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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사 앞에 모여 항의하고 있다.

월급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어떤 규칙으로 작동하는지는 정치가 결정한다. 정치란 자원 배분의 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월급은 가장 고전적인 정치의 의제다.

5월28일 국회 본회의는 재석 의원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흔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법’으로 불린다. 최저임금에 속하는 ‘임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예전보다 넓게 해석했다. 이 법 개정으로 월 단위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된다(아래 ‘개정된 최저임금 계산법’ 기사 참조). 이것은 월급봉투의 규칙을 직접 바꾸는 큰 변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소위는 5월21일에서 24일까지 사흘 동안 고전적인 정치투쟁을 보여주었다.

■ 그 정책은 왜 하는가?

최저임금 이슈에서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도 간단치 않다. 최저임금 정책의 원래 목표는 ‘노동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는 하한선 설정이다. 최저임금법 제1조는 “임금의 최저수준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소득 노동자를 넘어 중하위 소득 노동자의 임금까지 끌어올렸다. ‘하한선 설정’의 관점으로 보면 예기치 않은 부수효과다. 왜 그랬을까?

한국의 임금체계는 독특하다. 기본급이 적은 반면 상여금이나 수당 등으로 이를 보전해주는 구조다. 기업이 장시간 노동을 시키려면 이런 구조가 유리했다. 기본급이 낮을수록 연장근로수당을 낮출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이 기형적 임금구조가 파열음을 냈다. 원래 최저임금은 기본급을 기준으로 따졌다. 한국 임금체계에서는 최저소득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하위 소득 노동자도 기본급이 최저임금 상승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속출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정책의 취지와 달리 중하위 소득 노동자의 임금을 동반해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임금체계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연공급 구조다. ‘괜찮은 일자리’에 한정된 얘기이기는 하지만, 직무나 성과보다는 연차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연공급 체제에서 막내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선배 노동자의 임금도 밀어 올린다. 한국 임금체계의 두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 정책은 ‘하한선 설정’이 아니라 꽤 광범위한 임금 부양 효과를 내게 된다. 5월21일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김삼화 의원(바른미래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더 최저임금의 보호를 받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공청회, 간담회 과정에서 서로 확인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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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줄어들 노동자가 21만6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아래는 절단 작업 중인 노동자.

여기서부터 흥미로운 갈등 축이 형성됐다. 광범위한 임금 부양이 부수효과가 아니라 정책 자체의 목표라는 식으로 최저임금 정책을 재해석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당론으로 반대한 정의당 신장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제도의 목적 중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임금격차 완화와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최저임금위원회가 밝히고 있다. 즉 2, 3분위(소득 하위 20~60%) 소득 노동자들의 소득이 개선되도록 하는 것 역시 제도의 목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진보 성향 노동시장 연구자는 “최저임금 상승은 아르바이트나 불안정 노동자 외에도 중하위 노동자들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양대 노총이 이 사실을 인식한 이후부터 최저임금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수단 중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이 있는 점을 들어, 문재인 정부 역시 이 ‘재해석’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법 개정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줄어들 노동자가 21만6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본급 인상이 기대되지만,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를 기준선(각각 25%와 7%) 이상 받고 있어 인상폭이 제한되는 노동자다. 최저임금 정책의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인 노동자 숫자)는 323만5000명이다. 21만6000명은 이 중 약 7%에 해당한다. 민주노총은 이 추산이 과소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으로 손해를 보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30%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 21만6000명은 저임금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최저소득수준 노동자들보다는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중하위 노동자층에 주로 분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보다 사정이 나쁜 최저소득수준 노동자들은 대체로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 자체가 없거나 높지 않다. 최저소득 노동자들은 산입범위가 확대되어도 상관이 덜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만든 최저임금 제도개선 TF는 “산입범위 확대 시 중소 영세기업·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우리의 맥락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고용노동부 기준 21만6000명이 이번 법 개정으로 내년도 급여 인상분이 줄어든다면, 이것을 ‘손해’라고 볼 수 있는가? 최저임금을 ‘하한선 설정’으로 본다면, ‘하한선 노동자’가 아닌 이 21만6000명에게 벌어진 사태는 ‘손해’보다는 ‘기대이익의 축소’ 정도로 불릴 일이다. ‘하한선 설정’의 관점에서 중하위 노동자의 임금 부양은 최저임금 정책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TF는 “합리적인 산입범위 확대를 통해 최저임금 보호가 필요한 근로자를 적정하게 타기팅하여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하한선’보다 위에 있는 노동자를 최저임금 정책과 분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최저임금을 ‘임금 부양 정책’으로 본다면, 21만6000명에게 닥친 현상은 본질적 피해에 속한다. 임금 부양이라는 정책 본연의 목표대로 수혜를 기대한 이들이 배반을 당한 것이다. 노동계의 구호 중 하나인 “줬다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은 이런 관점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치는 내가 대변하려는 이들에게 이롭도록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정의당과 노동계는 최저임금 정책의 개념을 다시 정의함으로써 21만6000명의 기대이익 감축을 ‘손해’로 다시 정의하려 한다. 이런 재정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정치의 영역에서는 핵심 질문이 된다.

■ 누가 손해를 보는가?

정치가 자원배분의 규칙을 정하는 일이라면, 새로 바뀐 규칙에서 더 불리해진 집단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최저임금 인상분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영세 자영업자든, 고용주가 추가로 지불한다. 이들의 곳간이 여유롭고 지불 능력이 충분한데도 노동자에게 저임금만 주고 있다면, 최저임금 상승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책이 된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국가가 나서서 교정해주는 셈이다. 최저임금법 논란이 뜨거웠던 5월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항상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논의(손실을 보는 노동자의 소득 보전 논의)는 항상 나중에 오기 때문에 신뢰를 갖기가 어렵지요”라고 말했다.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보답은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역사인식이 이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압력을 먼저 받는 곳은 영세 자영업과 한계 중소기업인데, 이들의 곳간 사정은 정부의 긴급대책을 끌어낼 만큼 심각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발맞추어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3조원을 긴급 수혈해 한계 기업 지원에 썼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기업에서 노동으로의 자원 재배분 성격을 분명 갖고 있었다. 속도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게 빨랐다. 적어도 최근 1년 동안의 최저임금 이슈에서 ‘노동자만 먼저 희생’했다는 정의는 좀 어색하다. 최저임금이 정치적 균열로 선명하게 떠오른 2017년 이후로는 한계 기업과 영세 자영업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TF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여력을 저해할 수 있다”라고 보고했다. 환노위 법안소위에서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에 대체로 의견 접근을 이뤘다. ‘누가 손해를 보는가’의 판단에서 한계 기업의 손을 들어준 입법자들이 더 많았다.

이 과정에서 최저소득수준 노동자들의 피해가 크지 않다는 최저임금 제도개선 TF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저임금 노동자 중에서도 1분위(하위 20%)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임금구조상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의 산입 여부보다 최저임금 인상률 자체가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의 명목 상승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산입범위 확대로 입는 손해는 상대적으로 작다. 이 맥락에서, 5월21일 환노위에서 한정애 의원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우리가 최저임금 제도를 살리기 위해 불합리한 부분을 정상화하자는 것인데….” 무슨 의미일까?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첫해의 급격한 인상에 노동시장이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은 징후들이 있다. 특히 소득 1분위(하위 20%)의 가계소득이 감소하여 소득분배가 악화한 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부를 긴장시켰다. 최저임금 상승은 노동의 가격을 끌어올리므로 단기적으로 노동 수요를 낮출 것은 비교적 자명하다. 이것이 일자리의 구조적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실험을 좌초시킬 가장 큰 위협이다.

다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해 결국 고용도 증가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정부는 하고 있다. 노동사회학자인 정이환 교수(서울과학기술대)는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를 일시적으로 줄이지만 곧 회복시킬까? 구조적으로 줄일까?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단기적인 통계들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좀 더 장기적인 결과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둘째, 노동시장의 이상 징후와 연동하여, 정부 내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올라오고 있다. 5월23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장 및 사업주의 수용성을 고려해 (최저임금 1만원)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인상폭 축소 의견이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약 달성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정부 경제정책의 사령탑이 대통령 핵심 어젠다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에 이견을 던진 것은 간단한 징후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와 여당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지 않을 경우 ‘2020년 1만원’ 공약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등장했다. 산입범위 확대가 “최저임금 제도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한정애 의원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최저임금 논의 과정을 잘 아는 여당 관계자는 “최저소득 노동자는 산입범위가 확대되어도 큰 타격이 없다. 이분들에게는 최저임금 명목 인상률이 곧 소득을 결정한다. 양대 노총이 마치 명목 인상률은 대선 공약으로 이미 확보된 것처럼 생각해서 산입범위 문제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라고 말했다.

산입범위 조정에 실패할 경우 경영계와 정부 내 반대파의 협공으로 ‘2020년 1만원’ 공약 자체가 후퇴할 수 있었고, 그럴 경우 최대 피해자는 최저소득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가’에 대한 여당의 답이 정의당·노동계와 달랐던 셈이다. 이런 주장은 최저임금 명목인상률을 결정하는 다음 싸움에서 대선 공약을 지켜낼 것이라는 의지를 전제로 해야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다. 이것은 한 달 내로 확인이 가능하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은 6월28일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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