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6·13 지방선거 후보자 분석 결과’를 보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전체 후보자의 80.2%가 남성이다. 17곳 광역단체장의 경우 모든 후보가 남성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는 다른 정당이 내세운 여성 광역단체장 후보도 2명에 불과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 각종 시험에서 여성이 수석을 차지했다는 뉴스를 접한 지도 오래되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여성의 로스쿨 진학률은 44.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여전히 낮고 그만큼 현실 정치권의 유리천장은 높고 단단해 보인다. 전 세계 의회와 관련된 각종 통계를 수집하는 국제의회연맹(IPU)이 193개국의 중앙의회에서 여성 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집계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18년 5월 현재 전체 국회의원의 17%가 여성으로 세계 118위를 기록하고 있다(아래 〈표 1〉 참조). 폭발적으로 전개된 미투 운동이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성취에 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지만,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미국도 여성 정치인 비율만 놓고 보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 〈표 2〉는 1917~2017년 100년간 미국 상·하원에 선출된 여성 의원의 수와 상·하원 의원 중 여성 의원의 비율을 보여준다. 여성 의원 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증가했지만, 앞서 소개한 국제의회연맹의 여성 정치인 비율 순위에서 미국은 하원 여성 의원 19.4%, 상원 여성 의원 23%로 전체 103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크게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순위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주지사, 장관 등 어느 지표를 봐도 성적은 비슷하다. 2015년 미국에서 4년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추월했고, 전통적으로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법조계를 보더라도 2016년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로스쿨 입학생의 절반을 넘어섰지만, 정치권에서만은 여전히 여성 정치인이 ‘소수’로 남아 있다.
왜 여성 정치인은 고사하고 장차 정치인을 꿈꾸는 미래의 여성 정치인조차 이토록 보기 어려운 것일까? 정치학자 리처드 폭스 교수와 제니퍼 롤리스 교수는 2004년 발표한 논문에서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인 법조인·기업가·교육 전문가·사회활동가 3700명 이상을 설문조사했다(〈Entering the Arena? Gender and the Decision to Run for Office〉). 흥미롭게도 교육 수준이 비슷하고 공직을 맡은 경험도 비슷한 남성과 여성에게 앞으로 선출직에 도전할 의사를 물어보면, 남성들이 ‘그렇다’고 답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래서인지 실제 선거를 경험한 비율도 여성이 훨씬 낮았다.
왜 비슷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후보가 될 확률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두 학자는 다음 두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첫째, 정당이나 비영리단체가 선거 출마를 권하거나 부추기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남성이 대상이다. 여성에게는 그러한 권유를 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 둘째, 스스로 정치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적다. 조건과 배경이 같아도 그렇다. 논문을 보면 정당 조직이나 비영리단체가 여성에게 정치에 뛰어들라고 권유하는 것이 여성 후보를 늘리는 데 중요하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소규모 지역의 시장, 교육감, 치안판사에 이르기까지 유권자가 선출하는 공직이 50만 개나 된다. 비영리단체 ‘She Should Run(그녀는 출마해야 한다)’은 2030년까지 여성 후보자 25만명 배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4년 폭스와 롤리스 교수는 남녀의 정치적 야망이 고등학생 때까지는 거의 차이가 없다가 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갈린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Uncovering the Origins of the Gender Gap in Political Ambition〉). 두 학자는 만 13~ 17세 고등학생과 만 18~25세 대학생 혹은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4000명을 설문조사했다. 아래 〈표 3〉은 연령대별로 선출직 후보로 나서는 것을 고려해본 응답자의 비율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정치적 야망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18세가 되면 그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정교육을 통한 사회화, 즉 집에서 부모와 얼마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지와 같은 요인이 주로 정치적 야망에 영향을 미쳤다. 대학생 때는 스포츠처럼 경쟁이 치열한 환경을 경험했는지,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거나 정치 관련 웹사이트에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또 스스로 자신감이 얼마나 높은지 같은 요인이 정치적 야망에 영향을 미치고, 이 점에서 남녀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나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성 정치인 할당제(쿼터)를 시행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100개국이 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8년 현재 전 세계 주요 정당 가운데 여성 정치인 비율을 놓고 보면 수위를 다투는 스웨덴 사민당만 보더라도, 1993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 할당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사민당이 내는 후보의 80%가 남성이었다. 남성 후보 위주로 선거를 치르다 보니 선거를 통해 내놓는 의제도, 선거 풍토도 남성 위주일 수밖에 없었다.
런던 정경대학의 티머시 베슬리 교수와 공저자들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1993년 여성 후보 할당제가 시행된 뒤 스웨덴 정치인의 구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했다(〈Gender Quotas and the Crisis of the Mediocre Man:Theory and Evidence from Sweden〉). 저자들은 스웨덴 정부가 집계한 소득과 직업에 관한 매우 자세한 데이터를 살폈다. 특히 스웨덴 남성은 군 복무 전에 IQ 검사를 받고 심층적인 설문조사를 하는데, 저자들은 이를 토대로 리더십 점수를 산출했다. 그리고 여성 후보 할당제가 도입되기 전후 남성 정치인의 IQ와 리더십 점수 등 능력치를 비교했더니, 대체로 능력치가 낮은 남성 정치인들이 대거 정치권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 할당제와 그저 그런(mediocre) 남성들의 위기〉라는 논문 제목이 시사하듯, 여성 정치인이 대거 등장하며 남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화되었고 그 결과 능력 있는 정치인만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정치권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된 여성들의 능력치는 어땠을까? 여성 정치인 할당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할당제 덕에 능력도 없는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에 진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베슬리와 공저자들의 분석을 보면 할당제가 도입된 전후 여성 정치인의 능력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할당제 이후 선출된 남녀 정치인의 능력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결국 능력 있는 여성이 새로 정치권에 진출하고, 능력이 부족했으나 관행에 기대어 정치권에 남아 있던 남성 정치인들이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퇴출당한 덕에 전체 정치인들의 수준은 높아졌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후보로 나서고 있다. 435명을 선출하는 연방 하원의원 자리에 출사표를 던진 여성 정치인은 총 476명이다. 연방 의원뿐 아니라 주 정부를 비롯한 지방선거에서도 많은 여성이 당선을 위해 뛰고 있다(미국은 연방 의원 등을 뽑는 전국 선거와 지방선거를 한꺼번에 치른다. 일부 주는 별도의 임기에 따라 따로 선거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9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애틀랜타가 있는 조지아 주 주지사 후보를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는 두 여성 정치인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주 의회 의원이었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승리해 흑인 여성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민주당 주지사 후보가 되었다.
여성 후보들의 두드러지는 활약 속에 지금 이 순간도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하지만 새내기 여성 정치인들이 11월6일 선거에서 과연 몇 명이나 당선되고, 그 뒤에도 계속 정치권에 머무를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이기고 후보가 되더라도 본선에서 여성 정치인이 나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는 유권자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 여성 후보에게 인색한 지역에서는 당선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그만큼 험준한 셈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여성 정치인이 늘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여성이 많아진다고 정말 정치가 달라질까? 여성은 공직에 선출되기까지 더 치열한 과정을 뚫고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여성이 국회의원, 주지사, 검찰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곧 훨씬 꼼꼼한 검증과 선별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라 안지아 교수와 크리스토퍼 베리 교수는 2011년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 하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논문은 여성 의원이 지역구를 대표하면 같은 지역구를 남성 의원이 대표할 때보다 지역구로 끌어가는 국가 예산이 9%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The Jackie (and Jill) Robinson Effect:Why Do Congresswomen Outperform Congressmen?〉). 예산만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종종 우선순위로 두는 정책 영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과의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와 공저자는 2004년 발표한 논문에서 인도 지방정부에서 선별적 여성 정치인 할당제를 시행한 결과를 분석했다(〈Women as Policy Makers:Evidence from a Randomized Policy Experiment in India〉). 즉, 여성 정치인이 선출된 지역에서 (남성 정치인이 대표하는 지역에 비해) 깨끗한 식수 확보나 육아 지원 확충과 같은 분야의 정부 예산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런 문제는 주로 여성 유권자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높은 직급일수록 여성 보좌관 수 줄어
여성 정치인이 미치는 영향은 정책이나 예산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 보좌관이나 미국 정치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로비스트의 커리어에도 여성 정치인 유무는 큰 차이를 만든다. 미국 의회 보좌관 전체를 놓고 보면 여성의 비율은 50%가 넘는다. 그런데 직급별로 나눠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보좌관 수는 줄어든다. 그런데 민주당 여성 정치인의 경우 또 달랐다. 필자가 2001~2014년 미국 의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민주당 여성 의원실’에서는 직급이 높은 비서실장(Chief of Staff)의 절반이 여성 보좌관이었다. ‘공화당 남성 의원실’의 비서실장 가운데 여성 보좌관의 비율 25%보다 두 배 높았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밥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이른바 ‘펜스룰’이었다. 그런데 2015년 〈내셔널 리뷰〉가 미국 의회 보좌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펜스 부통령뿐 아니라 많은 미국 남성 의원들이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많은 남성 의원이 여성 보좌관이나 여성 로비스트와 단독으로 면담하거나 회의하는 것을 꺼렸다. 국회 안에서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면 이런 성향은 훨씬 강해진다. 이는 여성 보좌관을 비롯해 정치권에 있는 여성들이 성추행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가,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느냐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지 않으면 많은 정책과 사회적 변화가 그만큼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의 고정된 성 역할에 관한 사회화, 그리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차별이 계속되는 한 여성이 정치에 나설 가능성은 자격 요건과 수준이 비슷한 남성보다 여전히 낮을 것이다. 사회가 여성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원인을 찾아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다음 선거에서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등장해 정치적 야망을 마음껏 펼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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