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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가 기록한 우리의 큰 별 권정생

2018년 06월 14일(목) 제560호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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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 작가 이충렬씨는 우리 사회에 성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복원해낸다. 자료를 모아 연표를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얹는다. 그는 최근 여섯 번째 책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펴냈다.

2007년 어느 날 이충렬씨(64)가 홀연히 찾아왔다. 자신을 멕시코 국경도시에서 잡화상을 하는 ‘애리조나 카우보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원 <시사저널> 파업 기자들의 신매체 창간을 돕겠다며 후원 전시회를 열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그동안 수집한 작품 몇 점을 내놓고 주변 지인들의 기증도 이끌어냈다. 윤정모 소설가 집에 가서 기증 작품을 함께 실어오기도 했다. 류연복 판화가에게도 전시회를 위한 작품을 부탁했다.

작품 경매로 전시회를 마무리하고 며칠이 지나 그가 다시 찾아왔다. 장부를 들여다보더니 계산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헛똑똑이 기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빈틈을 찾아낸 그의 ‘팩트 체크’ 정신이 인상적이었다.

3년 후 그가 또 홀연히 찾아왔다. 그의 손에 쉰 살이 넘어서 처음 쓴 전기 <간송 전형필>이 들려 있었다. 컬렉터로서 ‘국보 컬렉터’의 전기를 쓴 게 이해가 갔지만, 취재가 필요한 인물의 전기를 해외에 머물면서 썼다는 것이 놀라웠다. 책은 내용도 충실했지만 대중성도 갖춰 7만 부 넘게 팔렸다. 책 내용이 교과서에도 게재되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기인이었던 그는 이후 성실하게 전기 작가의 삶을 이어갔다.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 김수환 추기경>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등 인물 전기를 계속 냈다. 최근 부인과 함께 영구 귀국한 이 작가는 동화작가 권정생의 삶을 들여다본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산처럼)을 냈다. 그에게 전기 작가로서의 삶을 들어보았다.

ⓒ시사IN 윤무영
전기 작가 이충렬씨는
“큰 인물의 삶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인식 폭을 넓힐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인물이 우리 사회에 공헌과 성취를 남겼는지, 그 성취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어떤 인물이 일군 결과가 사회에 유용하고 또 그 과정에 인간적인 감동이 있을 때 선택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그의 삶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인식 폭을 넓힐 수 있다.

이미 자서전이 나온 인물도 있었다.

애매한 부분인데, 자서전이 나온 인물도 있고 평전이 나와 있는 인물도 있다. 그런데 전기가 나온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전은 생전의 평을 모은 것으로 저자가 평가에 개입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것은 많다. 하지만 전기는 저자가 평가에 개입하지 않고 독자가 평가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드물다. 내가 다룬 모든 인물들이 전기는 없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평전은 있었지만 전기는 없어서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공인한 첫 번째 전기가 되었다.

인물 전기가 별로 없는 것은 우리 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건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인물의 공과 과를 동시에 다루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점이다. 과를 잘못 다루면 ‘사자 명예훼손’이 된다. 박정희와 이승만이 그런 경우인데 몇 건의 소송이 있었다. 이런 법적 제약이 따른다는 게 한 가지이고, 다른 한 가지는 자료조사의 방대함이다. 전기는 사회상을 함께 다뤄야 하기 때문에 자료조사를 충분히 해야 한다. 자료조사는 반드시 원전에 근거해서 해야 하는데 지난한 작업이다. 이런 자료조사를 통해 한 인물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사회적 배경 그리고 문화적 배경을 살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글재주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인물의 재해석은 재발견을 이끈다. 위는 이충렬씨가 쓴 책.
자료조사는 주로 어떻게 하나?


조각조각 남은 기록을 찾는다. 만나볼 만한 주변 인물을 특정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기는 주인공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나 스승, 제자를 통해 에피소드를 모아야 한다. 이게 없으면 주인공이 살아 움직이지 못한다. 주인공의 주변에 누가 있었고, 그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혹은 받았는지, 기억의 조각을 맞춰봐야 한다. 권정생 선생의 경우 이오덕 선생이 쓴 일기와 전우익 선생이 남긴 인터뷰를 바탕으로 관계를 복원했다.

자료조사를 할 때 노하우가 있다면?

독서를 잡다하게 했는데 특히 인물 인터뷰 묶은 책을 좋아했다. 이런 자료는 깊은 곳으로 가는 길목이 된다. 1960~1970년대의 옛 잡지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간송 전기(<간송 전형필>)의 거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고미술 잡지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1969년 <소년한국일보>에서 창간해 1970년 종간한 <횃불>이라는 아동문학 잡지에 권정생 선생이 글을 게재한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중앙 문단에 진출하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나는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였는데, 검색해서 안 나오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어야 전기가 완성된다.

자료조사를 할 때 자료의 신뢰성도 따져봐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모든 자료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윤색이 되거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이중삼중의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기존 자료에 권정생 선생은 신춘문예에 한 번 떨어졌다고 나와 있는데 원자료를 찾아보니 두 번이었다. 본인이 직접 기록한 것도 틀릴 수 있다. 일본에 사는 형님이 조총련 모국 방문단으로 입국한 해가 1982년이라고 기록했는데 찾아보니 1980년이 맞았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국
책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권정생 작가의 삶의 궤적을 담았다. 위는 1983년 권 작가가 빌뱅이 언덕에 새집을 짓고 찍은 기념사진.
자료조사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전기 작가는 한마디로 ‘가성비’가 안 좋은 직업이다. 편집자들도 자료조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알기 때문에 가성비가 안 나온다며 나더러 밥을 사지 말라고 한다(웃음). 그래도 나이 50대에 데뷔해서 책이 팔리는 작가가 된 것은 운이 좋았다. 메이저 출판사의 저자군으로 진입하는 게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전기 작가여서 픽업된 것 같다. 간송 전기는 7만 부가 나갔고 다른 전기도 4~5쇄는 찍었다. 두 권짜리 김수환 추기경 전기(<아, 김수환 추기경>)도 2만 부 이상 팔렸다.

인물에 접근할 때 마니아와 학자의 중간, 컬렉터로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분이 추구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간송의 경우 ‘문화유산을 모았다.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럼 간송은 왜 모았는가, 최순우는 우리 문화재에서 무엇을 찾았는가, 그 배경과 정신을 살피면 구체성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감정이입이 되고 독자들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지 계획이 선다.

매번 인물을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인물의 재해석은 재발견을 이끈다. 간송미술관을 찾고 싶게,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읽고 싶게 하는 게 전기가 가진 힘이다. 거기에서 보람을 느낀다. 간송 전기를 쓸 때 사실 전문가들 외에는 간송을 잘 몰랐다. 박물관계의 큰 별이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기가 나온 후 간송미술관 관람 줄이 길어지고 이후 사람이 몰리면서 외부 전시관으로 전시가 확장되었다. 최순우 옛집에 방문자가 늘기도 했다.

인물 취재에 사람들이 잘 응하는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겨우겨우 허락받고 취재를 간다. 그래서 현장 인터뷰 장면을 담은 사진이 없다. 나를 내세우면 그분들이 내가 주인공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올 이야기도 안 나온다.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어떤 분들은 녹음조차 못하게 한다.

유족과 주변 인물 때문에 전기 집필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나?

유족이 동의를 해도 주변 인물들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전기를 쓰겠다고 하니까 주변 인물들이 단체로 증언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우리끼리 안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 유족이 비통해하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 동업했던 친구가 전기 집필을 막기도 했다. 실제로 회사 설립 과정에서 고인이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부각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유족이 자료를 넘겨줬지만 포기했다. 안 되는 경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전기는 잘 읽혀야 한다고 했는데, 집필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자료조사를 하면서 연도별, 월별, 날짜별로 메모를 한다. 심하면 시간별로 메모를 하기도 한다. 2년 정도 자료조사를 하면 대략 3000~5000장 정도 메모를 하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1만2000장을 쓰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서 이를 축약해 500장 정도로 구성한다. 이후 에피소드를 더해 1200~1300장 정도로 구성한다. 하루에 원고지 5~10장씩을 쓰는데, 6개월 정도 걸린다. 간송은 수집품이 방대하고 공부할 것이 많아서 자료조사만 7~8년 걸리고 집필도 1년이 걸렸다.

나름 전기를 쓰는 순서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간송 전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간송을 쓰다 보니 가장 많이 활동을 함께한 최순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제자이기도 했고. 그래서 최순우 전기(<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썼다. 또 달항아리를 매개로 최순우와 친구인 김환기 화백(<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 문화를 빛낸 이 3인을 묶으면,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의 줄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쓰게 되었다.

권정생 전기는 어떻게 쓰게 되었나?

우리나라에는 작가에 대한 전기가 없다. 이광수도 김동리도 서정주도 전기가 없다. 작가 전기를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작가 지망생에게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들에게는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법 알려진 이들이라 사람들이 오히려 흥미 없어할 수도 있다.


모두가 아는 사람은 모두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너무 유명한 경우 사실 쓰기 힘들다. 그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사람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이었다. 자신들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여긴다. 그 인물을 단편적으로 아는 것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할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전기는 누구에 대한 것인가?


단원 김홍도 전기를 준비 중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인 ‘갑질 문화’에 대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김홍도는 중인이었다. 그 시절 중인 신분으로 어떻게 자기 세계를 이뤘는가 들여다보려 한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갑질은 역사적으로 보면 양반 의식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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