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22명이 공을 쫓고, 마지막엔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다.”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게리 리네커가 남긴 이 말은 과거에도, 현시점에도 독일 대표팀에 가장 부합하는 설명이다. 브라질(5회)에 이어 월드컵 우승 2위이자 최다 결승 진출팀(8회)인 그들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정상에 오른 디펜딩 챔피언이다. ‘프레월드컵’인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주전 상당수를 빼고도 여유롭게 우승을 차지했다. 기계를 연상시키는 조직력, 토너먼트에 강한 전통,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전 포지션에 배치된 독일은 지난 14개월 동안 FIFA 랭킹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독일은 통산 다섯 번째, 그리고 2연속 월드컵 우승에 도전한다.

ⓒEPA메수트 외질(아스널)

메수트 외질(아스널) 뛰어난 시야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공간을 창출하며 마법 같은 패스를 넣어주는 찬스 메이커. 높은 축구 지능으로 남아공 월드컵부터 세대교체를 알렸고, 유로 2012를 기점으로 대표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확고히 올라섰다. 수비력에 대한 지적을 엄청난 공격력으로 상쇄한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데도 능해, 최근 3시즌 동안 25골 43도움을 기록했다. 프리미어 리그 진출 후 탈압박 능력이 한층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터키 이민자 3세인데 최근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났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유럽 정서를 부채질하며 유럽연합(EU)의 축인 독일을 집중 공격해 양국 외교 관계가 냉랭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질은 요아힘 뢰브 감독과 축구협회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정치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에 나선다.

ⓒEPA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 현 유럽 최강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책임지는 선수. 독일 대표팀이 보유한 또 한 명의 월드 클래스. 탁월한 킥과 감각적인 패스로 경기를 풀어간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로 시작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했다. 수비 라인을 지능적으로 보호하면서도 공격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패스 성공률과 활동량에서 모두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이로운 선수.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궤적이 큰 오른발 킥을 책임진다. 양발을 가리지 않고 후방에서 날리는 슛도 일품인데, 낮게 깔려서 구석으로 감겨 들어가는 슛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미드필드 후방에 위치한 제2의 플레이메이커라 할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69초 동안 멀티골을 넣으며 7-1이라는 기록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EPA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골키퍼 왕국’ 독일에서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무엇보다 가장 보수적인 포지션인 골키퍼의 개념과 역할을 진일보시킨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193㎝, 92㎏의 체격 조건에 뛰어난 반사 신경과 선방 능력, 제공권 장악 등 골키퍼로서 모든 덕목을 갖췄다. 하지만 노이어는 자신의 역할을 막는 데 국한하지 않는다. ‘스위퍼 키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페널티박스 밖을 커버하며 수비 범위를 넓혔다. 때로는 하프라인까지 나와 발과 머리를 이용해 수비한다. 정교한 킥과 던지기로 찬스도 만든다. 노이어의 등장과 함께 골키퍼에게 빌드업과 볼 컨트롤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과거 골을 기록한 골키퍼는 여럿 있었지만 노이어처럼 통산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사례는 없다. 2017년 4월 중족골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을 한 그는 8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테르 슈테겐(바르셀로나) 등 그를 대체할 선수가 충분한데도 뢰브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노이어를 포함시켰다. 정상급 골키퍼를 넘어선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한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진행된 세대교체가 대성공을 거뒀다. 외질, 크로스, 토마스 뮐러, 마츠 후멜스, 제롬 보아텡 등 황금 세대가 여전히 중심축을 잡고 있다. 여기에 독일 전역의 육성 시스템이 길러낸 선수들이 꾸준히 올라오며 신구 조화도 완벽하다. 전 포지션에 걸쳐서 약점이 없다. 공수 밸런스는 이번 대회 참가팀 중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아일랜드, 체코, 노르웨이 등 까다로운 팀과 한 조에 속했음에도 월드컵 유럽 예선 10전 전승, 43득점 4실점의 엄청난 기록을 거뒀다.

12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뢰브 감독의 능력에 대한 신뢰도 높다. 높은 점유율과 빠른 속도감에 바탕을 둔 그의 전술은 기술 좋은 미드필더들의 역량을 극대화한다. 지난 1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 대비해 4-2-3-1, 3-3-2-2 등 다양한 포메이션과 전술, 선수 조합을 실험했다. 조슈아 키미히(바이에른 뮌헨), 율리안 드락슬러(파리 생제르맹·PSG), 티모 베르너(라이프치히), 레온 고레츠카(샬케 04) 등이 대표팀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뢰브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도 높다. 명스트라이커 출신인 올리버 비어호프 단장에게 대표팀 외부 업무를 맡기고, 선수단 관리에 철저히 집중한다.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이민자 출신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고 있지만, 뢰브 감독을 중심으로 완벽히 융화한다. 내부 갈등이나 잡음 없이 철저한 계획에 따라 대표팀을 운영함으로써 독일은 기복 없는 경기력을 유지한다.

ⓒEPA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독일 주장 필립 람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가운데).
수비에서부터 시작되는 정교한 빌드업과 높은 볼 점유율, 거기에 2선의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만드는 다양한 공격 루트. 독일은 특정 선수, 특정 플레이를 막는다고 제어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밀집 수비에 패스 게임이 막히면 중거리 슛을 날리고, 세트피스로 뚫는다. 후반에 흐름을 바꾸는 조커도 풍부하다. PSG의 주전 미드필더 드락슬러, 도르트문트의 에이스 마르코 로이스 등이 벤치에서 출격을 기다린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결승골의 주역인 마리오 괴체(도르트문트)와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공격수 르로이 사네가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을 정도다.

팀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최전방 공격 자원은 독일의 우승 가능성을 언급할 때 잠시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소다. 베르너와 마리오 고메즈(슈투트가르트)는 올 시즌 각각 20골과 9골을 기록했다. 다른 우승 후보들이 시즌 30골 이상을 넣는 최고의 골잡이를 보유한 것과는 대조된다. 뢰브 감독은 득점을 최전방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공격 옵션을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내세웠다. 그러나 만일 2선 득점력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계획은 꼬일 수 있다.

최강 전차인데 주포가 약하네

노이어의 선발을 둘러싼 논란도 변수다. 기량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사실상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실전 감각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를 뽑는 것이 합당한지를 놓고 의견이 충돌했다. 만일의 경우 노이어를 대체할 자원은 충분하지만 독일답지 않은 원칙 적용으로 비생산적인 논란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16강에 자칫 최대 라이벌 브라질을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존재한다. 16강에 오르면 독일은 E조에서 올라온 팀과 맞붙는다. 독일과 브라질 모두 16강 진출이 확실시되지만 한 팀이 조 1위를 점하지 못할 경우 16강에서 미리 보는 결승전이 벌어질 수 있다. 독일은 조별 리그에서 여유를 갖고 운영하다 토너먼트부터 100%로 집중하는 타입인데 브라질과의 일전을 피하려면 확실히 승리를 챙겨야 한다. 디펜딩 챔피언을 향한 집중 견제도 당연히 존재한다. 역대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우승은 이탈리아(1934년, 1938년)와 브라질(1958년, 1962년)만이 이룬 성과다. 반세기 넘게 2연패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디펜딩 챔피언에게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EPA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
지난 일곱 번의 월드컵에서 가장 부진했던 성적이 8강일 정도로 독일은 강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독일이 통일 전 서독으로 참가해 차지한 마지막 우승이다. 전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던 독일은 복수에 성공했고, 통일 분위기가 한껏 조성된 조국에 큰 기쁨을 안겼다. 하지만 1994년과 1998년에는 세대교체에 안이한 모습을 보였다가 8강에 그쳐(?)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조로운 전술, 창의성 없는 플레이로 일관했고 로타어 마테우스, 슈테판 에펜베르크 등 베테랑들은 팀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독일 축구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하는 암흑기다.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은 침체됐던 독일의 분위기를 되살렸다. 미하엘 발락이라는 중원 사령관과 명수문장 올리버 칸의 활약에 많이 기댄 감이 있지만 자신감을 찾았다. 자국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은 3위에 그쳤지만, 세대교체 성공과 뢰브(당시 수석코치)라는 명지도자의 발굴로 황금기의 도래를 예감케 했다.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다시 3위를 차지했고, 브라질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8강전부터 라이벌인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꺾었고, 남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초의 유럽 팀이 되며 독일은 완벽한 챔피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기자명 서호정 (〈골닷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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