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때 이웃의 점잖은 대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가 만들었다는 평화 5원칙(영토·주권의 상호존중, 불침략,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적 공존) 외교, 그중에서도 내정불간섭 원칙은 중국의 이미지를 좋게 했다.
큰 나라라고 남의 나라 내정에 불쑥불쑥 참견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니 어찌 멋져 보이지 않았겠는가. 공자의 나라다운 인의예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미덕이 사라졌다. 중국이 예전보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월등히 커진 건 알겠는데 정신연령은 오히려 반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과거 대인이요 군자인 척하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변덕스럽고 난폭한 사춘기 청소년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내 말이 아니다. 지난해 작고한 미국의 석학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마지막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예언을 하듯 이런 취지의 말을 남겼다. ‘그동안 미국의 패권주의에 불쾌감을 느꼈을 아시아인들은 미국 없는 중국의 시대를 상상해보기 바란다.’
그의 예언처럼 미국이 사라진 아시아가 결코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을 아시아 국가들이 이미 절감하기 시작한 듯하다. 1992년 의회 결의로 미군 기지를 폐쇄한 필리핀은 몇 년째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미국과 군사 교류를 확대하는 추세다.
갑작스러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따른 한반도 질서 재편 과정에 중국도 혼란을 느꼈으리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왜 이웃 국가들이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사드를 빌미로 한국 기업들을 압박할 때 주변국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치와 경제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 국가라는 인식은 오늘날의 국제경제 시스템에서 치명적이다. ‘종전 선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중국이 세계 10대 경제국인 한국을 아직도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 국가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1958년 인민해방지원군이 북한에서 철수했으면 그날부터 중국은 한반도의 내정과는 무관한 국가이다. 적어도 저우언라이의 내정불간섭 원칙에서 보면 최근 중국의 외교 행보는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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