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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들은 왜 대법원에 들어갔나

2018년 06월 08일(금) 제560호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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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청와대 국정 운영 협조 사례’ 중 하나로 ‘KTX 여승무원 판결’을 꼽았다. 2015년 2월 대법원의 판결 직후, 패소한 한 해고 여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5년 2월26일 대법원(주심 고영한 대법관)은 해고된 KTX 여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결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2심과 달리 KTX 여승무원이 코레일 직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1·2심에서 이긴 KTX 여승무원들은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돼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 비용을 받았다. 1인당 8640만원. 재판에 졌으니 이 돈을 토해내야 했다. 판결 직후인 2015년 3월16일 새벽, 세 살 아이의 엄마인 해고 여승무원 박 아무개씨가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이제 여섯 살이 된 박씨의 딸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박씨와 같은 부산 출신 해고 여승무원 정미정씨(37)는 “특별조사단 보고서를 보고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그래도 사법부를 믿었는데 이 나라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우리 언니(숨진 박씨)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5월29일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2004년 KTX가 출범했다. 1기 승무원 351명 모집에 젊은 여성 4600여 명이 몰렸다. 안정적인 처우가 큰 메리트였다. 당시 채용 홍보 영상은 ‘철도청 방침에 따라 계약직 사원으로 모집하지만, 1년 계약 후에는 여러 직급 체계를 조정해서 향후 정규직으로 전환, 약 5단계의 진급 단계를 계획한다. 복리후생은 현재 공무원 신분에서 적용받는 모든 분야가 다 제공된다’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사회 초년생이던 여승무원들은 ‘지금은 공무원 TO(정원)가 없어 자회사 계약직으로 채용하지만, 2005년 철도청이 공기업인 철도공사(코레일)가 되면 코레일 소속 정규직이 된다’는 설명을 교육과정에서 수차례 들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철도청은 2004년 3월 여승무원들을 홍익회에 위탁했다. 12월에는 홍익회에서 분리된 자회사 철도유통으로 넘겼다. 약속과 달리 코레일이 출범한 2005년 이후에도 여승무원들은 위탁계약직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레일은 위탁업체를 또 다른 자회사 KTX관광레저로 바꾸려 했고 여승무원들은 계약을 거부했다. 코레일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06년 3월1일 파업에 나섰다. 그해 5월, 코레일은 새 자회사인 KTX관광레저에 복귀하지 않고 직접고용을 요구한 여승무원 280여 명을 해고했다.

여승무원들은 점거·삭발·단식·쇠사슬 투쟁으로 20대를 거리에서 보냈다. 코레일의 회유와 협박으로 적지 않은 승무원들이 복귀했다. 제일 먼저 복귀해 자회사 간부가 된 동료도 있었다. 처음 370여 명이던 파업 인원 가운데 끝까지 남은 34명이 ‘법대로 하자’던 회사 말대로, 2008년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및 임금지급 소송을 냈다.

2010년 8월26일 서울중앙지법은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여승무원들이 재판에서 이겼다. 형식상으로는 자회사가 여승무원들을 고용했지만, 실질적으로 자회사는 인적·물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노무 대행기관에 불과하다고 1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오히려 코레일이 여승무원들을 사실상 채용·교육·평가했으며 근무시간과 임금도 정했다고 봤다. 여승무원들과 코레일 사이에 묵시적으로나마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인정했다. 부당해고이므로 복직 때까지 밀린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코레일은 항소했지만 2011년 8월19일 서울고등법원 역시 여승무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더해 사실상 불법파견(위장도급)까지도 인정했다. 일은 코레일이 시키는데 고용은 다른 회사가 하면 ‘파견’이다. 2심 재판부는 여승무원 업무가 파견법상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닌 데다, 업무 특성상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과 자회사 소속 여승무원의 업무 영역이 혼재돼 있어 이 가운데 여승무원 업무를 분리해서 도급(위탁)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KTX 고객서비스 업무만 떼어 적법하게 도급을 주었다는 코레일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승무원 업무에 승객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시사IN 신선영
5월24일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코레일은 상고했다. 적법한 도급임을 주장하기 위해 ‘열차팀장은 안전, 승무원은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며 둘의 업무는 명백히 분리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 논리로 코레일은 2015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의 업무와 자회사 소속 여승무원의 업무가 각각 안전 업무와 고객서비스 업무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화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여승무원도 열차팀장 지시하에 안전 업무를 하지만, 이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응당 필요한 조치에 불과”하고 KTX 여승무원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고 했다. 안전 업무는 원래 이례적 상황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 게다가 이 판결은 소부에서 결정이 났다. 보통 대법원으로 넘어온 사건은 우선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심리한다. 소부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엇갈리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할 경우 13명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배당한다. KTX 여승무원 소송은 이인복·김용덕·고영한·김소영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1부)에서 이견이 없었다는 뜻이다.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판결이 나오고 법학계에서도 ‘말이 안 된다’며 논란이 거셌다”라고 말했다. “안전 업무와 서비스 업무가 분리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자회사 승무원이 열차를 순회하다 안전 문제를 발견해도 ‘다른 사람 업무니까 그냥 지나쳐도 된다’고 대법원은 판단한 꼴이다.”

대법원은 업무가 명확히 분리된다는 전제하에 자회사의 독립적 역할도 인정했는데,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근거는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불법적 파견에 면죄부를 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송 당사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판결”이라며 2015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이 판결을 꼽았다. 고등법원으로 돌아간 재판에서 여승무원들은 2015년 11월27일 최종 패소했다.

재판을 마치자마자 코레일은 채권자가 되어 여승무원들을 압박했다. 2016년 4월과 5월 코레일은 지난 4년간 여승무원들이 지급받은 임금이 부당이득이니 반환하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연 5%의 지연손해금이 붙는다고 적혀 있었다. 2017년 1월 대전지방법원이 임금 반환을 독촉하는 지급명령서를 여승무원들에게 보냈다. 지급명령일로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했다. 한 달에 108만원이다. 지연손해금을 합해 여승무원 1인당 빚이 1억원이 넘어갔다.

반환 소송을 맡은 대전지방법원(조정전담법관 정우정)은 바로 본안 소송으로 넘어가는 대신 원만히 합의하라며 조정 기간을 부여했다. 해를 넘긴 2018년 1월31일, 해고된 여승무원들이 원금의 5%(1인당 432만원)를 3월 말까지 코레일에 지급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되었다. 동료 한 명이 목숨을 끊은 끝에 빚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비극을 불러온 근본적인 복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던 여승무원들은 아직 거리에 있다. 2015년 대법원 판결의 결과다.

“대법원 직권으로 재심해달라”


5월24일 여승무원들은 서울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튿날인 5월25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 지 나흘 만인 5월29일 해고된 여승무원 10여 명은 대법원 앞에 서서 “내 친구 살려내라” “13년 세월 돌려달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저희 친구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도 없습니다. 누가 책임지실 겁니까. 4473일의 이 긴 시간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 지부장과 여승무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청서를 전하러 대법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KTX 대법원 판결 주심을 맡은 고영한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재임 시절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를 막는 등 사건 은폐에 관여했다는 지적으로 법원행정처장에서 물러났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통상임금 사건 등 청와대 국정 운영 협조 사례에 꼽힌 판결의 주심이었다. 현직 대법관으로 오는 8월2일 퇴임한다. 여승무원들은 5월30일 이뤄진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철저한 수사와 대책을 촉구하며 직권 재심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재판 개입 진상 규명과 별개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코레일과 정부가 쥐고 있다는 것이 여승무원들의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상시·지속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원칙’이라고 천명했지만, 정규직화 대상을 논의하고 있는 코레일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코레일은 KTX 승무업무가 생명·안전 업무가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한다. 권두섭 변호사는 “그동안 코레일과 정부가 KTX 승무업무 직접고용과 해고 여승무원 복직에 반대했던 유일한 논리가 대법원 판결이었다. 재판 개입으로 이어졌는지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하지만, 문건의 존재만으로도 최소한 해당 판결의 사회적 정당성은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13년째를 맞는 이 문제 해결의 공은 코레일과 정부로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스물다섯 살에 해고되어 서른일곱 살이 된 전직 KTX 여승무원 정미정씨는 “대법원에서 잘 판결이 났다면 여전히 34명이었을 텐데… 남겨진 아이를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 하고, 답을 들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억울하게 당했던 것에 대해서 누군가가 제대로 설명해주고 밝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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