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에 적극적인 편이다. 내 글 쓰는 일은 괴롭지만 잘 쓴 남의 글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기획안을 만들고 사람을 찾기보다는, 사람을 두고 기획을 굴려본다. ‘저 사람이랑은 어떤 글을 섞어보면 좋을까.’ 지난해 2월 시작된 ‘불편할 준비’는 좀 달랐다. 페미니즘 이슈만을 다루는 지면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기획이 앞섰다. 필자를 구성하는 일도, 편집국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8년차 커리어를 걸고 만들었다’는 말이 아주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첫 필자 모임에서 ‘매주 쓸 게 있을까요?’라던 우리의 질문은 처음부터 기각됐다. 아이템은 넘쳐났다. 각을 세우고 보니 이 나라는 ‘여성은 국민이 아니다’라는 걸 매일같이 확인시켜주는 일투성이였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매주 썼다.

ⓒ시사IN 양한모

5월에는 한 달간 매주 독자 대상 유료 강연 ‘불편할 준비, 되셨나요?’를 열었다. ‘불편할 준비’ 필자를 비롯한 〈시사IN〉 여성 필자들이 강사로 나섰다. 모객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기다렸던 ‘조용한’ 2030 여성 독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매주 새롭게 놀라웠다.

강사를 섭외하는 동안 제일 여러 번 들었던 말은 “(강의를 잘) 못한다”였다. 실제로 강의를 ‘못한’ 강사는 한 분도 없었다. 수강자를 대상으로 매번 강연 피드백을 받았는데 모두 만점인 5점에 가까웠다. 나도 종종 외부로부터 강연이나 기고 요청을 받으면 “못한다”라고 손사래를 치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대답이다. 내가 못한다는 걸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지?

강사들에게 했던 대답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나서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뭐든 자꾸 해봐야 늘어요. 누구는 처음부터 잘했겠어요?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자꾸 하다 보니 잘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이번에 망하면 어때요. 제가 같이 망해드릴게요. 경험해봅시다.”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의 저자 앤디 자이슬러는 성평등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평등이란 단순히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커다란 실패를 허용하는 것이다(170쪽).” 나는 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더 많이 실패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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