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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밀당 고수 수 싸움을 시작하다

2018년 06월 04일(월) 제559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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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은 판을 흔드는 ‘트럼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방법론뿐 아니라 일본·중국이 개입한 협상판에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협상가 본능’이 다시 한번 꿈틀했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을 마다하지 않는 ‘트럼프 스타일’이다. 지난해 4월6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만찬 중에 미군은 시리아를 폭격했다. 저녁 식사 후 디저트를 즐기던 시진핑 주석을 얼어붙게 했다. 당시 북한 핵과 관련해 중국이 역할을 해줄 것을 압박하는 폭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는 이 ‘한 방’으로 결정되었다. 강력한 이미지와 함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4월26일 상원의원 100여 명 앞에서 새 대북정책은 ‘압박 전략’임을 천명했다.

ⓒ조선중앙통신
ⓒAFP PHOTO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판을 흔드는 트럼프 스타일이 또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충격요법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이었다면 이번에는 6·12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 서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방법론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개입으로 어지러워진 협상판을 그대로 두고는 정상회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정상회담 실무 접촉 요구에 대한 북한의 무응답이나 5월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는, 태풍이 몰아치기 전 나비의 날갯짓이었을 뿐이다.

‘트럼프 딜레마’는 북·미 정상회담 자체의 취약한 구조에서 기인한다. 역대 미국 정부의 북핵 정책은 ‘핵 동결’이었다.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게 할 방법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월5일 한국 특사단과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하겠다며 판을 키웠다. 그 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 위원장이 두 차례 면담을 거치면서 숨어 있던 문제점이 드러났다.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와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 보상 요구’의 충돌이다. 미국에게 마땅한 보상책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 일본이 미국 정부를 공략했다. 바로 대북 수교 자금(식민지 지배 배상금)을 앞세워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핵 이외에 생물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그리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까지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로 등장했다. ‘1차 변질’이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3월에 이어 5월7~8일 방중을 통해 시진핑 주석을 끌어들였다. ‘2차 변질’이 일어났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으로 시작된 협상판이 일본과 중국의 개입으로 변질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흔들어댔다.

5월22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직전 돌발적으로 열린 기자회견 때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발언에는 최근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라는 충격요법이 무엇을 노렸는지 제대로 알려면 그날 발언이 나오게 된 맥락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한 걸음 물러난 트럼프의 ‘일괄타결론’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했던 북한의 비핵화 이행 방법부터 살펴보자. 북한은 5월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리비아 모델로 일컬어지는 ‘선 핵폐기, 후 보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처참한 말로를 겪은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부상의 문제 제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이 바로 ‘일괄타결(all in one)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장관의 일괄타결론은 지난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비핵화 총론만 담고, 2007년 2·13 합의(핵 동결 합의), 10·3 합의(핵시설 불능화 합의)에 각론을 담아 북한에 시간만 주고 합의 때마다 보상하던 방식에 비판적이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잘게 쪼개는 식의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게 바로 이 얘기다. 이때 일괄타결은 곧 일괄합의를 뜻한다. 여기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이 접목되었다. 리비아 모델은 ‘선 비핵화, 후 보상’이라는 말처럼 보상에 앞서 비핵화를 일괄이행하는 것이다. 즉 기존 일괄합의에 존 볼턴 보좌관의 일괄이행이 결합해 트럼프 대통령의 일괄타결론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24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북한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이 취재진에게 핵실험장 폐기 방법과 순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5월22일 돌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일괄타결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행은 단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발언 요지를 살펴보자. 그는 “일괄타결이 옳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비핵화를 위해 아주 짧은 기간이 필요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그것도 일괄타결이다”라고 말했다. 정리를 하면 발언 앞부분에 언급한 ‘일괄타결’은 일괄합의와 이행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일괄적으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것이 옳지만 이행까지 한꺼번에 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행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그렇다 해도 이 역시 본질적으로 일괄타결이라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일괄합의와 짧은 기간의 단계적 이행’인데, 기존 방침이었던 일괄타결론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뉴욕타임스>가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일괄타결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단계적 폐기의 가능성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5월24일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녹음 방송)에서 “우리는 즉각적인 비핵화를 원하지만, 알다시피 물리적으로 단계적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빠른 속도의 단계적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계적’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북한이 주장한 단계적 비핵화에 가까워진 셈이다.

사실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 직후, 백악관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부인한 바 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고 한 것이다. 지난 5월16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리비아 모델에 대해) 협상의 일부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델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택한 것은 ‘트럼프 모델’이라고 말했다. 5월1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면담하면서 미국은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을 달래기 위한 임기응변처럼 보였다. 그만큼 트럼프 모델에 관한 설명이 모호했다.

트럼프 모델은 이미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가동 중이었다. 5월17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그 정황이 소개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사전 협상에서 북한의 핵탄두와 핵 관련 물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일부를 6개월 안에 해외로 반출할 것을 요구했다”라면서,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명을 해제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맥락의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에도 실렸다. 이 신문은 도쿄에서 열린 자사 콘퍼런스에 참석한 수전 손턴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이 “북한이 큰 선금(down payment)으로 시작하면 동시적(synchronized) 과정이 수용될 수도 있다. (북한이 요구할) 선불 수수료가 무엇이 될지 이후 이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 처지에서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을지가 문제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신문의 보도가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ICBM 일부를 6개월 내 ‘선금’으로 먼저 내놓으면 미국이 선불 수수료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식으로 보상해 서로 신뢰를 쌓고 그런 다음부터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 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장해온 일괄타결안과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동시 이행안의 절충안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의 안 수준에 머문 게 아니라 미국에 의해 북측에 이미 타진됐다는 점이다. <아사히 신문>에 그 정황이 드러나 있다. 지난 5월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라고 북한 매체가 보도한 적이 있는데, 미국의 이번 제안이 당시 거론된 대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 신문>은 분석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했을 때 ‘선금과 선금 수수료의 교환과 동시 이행안’을 제안했고, 이 제안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대안’이라며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일괄타결을 원칙으로 하되 짧은 기간 내 단계적·동시 이행’과 매우 흡사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정황을 돌이켜보자. 4월 말~5월 초 일본의 활발한 대미 접촉으로 미국의 요구 수위가 계속 높아지자, 김정은 위원장은 5월7~8일 중국 다롄으로 날아갔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과 회동을 하고 ‘단계적·동시 조치’ 이행의 목소리를 높인 직후다. 바로 다음 날인 5월8일 폼페이오 장관이 2차로 방북하면서 북한의 요구 사항을 감안한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다.

ⓒ연합뉴스
F-22 랩터(아래) 8대가 5월11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 공중훈련 ‘맥스선더’에 처음 참여했다.

그렇다면 왜 김계관 제1부상은 5월16일 갑자기 존 볼턴 보좌관을 거론하며 평지풍파를 일으켰을까. 볼턴 보좌관이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다. 5월13일 ABC 방송 인터뷰에서 볼턴 보좌관은 자신의 기존 주장을 마치 집대성이라도 하듯 모두 늘어놓았다. 즉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위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이 완전히 제거되어야 하며, PVID가 완료되어야 보상을 해줄 수 있고, PVID의 이행이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추가로 탄도미사일 문제, 핵과 미사일 시설의 위치 공개 및 사찰 허용, 생물화학무기와 납북 일본인 문제까지 협상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거론한 것이다. 

북한은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 모델’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일본의 요구가 볼턴 보좌관이 언급한 리비아 모델에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 일본은 볼턴 보좌관을 창구로 삼아 미국에 대북 요구안을 관철하려 했다. 실제로 볼턴 보좌관이 주장한 탄도미사일과 생물화학무기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그리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이 바로 일본의 요구다. 리비아 모델은 이미 깨졌지만 일본의 요구가 끈질기게 발걸음을 막아서고 있다.

5월17일자 <아사히 신문> 기사를 다시 살펴보자. 북한의 선금과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단계에 대해 ‘북한은 체제 보장과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큰 대가를 요구하는 데 비해 미국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단기간에 할 것과 생물화학무기 폐기, 핵 개발 기술자 해외 이주를 주장하는 등 양측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생물화학무기 폐기가 다음 단계 진행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젠다 확대 뒤에 어른거리는 일본의 그림자

이렇게 북한이 반발하는 어젠다 확대의 배후에 바로 일본이 버티고 있다. 일본과 손잡은 미국 국방부 등 ‘미·일 동맹파’가 한반도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11일부터 시작된 한·미 공군의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에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8대가 처음 참여했다. 미국은 맥스선더와 ‘블루 라이트닝(Blue Lightning)’으로 명명한 훈련을 동시에 하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고 한다. 블루 라이트닝은 한·미·일 3국과 괌 기지에 배치된 미국의 B-52가 참가하는 공군 연합훈련으로 계획되었다. 그나마 한국 정부가 전략폭격기인 B-52가 참가하는 연합훈련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해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난 3월5일 한국 특사단과 김정은 위원장 간 합의 사항 위반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과 만나 “예년 수준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라며 한·미 연합훈련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수용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예년 수준’이었다. 맥스선더 훈련에 예년 수준을 벗어난 F-22 랩터 참여는 여러 파장을 낳았다.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시진핑 주석에 대해 체면이 서지 않았다. 북측이 지난 5월15일까지만 해도 이튿날에 있을 남북 고위급회담에 응하겠다 해놓고, 정작 5월16일 새벽 맥스선더 훈련을 빌미로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다. 그리고 같은 날 김계관 담화를 통해 볼턴 보좌관을 공격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 정부 뒤에서 발목을 잡는 미국 국방부 등 미·일 동맹파와 일본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

일본의 로비는 어떤 계기로 미국 정부에 집중되기 시작했을까? 3월8일 한국 특사단 방미로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결정되었다. 그러자 3월15~18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고노 외무장관은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등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앞서 ‘5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고노 외무장관이 밝힌 조건은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중거리 탄도미사일 폐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화학무기 폐기 등이었다. 이에 대해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비핵화, 핵 및 미사일 실험 동결,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한 이해 등 세 가지 약속을 지키면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린다”라며 일축한 바 있다. 미국의 냉랭한 태도에 일본에서는 ‘재팬 패싱’ 논란이 본격화되었다. 그즈음 일본은 북·미 사이 벌어진 틈을 감지했다. 3월31~4월1일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 내정자가 방북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며 북·미 간 접촉이 심화되었다. 그런데 4월 말 북측에서 비핵화에 미국의 보상 약속이 없는 점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됐다.

ⓒ연합뉴스
5월22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로 그 시점에 일본이 틈을 파고들었다. 미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당장 북한에 보상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려면 일본의 대북 수교 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자신들의 어젠다인 생물화학무기·탄도미사일 폐기, 납북자 문제를 대북 협상에 포함할 것을 미국에 요구한 것이다. 4월30일 고노 외무장관이 요르단까지 날아가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고 5월4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이 존 볼턴 보좌관을 만나 핵과 생물화학무기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폐기, 납북자 해결이라는 일본의 요구 사항을 패키지로 전달했다. 급기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전격 방북해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고 돌아온 5월10일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일본의 요구 사항을 또다시 확인했다. 이날 백악관은 ‘미·일 정상이 지난 5월4일 볼턴·야치 회담 내용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5월13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을 한국처럼 번영하게 하겠다면서도 “미국인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는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대북 제재를 풀어 민간자본이 북한에 흘러들어 가게 해 북한의 인프라 건설, 전력망 확충, 농업 발전을 돕겠다고 했다. 문제는 시간과 자금 규모이다.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북한에 대해 적성국교역법이나 테러지원국 해제를 해도, 북한이 세계은행에 가입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이 되려면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가입 후 자금 융자도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미국 민간자본을 동원해도 단기간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일본 수교 자금을 끌어다 쓸 수밖에는 없다(<시사IN > 제558호 ‘북한 부흥계획 이 자리에 있소이다’ 기사 참조).

그런데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해 5월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결이 다른 얘기를 던졌다. 북한이 CVID를 이행할 경우 김정은 위원장에게 안전과 행복과 부유함을 보장하겠다고 하면서, 과거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가 아닌 수조 달러의 지원을 받아 번영했다고 한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 미국이 똑같이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발언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워싱턴 소식에 밝은 전문가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수교 자금을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본에 이 같은 메시지를 보내며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즉 ‘북한 경제 부흥은 미국 자본으로도 충분하다. 일본 수교 자금 필요 없다. 재팬 패싱이 걱정된다면 수교 자금을 내놓고 합류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내놓아도 좋다’는 것이다. 돈을 앞세워 북·미 협상의 허들을 자꾸 높이려는 일본의 행태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협상 경험을 갖고 있다”

5월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라는 점을 감안해 일본에는 간접 경고를 한 반면,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두 번째 만나고 태도가 좀 변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5월17일 나토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시진핑 배후설’을 주장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일본과 중국의 과도한 개입, 북한의 거친 언사로 뒤틀린 협상판을 그대로 두고서는 협상가로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부분적인 조정으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늘 하던 스타일, 바로 충격요법으로 판을 크게 흔들었다.

5월24일 6·12 정상회담 취소를 밝힌 트럼프 서한 이후 북·미 사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북한은 5월25일 김계관 제1부상의 긴급 담화를 통해 트럼프 서한에 ‘답장’을 했다.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 (중략)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 이날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전날 있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진행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을 통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핵 개발 중단 의지를 선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5월24일 백악관에서 열린 금융규제 완화 법안 서명식에서 “바라건대 북한과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며 “지금 예정된 정상회담이 열리거나 나중에 어떤 시점에 열릴 수도 있다. 아무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5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 두고 이뤄진 돌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런 협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협상에 들어가면서 가능성이 0이었는데도 100으로 협상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 가능성이 매우 컸다가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단 가봐야겠다.” 0과 100 사이에서 협상가 트럼프의 다음 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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