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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살려낸 남북의 두 번째 만남

2018년 06월 11일(월) 제560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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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정상회담 중단과 재개 과정에서 ‘재팬 패싱’ 드라마가 숨 막히게 전개되었다. 재팬 패싱을 이끌어내며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5월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남북 정상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5월16일 담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타깃으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을 것이다. 담화 내용 때문이다. 김계관 담화의 핵심은 리비아 모델인 ‘선 비핵화, 후 보상’에 대한 반발이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 역시 이 부분을 가장 주목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납득이 안 되었다. 지난 5월9일 방북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에서 리비아 모델과 관련한 갈등은 큰 틀에서 해결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김 위원장 스스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라고까지 했다지 않은가.

ⓒAP Photo
성 김 전 미국 국무부 6자회담 수석대표(맨 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에서 세 번째)은
2016년 6월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만난 바 있다(위).

북·미 간에 ‘리비아 모델’을 둘러싼 논쟁은 5월9일 폼페이오 장관 방북 직전까지 치열했다. 4월 말~5월 초 존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식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5월7~8일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했다. 리비아 모델에 ‘단계적·동시 조치’ 해법으로 맞섰다. 바로 다음 날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찾았다.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힐 절충안을 들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핵무기·핵물질 그리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일부를 북한이 6개월 안에 해외로 반출하면 미국은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는 방안이었다. 특히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거론되었다. 여기에 북한과 미국이 물밑에서 추진해온 연락사무소 상호 교환 설치가 더해졌을 수 있다. 이 방안은 조기에 성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조기 수확(early harvest)’, 또는 ‘북한의 큰 선금(down payment)에 대한 미국의 선불수수료 지불’이라 할 만하다.

이 방식은 미국이 ‘시급히 해결할 위협 요인’으로 분류한 핵무기·핵물질·ICBM의 일부를 북한이 일찍 내놓게 함으로써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확인 가능한 장점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획기적인 성과를 내, 선거 분위기를 공화당에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다. 북한도 초기 비핵화 과정(6개월 안팎)에서 유엔 제재 완화 내지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통해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면 한국과 중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가능해진다. 미국이나 북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해법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김정은-폼페이오 회담을 통해 리비아 모델이 아닌 쪽으로 일종의 ‘평양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폼페이오-김정은 회담 이후 김계관 제1부상이 왜 존 볼턴의 리비아 모델을 갑자기 비판하고 나왔을까? 당시 북·미 간 이면 합의안이 공개되기 전이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반응은 그렇다 쳐도,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직보를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가 영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계관 담화에 대한 미국의 초기 대응은 북한의 ‘오해’를 푸는 쪽에 맞춰졌다. 5월17일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그것(리비아 모델)이 협상의 일부분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따르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트럼프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이 주장한 리비아 모델을 백악관 대변인이 공식 부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백악관 대변인의 입에서 ‘트럼프 모델’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5월17일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 모델은 북한과는 다른 모델”이라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는 북한이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만도 했다. 5월20일자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계관 부상 성명에 놀란 동시에 화를 내며 5월17일, 18일 참모들을 압박하고 급기야 1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해 북한의 공개 성명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난 뒤 개인적으로 보장한 것들과 모순되는지 물었다”라고 보도했다. 비핵화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이 그사이 달라져 북한이 일부러 어깃장을 놓고 있는 건 아닌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이 달라졌다면 그 원인은 중국 때문일 것이라는 의심이 싹텄다. 5월21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이 요즘 북·중 간에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하고 있다. 북·미 간 회담을 마무리할 때까지 국경 경계를 튼튼하고 삼엄하게 유지해야 한다”라고 썼다. ‘북한의 변심 배후’에 대한 의구심의 일부를 드러낸 것이다.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심중은 김계관 담화가 불러온 파장으로 어지러운 상태였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그런데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김계관 담화의 초점은 리비아 모델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다(<시사IN> 제559호 ‘세기의 밀당 고수, 수 싸움을 시작하다’ 기사 참조). 5월16일 김계관 담화는 존 볼턴 보좌관의 5월13일 ABC 방송 인터뷰 발언을 직격한 것이었다. 볼턴 보좌관은 ABC와 인터뷰하면서 북한이 PVID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폐기)’를 위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이 완전히 제거되어야 하며,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 주 오크리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탄도미사일 문제, 핵과 미사일 시설의 위치 공개 및 사찰 허용, 검증 과정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동원하고, 생물화학무기와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위협 요인’으로 간주한 ‘핵무기·핵물질· ICBM’ 어젠다에 일본이 존 볼턴 보좌관을 창구로 요구해온 ‘탄도미사일, 생물화학무기, 납북자 문제’를 모두 망라해 북한의 항복과 완전 무장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존 볼턴과 폼페이오 사이의 ‘어젠다 차이’

북한 처지에서 볼 때 존 볼턴 보좌관의 이 발언은 폼페이오 장관이 5월9일 방북 당시 제시한 내용과 크게 달랐다. 방북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시급히 해결할 위협 요인’과 ‘일본의 요구안’을 한꺼번에 묶지 않았다. 트럼프-김정은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우선 핵무기·핵물질·ICBM의 일부 해외 유출과 그 반대급부로 제재 완화를 다루기로 큰 틀에서 합의를 보았다. 즉, ‘시급히 해결할 위협 요인’이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라고 북한은 받아들였다. 일본이 요구한 어젠다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체제 안전보장과 평화협정 그리고 경제 지원 등 본격적인 보상 단계에서 다루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보았다. 북한 처지에서는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 회담 단계에서 다뤄질 안건으로 여긴 것이다.

김 위원장이 다롄으로 간 배경에는 리비아 모델뿐 아니라 일본의 어젠다 확장 문제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난 3월15~ 18일 미국을 방문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등에게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탄도미사일 폐기, IAEA 사찰,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 5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4월 말까지 미국은 일본의 요구에 적극 응하지 않았다. 지난 5월4일에는 존 볼턴 보좌관이 야치 쇼타로 일본 NSC 국장을 만났다. 이때도 탄도미사일과 생물화학무기, 납북자 문제를 끌어들여 갑자기 북·미 정상회담의 허들을 높이려 했다. 북한으로서는 이런 어젠다 확장 움직임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의 2차 방중이 맞대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보좌관 간에 ‘어젠다’를 둘러싼 격돌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둘은 5월13일 각자 방송에 출연해 자기주장을 펼쳤다. 볼턴 보좌관은 폼페이오의 평양 합의를 부인하는 주장을 폈다.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5월13일 ABC 방송 인터뷰 내용이다. 반면 폼페이오 장관은 자신의 생각을 한쪽으로 강조하는 주장을 내놓아 주목을 끌기도 했다. 5월13일 잇따라 출연한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5월15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모든 핵무기의 제거’가 아니라 미국 본토 방위에 초점을 맞춰 ‘현재의 핵 프로그램과 ICBM의 제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정책과 관련한 ‘의미 있는 골대 이동’ 논란과 함께 한국·일본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해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렇게 해석할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볼턴 보좌관의 주장과 대비해 폼페이오 장관이 자기주장을 하다 보니 ‘ICBM 제거’만 강조된 측면도 있다.

볼턴-폼페이오 논쟁 사이에 5월16일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가 나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미사일·생물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김계관 1차 담화(5월16일)는, 트럼프 행정부가 폼페이오와의 평양 합의에서 존 볼턴의 주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라 할 수 있다. 이는 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중단을 선언한 다음 날 나온 김계관 담화(2차 담화)에서 잘 드러난다. 예상과 달리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김계관 2차 담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쓴 평가)’였다.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의 일방적인 회담 취소 공개는 우리로 하여금 여지껏 기울인 노력과 우리가 새롭게 선택하여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김계관 1차, 2차 담화를 살펴보면,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제기한 ‘선금과 수수료 지급 방식’을 뜻하는 ‘트럼프 모델’을 반대한 게 아니라 일본의 요구까지 회담 테이블에 올라오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청와대 제공
5월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과 5월26일 문재인-김정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전 돌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어수선한 말투로 ‘일괄타결’에 대한 본인의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한꺼번에 다 하는(all-in-one) 일괄타결이 옳으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짧은 기간에 걸친 단계적 비핵화’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합의 앞부분을 설명했다. ‘6개월 안에 이뤄지는 선금-선불 수수료 거래’의 공식화인 셈이다. 최근 성 김 전 미국 국무부 6자회담 수석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판문점 실무 협상은 이와 관련돼 있다. 6개월 정도의 시한을 두고 핵무기와 핵물질, ICBM의 반출 수량과 순서 그리고 각각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정하기 위한 회담이었다.

물론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전 돌발 기자회견 때 드러났듯이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일괄의 범위, 즉 어디까지를 일괄타결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합의한 대로 핵무기·핵물질·ICBM만을 대상으로 할 건가, 아니면 볼턴 보좌관이 주장하는 일본의 요구 사항까지 확대할 건가의 문제였다. 이것은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로 ‘미국이 시급히 해결할 위협 요인’이라고 규정한 핵무기와 핵물질, ICBM까지만 의제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요구 사항은 의제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미 사이에 교감한 것이다.

5월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갑자기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 얘기대로 남북 정상이 수시로 편하게 볼 수 있는 길을 텄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의 형식이 내용을 압도했다. 불과 이틀 사이에 회담 제안과 만남이 이뤄졌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라는 측면에서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한 일괄타결의 핵심 내용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설명을 원했고, 문 대통령이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실질적 중재역을 해낸 회담이다. 그 핵심은 북·미 양쪽에서 오해한 바로 일괄의 범위였다.

실제로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단호한 태도로 바뀌었다. 5월23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의 회담 결과에 대해 <교도통신>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북한 핵·미사일의 완전 폐기를 위해 긴밀히 연대하기로 했다”라고 보도했다.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에 일본인 납치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포함해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대해 ‘연대하기로 했다’는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이다. 이는 폼페이오 장관이 고노 장관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노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본과 미국 사이 역할 분담에 대해 깊은 논의’가 있었으며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 일·미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없다’라는 말로 낭패감을 얼버무렸다.

6월7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아베 총리

ⓒAP Photo
5월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아베 일본 총리(왼쪽)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후 아베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섰다.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5월28일 아베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6월7일께 미·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미·일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미·일 정상이 전화 통화를 하고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긴밀한 조율과 협력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특히 북한의 핵 및 생물화학무기, 그리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해체를 달성하는 일이 긴요한 일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아예 빠졌고 생물화학무기 폐기도 ‘긴요한 일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정도의 문구는 사실상 북·미 정상회담의 어젠다에서 제외된 것을 의미한다. 5월29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안하지만 나는 북한 핵, 나쁜 무역협상들, 보훈(장관) 인선, 경제, 군 재건 그리고 많은 것들에 나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때도 일본이 제기한 어젠다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아베 일본 총리는 5월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이뤄진 러·일 정상회담 때도 40분이나 늦게 나타난 푸틴 대통령에게 일본인 납북자 해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협상 과정 중의 모든 참가자가 자제력을 보여야 한다”라며 아베 총리가 원하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지난해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으로 위기에 빠진 아베 총리에게 ‘북한발 미사일 정국’은 복음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갑작스럽게 평화 국면이 전개되었다. 북·미 간의 핵 담판에 생물화학무기, 탄도미사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끼워넣어,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어그러지면 아베 총리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존 볼턴 보좌관을 창구로 한 아베 정부의 북·미 정상회담 어젠다 확대 작업의 결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롄으로 갔고 중국이라는 불청객을 북·미 대화에 끌어들이는 원인을 제공했다. 김계관 1차 담화 이후 판이 엎어지자, 각국은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유감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중요한 것은 핵과 미사일 문제 그리고 납치(일본인)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정상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어젠다 확대 작업을 위해 뛰었던 고노 다로 외무장관도 “회담을 해도 성과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서한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현명한 처신과 한국의 순발력 있는 중재 외교로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살아나면서 일본이 설 자리는 사라져버렸다. 북·미 정상회담 중단과 재개 과정에서 ‘차이나 패싱’ 못지않은 ‘재팬 패싱’ 드라마가 수면 아래에서 숨 막히게 전개된 것이다. 재팬 패싱을 이끌어내며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5월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남북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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