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에 관한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헌재)에서 4대 4로 합헌 결정이 난 지 6년 만이다. 지난 5월24일 공개변론을 앞두고 헌재는 관련 부처에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법무부가 낸 의견서는 이미 공분을 사고 있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주목할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견 없음’이다.

보건복지부는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사유 등을 규정한 모자보건법의 주무 부처다. 시술을 담당하고 있는 병·의원을 관리 감독하기도 한다. 그간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살펴보자. 2009년 전재희 전 장관은 저출산 타개책으로 “낙태를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에서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하며 낙태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보건복지부는 산부인과에서 낙태 예방 상담을 하도록 하고 신고 전화를 설치하겠다는 ‘불법낙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여성계와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2016년에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개정하면서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인공임신중절을 뜬금없이 포함시켜, 면허정지 기간을 1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려 했다. 이런 시도가 있을 때마다 시술 기관이 줄어서 비용이 급증하고, 여성들은 병원을 찾아 수백~수천㎞를 전전하거나 불법낙태 약을 사 먹었다. 정말 아무 의견이 없는가?

ⓒ정켈 그림

안전하지 못한 인공임신중절로 인해 매년 세계에서 700만명이 합병증으로 치료가 필요하며, 4만7000명이 사망한다. 의학적이고 안전한 시술만 가능하다면 모성 사망(임신·분만 관련 질환으로 사망)의 13%가 줄어든다. 시술이 늦어질수록 늘어나는 합병증 위험, 의무기록을 남기지 않고 의료진에 대한 면책 각서를 강요하는 등 박탈당하는 환자 권리, 유산 유도 약이나 흡입술 같은 최신 기술이 정착되지 못하는 현실, 의료인 교육 전무 등. 이 모든 것이 공중보건의 문제임은 명확하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2015)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과 관련된 법과 정책은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이고 제도적인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

인공임신중절에 의료보험 지원하는 프랑스

지난해 7월 타계한 프랑스의 전 보건부 장관 시몬 베이유. 1974년 취임 즉시 현대적 피임도구와 피임약을 합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했으며, 1975년에는 인공임신중절 합법화 법안을 내놓았다. 당시 젊은 여성 장관은 인신공격과 중상모략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의연하게 발언했다. “인공임신중절은 절망적 상황의 예외적인 비상구로 열어놓아야 합니다.” 격론 끝에 이 법안은 284대 189로 통과되었고, 아직도 ‘베이유 법’이라 불린다. 베이유 법은 인공임신중절을 5년간 한시적으로 10주 이내 요청하면 허용했다. 1979년 새로운 입법 절차를 밟아 낙태에 합법성이 부여되고, 1982년부터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다. 2013년부터는 시술 비용 전액을 국가가 지원한다.

5월25일 국민투표로 35년 만에 역사적인 낙태 합법화를 이뤄낸 아일랜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의사 출신으로, 낙태죄 폐지 찬반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했다. 그는 “이번 국민투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에 대한 신뢰, 임신 지속이 여성의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하는지 판단하는 의사에 대한 신뢰에 관한 것”이라며, “환자들이 의사들로부터 ‘이 나라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거나, 아일랜드 해를 외롭게 건너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정치인의 발언과 정부의 입장은 그 사회가 투영된 결과물이다. 보건복지부의 ‘의견 없음’이 부끄럽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