된 한 연구자는 <시사IN>과 전화 통화하면서 “정확히는 반대 토론회가 아니라, 공청회였다. 국정과 검인정 관련 교과서 절차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에 연구팀 대표로 참석했다. 연구팀 의견은 검인정이 절차적으로 맞다는 것이었는데, 그걸 ‘반대 토론회 참석’으로 분류해놨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반대자로 분류된 이들이 내놓은 연구 주제는 국정·검인정이나 정치 이념과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수업 개선을 위해 ‘초등학교 역사 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분석-적합성과 적정성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연구 주제나, 생활사와 관련해 ‘1960~70년대 과학주의와 일상, 가정, 젠더의 재구성’ 같은 계획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주제는 공모 사업에서 떨어졌다. 이들 연구자 이름 옆에는 ‘반대 토론회 참석’ ‘반대 선언 참여 추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


국정화는 여러 면에서 우려를 낳았다. 절차상 문제를 비롯해, 국가가 역사를 독점적으로 해석한다는 문제, 친일·독재 미화 가능성 등 다양한 지점에서 비판을 샀다. <시사IN>이 입수한 교육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박근혜 청와대는 국정교과서 내용에 적극 개입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 기준을 개발하던 2015년 9월, 청와대는 교육부에 의견서를 보냈다. 외피는 요청이지만 사실상 편찬 기준을 수정하라는 지시였다. 모두 21곳을 고칠 것을 요구했다.

그중에서도 현대사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해 그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는 부분에서 한계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대신 ‘의의를 서술한다’로 바꾸라고 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회 양극화 환경오염’과 같은 항목을 지우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 서술만 남기고 부정 서술을 빼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2016년 5월 초 완성된 국정 역사 교과서 초고본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현대사 부분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과 의의에 대한 기술 미흡, 독재의 문제점이 명확히 기술되지 않거나 북한의 안보 위협 때문인 것으로 기술,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헌법적 규범과 역사적 현실 간의 괴리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설명해 민주화의 의의를 헌법에 종속된 것으로 해석하는 서술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후 개고본, 현장검토본 공개 등의 절차가 이뤄졌다(당시 국정 역사 교과서 개발은 초고본-원고본-개고본-현장검토본 순서로 진행됐다). 2016년 가을부터 박근혜 게이트가 터져 국정화는 동력을 잃었다. 2016년 12월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2017년부터 국정 역사 교과서를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현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전국 5249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단 세 곳만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할 연구학교로 신청했다. 경북의 사립학교였다. 그나마도 한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의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했고, 다른 한 학교는 경북도교육청 심사 결과 탈락했다. 남은 한 학교는 학부모· 학생이 비대위를 꾸려 소송 끝에 국정 역사 교과서 사용을 막았다. 결국 국정 역사 교과서는 역사교육 현장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못했다.

지난해 5월12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업무지시 2호로 국정화를 공식 폐지했다. 역사 교육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블랙리스트와 같은 교육부의 은밀한 작업은 여전히 연구자들 사이에 후유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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