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사IN〉 편집국은 북한 공부가 유행이다. 한국어 매체가 글로벌 특종을 할 기회라는 야심찬 기자도 있고, 그저 지긋지긋한 핵 위기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시민의 소망도 섞여 있다. 책을 읽고 저자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내 스터디 그룹이 있다. 5월에는 〈햇볕 장마당 법치〉를 읽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저자가 한 회사에 근무하기는 하지만, 저자 초청이 쉬워서 고른 건 아니다. 이 추천도 기자의 바로 앞자리에 저자가 있어서 쓰는 게 절대 아니다.
대북정책의 기본 줄기는 둘이다. 봉쇄와 압박, 혹은 교류와 협력. 교류협력론은 북한에도 시장경제가 발생하면 북한 정권의 태도가 더 개방적으로 바뀌리라고 기대한다. 제목이 보여주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교류협력론을 지지한다. 그러면서도 교류협력론이 그동안 충분히 강조하지 않던 무기를 꺼내 든다. 시장경제가 들어가면 반드시 따라 들어가는 것, 법이다.
시장경제는 신뢰할 수 있는 재산 보장책과 분쟁 조정 장치를 반드시 요구한다. 시장경제는 법 없이 작동하지 않으며, 시장의 침투란 곧 법의 침투다. 책은 중국의 개방과 시장화 과정에서 법치주의가 어떻게 스며들어 갔는지 보여준다. 중국에 침투한 법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해체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으나, 공산당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제한적 법치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후 책은 북한으로 시선을 돌려 개성공단에서 어떻게 법치의 싹이 돋아났는지를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진짜 현장 전문가들을 여럿 접촉한 티가 나는 깨알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치철학자들이 오래 붙들고 씨름하던 질문과 만나게 된다. 권력자는 왜 거추장스러운 법의 구속을 받아들이나. 법치주의는 어떻게 권력의 포악함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었나. 정치철학의 고전적 주제가 북한이라는 흥미로운 무대 위에서 다시 변주되고 있다. 아무래도 개방된 북한을 취재할 준비를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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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사라지는 세상
운전자가 사라지는 세상
문정우 기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례적으로 북한의 도로 교통이 열악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오면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걱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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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앉아 나누는 ‘보통의 행복’
마주 앉아 나누는 ‘보통의 행복’
최진규 (포도밭출판사 대표)
이 책의 번역 초고가 들어왔을 때다. 한달음에 읽고는 마음이 들떴다. 편집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얻고자 저자들의 근황을 검색하는데, 이런… 공저자 중 한 명인 아마미야 마미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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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충분히 마시지 못했습니다
아직 충분히 마시지 못했습니다
장일호 기자
몇 년 전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술, 담배, 고기 중에 하나만 끊어야 한다면 뭘 끊을 거야?”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답했다. “목숨.” 나는 나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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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의 신체 왜소는 지속적 훈육의 결과? [독서일기]
북한 주민의 신체 왜소는 지속적 훈육의 결과?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지난번에 소개했던 북한 관련 도서 세 권은 김일성주의의 종언과 돌이킬 수 없게 된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한입으로 말하고 있다. 박영자의 〈북한 녀자-탄생과 굴절의 70년사〉(앨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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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시대 돌아온 칵테일
혼술의 시대 돌아온 칵테일
김교석 (벤치워머스 편집자)
주류 산업만큼 비주류가 주류를 압박하는 형국도 보기 드문 것 같다. 크래프트 맥주 혁명 이후 개성과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음주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술은 취하기 위한 음료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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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말고 ‘좋아하는 책’
‘좋은 책’ 말고 ‘좋아하는 책’
은유 (작가)
읽을 만한 책 좀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시를 읽고 싶다, 니체를 읽겠다, 독서모임 하겠다며 강연장에서 혹은 이메일로 생면부지의 사람이 물어올 땐 난처하다. 나는 책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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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어 건넨 뒤늦은 작별 인사
용기 내어 건넨 뒤늦은 작별 인사
박상문 (인물과사상사 편집장)
아버지는 지붕에 올라가셨다. ‘아버지, 이제는 내려오셔야 해요. 하늘은 그만 색칠하시고 내려오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들었을까? 넓고 깊은 하늘에 파란색 물감으로 색칠하시는 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