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개? 그렇게 많아? 전체가 226개인데?”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주일 전, 〈시사IN〉 지방선거 취재팀은 전국 226곳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의 역대 선거 결과를 정리해봤다. 226곳 기초단체장 선거는 정당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지에서만 알 수 있는 인물과 조직의 힘, 그러니까 정당의 실력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성적표다. 전국을 겨우 17조각으로 나누는 광역단체장 지도보다, 226조각으로 나눠서 보는 기초단체장 지도가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체장까지 선거로 뽑는 지방선거는 1995년부터 시작해서 올해가 7회째다(1995년 1회, 1998년 2회, 2002년 3회, 2006년 4회, 2010년 5회, 2014년 6회, 2018년 7회). 21세기에 치러진 네 차례 지방선거(3~6회)에서, 226곳 기초단체(기초단체 숫자는 2018년 기준)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집계했다.
 

ⓒ시사IN 이명익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추미애 대표(앞줄 맨 왼쪽) 등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출구조사 결과가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나오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왼쪽)는 10여 분 만에 자리를 떴다.

결과는 취재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래 〈그림 1〉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네 차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적어도 한 번 이상 당선자를 배출한 기초단체를 색으로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민주당)과 붉은색(자유한국당)으로 표시된 지역은 각 당이 기본적 지역 기반을 갖춘 곳으로 볼 수 있다. 반면 4전 전패 지역은 확실한 취약지다. 이 지역은 색 없이 투명하게 표시했다. 민주당은 226곳 중 117곳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당선자를 배출했다. 자유한국당의 성적이 훨씬 좋다. 226곳 중 181곳에서 한 번 이상 당선자를 냈다.

 


〈그림 1〉을 보면, 오랫동안 자유한국당이 민주당보다 더 지역 기반이 탄탄한 정당이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민주당은 호남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4전 전패한 기초단체가 있다. 강원도에서 영남권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동부 일대는 지도에서 텅 비다시피 했다. 유권자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서도, 경기 북부 접경지대와 동부에 빈 곳(전패 지역)이 속속 등장한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호남 외에는 충북 세 곳과 수도권 한 곳만 4전 전패 지역이다. 수도권에는 경기 가평군 하나다(가평군은 네 차례 모두 무소속 후보가 뽑혔다). 자유한국당 4전 전패 지역은 45곳이다. 그중 호남이 41곳이다.

21세기 들어 민주당은 226곳 기초단체 중 109곳에서 4전 전패를 기록했다(아래 〈표〉 참조). 비율로는 48%나 된다. 20세기에 치러진 1회와 2회 선거까지 포함해도 ‘민주당 전패 기초단체’는 크게 줄지 않는다. 95곳이다. 109개 전패 지역 중, 1995년 또는 1998년에라도 민주당이 이겨본 지역은 14곳에 그친다는 의미다.

109곳 전패 지역을 권역별로 보면 예상대로 영남권 비중이 높다. 대구·경북 31개 기초단체 중 31개 모두, 21세기 들어 민주당 당선자가 없었다. 부산·울산·경남 39개 기초단체 중에서도 36개가 그랬다. 영남권을 합쳐 67개다. 하지만 영남권 외에도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17곳, 충청권에서 12곳, 강원도에서 13곳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민주당 전패 기초단체는 호남을 뺀 전국에 깔려 있었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은 분명하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드러나는 인상보다도 한층 더, 민주당은 지역에 내린 뿌리가 취약한 정당이었다.

세가 약한 지역에서 정당은 기초단체장 당선자는커녕 후보를 만들기도 어렵다. 민주당이 네 번 모두 후보조차 못 낸 기초단체가 23곳에 이른다. 국회의원 후보는 중앙정치의 명사나 비례대표 의원을 지역으로 보내는 임시변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초단체장 후보는 이것도 어렵다. 중앙정치 명사가 구청장·군수 하겠다고 지역으로 가지도 않고, 보내봐야 당선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기초단체장 후보와 당선자 숫자는 정당의 기초체력을 보여준다.

정당의 기초체력은 왜 중요할까. 대선과 같은 전국선거에서 민주당은, 대도시에서 벌어들인 표를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까먹는 패턴을 되풀이했다. 가장 극적인 결과는 2012년 대선에서 나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맞붙은 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표를 벌어올 것으로 기대했던 경기도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했다. 문 후보는 서울에서 박 후보보다 20만 표를 더 벌었지만 경기도에서 8만 표를 까먹었다. 2012년의 민주당 후보가 서울·경기에서 표 차이를 벌리는 데 실패하면 한반도 동부의 보수 표밭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대선은 거기서 갈렸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은 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압승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시사IN〉은 민주당의 21세기 전패 지역 109곳에 주목하기로 했다. 이 109곳은 네 차례 선거로 검증된 민주당의 사지(死地)다. 지역의 뿌리가 약하면 선거는 진다. 그리고 선거에서 지면 뿌리가 약해진다. 선거비 보전도 장담하기 어려운 ‘맨땅에 헤딩’을 무한히 감당할 정치인은 흔치 않고, 선거를 몇 번 지다 보면 지역에서 후보로 세울 재목이 씨가 마른다. 민주당이 이런 악순환에 갇혔던 지역이 이 109곳이다.

 

 

 

2018년과 2006년의 진정한 차이

왜 이 109곳에 주목했나. 첫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둔 승리가 어느 정도인지 더 정확히 보여줄 수 있다. 17곳 광역단체 결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충격파의 실제 크기를 잡아낼 수 있다. 둘째, 이 109곳 중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은 앞으로 당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버텨주는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승리는 뿌리를 만들고, 뿌리가 다시 승리를 만든다. 보수 정당이 전성기 시절 보여주었던 그 선순환이다. 민주당은 사지 109곳에서 거둔 승리의 크기만큼 20년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투표 이틀 전에 만난 한 여권 전략통은, 전패 지역 109곳 리스트를 보고 2018년 지방선거의 결과를 예측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 분위기면 30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는 곧 주저하며 덧붙였다. “다들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지역이라 원래는 몇 개만 넘어와도 큰 사건이다. 결과가 30승을 밑돈다고 실패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타당한 얘기였다. 사지 109곳의 스코어는 중립지대 스코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너무 큰 숫자를 예상할 이유는 없었다.

“53개 맞아? 잘못 센 거 아니고?”

그래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개표 결과, 민주당은 109곳 중 53곳을 이겼다. 네 차례 합쳐 440번 선거(통합창원시 이전 마산·진해 선거 4회 포함) 동안 단 1승도 못한 109곳에, 갑자기 53개 깃발이 주르륵 꽂혔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을 제쳤다. 매번 이 109곳을 휩쓸다시피 했던 자유한국당(4년 전인 2014년에는 109곳 중 96곳을 이겼다)은 이번에 48곳만 건졌다. 나머지 8곳은 무소속 후보가 이겼다.

 

[그림3] 109곳 민주당 전패 지역의 결과 변천사

 

 


위의 〈그림 3〉은 109곳 민주당 전패 지역의 결과 변천사다. 앞의 〈그림 1〉과 반대로, 여기서는 전패 지역이 색으로 표시된다. 그림 왼쪽의 지도 네 개는 2002년, 2006년, 2010년, 2014년 지방선거 결과다. 민주당 전패 지역 109곳은 주로 자유한국당(붉은색)이 휩쓴 가운데, 충청권에서는 충청 지역당들(주황색)이 꾸준히 성과를 냈다. 곳곳에 무소속(회색) 승리 지역도 보인다. 전패 지역 정보가 두드러지도록 나머지 117곳 결과는 덜어냈다. 지도에서 색 없이 빈 곳은, 민주당이 한 번 이상 승리한 적이 있는 117곳이다. 〈그림 2〉의 왼쪽 지도 네 개는, 민주당이 특히 한반도 동부에서 얼마나 기반이 취약했는지를 다시 보여준다.

그래서 위의 〈그림 2〉 지도는 진정으로 거대한 변화다. 지도가 표기하는 109곳 중 53곳에서 파란색이 처음 등장했다. 이 지도의 파란색은 21세기 들어 민주당이 처음 이긴 지역을 나타낸다. 2018년 지방선거가 보여준 진짜 변화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포착된다.

이 그림마저도 실제 결과를 과소평가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대도시권인 부산과 울산의 변화가 특히 극적이었다. 광역시 기초단체인 자치구는 일반적으로 광역도의 기초단체인 시·군보다 면적이 작다. 그래서 전국 지도에서는 변화의 크기가 실제보다 눈에 덜 띈다. 울산은 5곳 기초단체 모두가 전패 지역이었으나, 이번에는 민주당이 모두 이겼다. 부산은 16곳 기초단체 모두가 전패 지역이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13곳을 이겼다. 주요 대도시권은 전국지도에서 별도 지도로 뽑아내서 표기했다.

이번 지방선거와 나란히 비교되는 선거가 2006년 지방선거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우세 지역인 한반도 동부를 간단히 접수하고 수도권 등 경합 지역을 싹쓸이하여, 기초단체장 155곳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뒀다. 전설적인 기록인 서울 구청장 ‘25대 0’도 이때 나왔다. 지방선거의 역사적 압승을 꼽을 때면 2006년과 2018년은 승자만 바뀐 쌍둥이 선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 2, 3〉은 2018년과 2006년의 진정한 차이를 드러내준다. 2006년 한나라당의 승리는 사지(死地)를 뚫고 건져낸 것은 아니었다. 2006년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호남에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굳이 만들 이유를 느끼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한나라당의 풀뿌리 기반이 원래 더 넓었고, 경합 지역에서 여당(당시 열린우리당) 심판 바람이 그만큼 거셌다.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기초단체장 151곳을 이겼다. 숫자만 보면 2006년 한나라당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림 2〉 지도에서 보듯, 이 151곳에는 21세기 전패 지역 53곳 돌파가 포함되어 있다. 2006년 한나라당은 ‘가능한 승리를 극대화’했다. 2018년 민주당은 ‘불가능했던 승리를 추가’했다. 이 차이는 간단하지 않다.

“지금이 결정적 순간일지 모른다. 다음 총선, 대선까지 유권자 지형이 ‘재정렬’하는 과정일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던지는 진짜 메시지가 이제 드러난다. 유권자 지형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방선거 1개월 전인 5월11일 〈시사IN〉과 한 인터뷰에서 재정렬의 가능성을 말했다. 재정렬은 정당 지지 기반이 구조적으로 재편성되는 사건을 일컫는 정치학 용어다. 예를 들면 영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 기반으로 넘어가거나 30대 대졸자 블록이 자유한국당 표밭이 되는 등 구조적 변화가 오래 지속되었을 때 이 용어를 쓴다. 이제 우리는 〈그림 2〉 지도를 압축하는 한 단어를 갖게 되었다.

 

 

 

 

ⓒ사진공동취재단2017년 5월9일 밤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지방선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재정렬은 오랜 시간 유권자 지형 변화를 관찰한 후에야 쓸 수 있는 용어다. 지금 단계에서는 재정렬의 징후가 있다는 표현까지만 가능하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정치 지형을 구성할 실제 조건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그런데 정당체제가 그런 현실 변화에 대응하면서 재편성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건 자유한국당이 바뀐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와 밀접하게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보수 정당의 대응에 따라 정당체제가 어떻게 재편될지(혹은 재편되지 않을지)가 결정될 것이고, 그에 따라 재정렬의 양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유권자 지형은 분명 크게 흔들렸다. 이것이 원상회복될지 재정렬로까지 나아갈지는 미래에 결정될 문제다. 다만 재정렬 가능성을 높이 보는 연구자들이 적지는 않다.

“2016년 총선부터 보수 우위에 균열”

심대한 지형변화를 만든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2016년 가을의 촛불집회일까. 서울대 박원호 교수(정치학)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일련의 과정이 재정렬이 맞다고 확인된다면, 내 생각에 ‘정초선거’의 유력한 후보는 2016년 총선이다. 이 총선에서 보수당 지지 블록이 심대하게 흔들렸다.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상당한 숫자가 당시 국민의당으로 빠져나갔다. 이때부터 보수 정당 우위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정초선거는 정치 지형의 심대한 구조변동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선거를 말한다. 2016년 총선에서 180석까지 노린다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122석으로 제1당까지 놓치는 참패를 당했다. 이 선거가 정초선거 후보라는 것은 이때 재정렬의 징후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의미다.
 

ⓒ연합뉴스보수 정당의 지반이 침식되는 상황은 박근혜 전 대통령(위) 국정 농단 사태 이전부터 감지되었다.

2016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가 권위주의로 퇴행하는 흐름에 결정적인 제동을 건 선거였다. 지역으로는 영남 보수 동맹이 분열하면서 부산·울산·경남이 보수 텃밭에서 격전지로 바뀌었다. 세대로는 50대가 5060 보수 동맹에서 이탈해 새누리당 지지세가 묽어졌다. 심지어 ‘강남 3구’로 대표되는 자산 소유 보수표의 이탈도 확인됐다. 이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로 권력 누수가 발생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보수 정당의 지반이 침식되는 현상은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 이전부터 뚜렷이 감지되고 있었다. 여기에 두 가지 거대한 사건이 겹쳐진다. 첫째는 박근혜 국정 농단, 그에 맞선 2016년 촛불집회, 박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 대격변이다. 이 과정은 자유한국당을 ‘헌정체제를 수호할 의지가 없는 세력’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반도 냉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 시도다. 냉전체제는 한국 보수 정당이 국내 정치에 동원하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제 그 필승 카드마저 불확실해졌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 초기 국면에서 북한 핵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다가, 본격 캠페인이 시작할 때부터 메시지를 ‘경제 실정 심판’으로 급히 틀었다. 보수 정당이 북한 문제로는 표가 안 된다고 보고 궤도를 수정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등장했다. 2018년 지방선거가 역사적인 선거로 기록될 또 다른 이유다.

2016년 총선에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변화의 흐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냉전체제 해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 겹쳤다. 이런 특별한 시기에 2018년 지방선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선거는 단순히 특정 정당의 압승을 넘어서는, 유권자 지형의 구조 변동 징후를 드러내는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기자명 천관율·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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