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꿈’이 만났다.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두 지도자가 만나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1989년 미·소 정상이 만난 지중해의 몰타 섬이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장소라면, 2018년 북·미 정상이 만난 싱가포르 센토사 섬은 한반도 냉전 해체의 장소가 되었다.

ⓒAFP PHOTO6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으로 대를 이어 내려온 북한의 꿈은 국제사회에 평화롭게 부상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꿈을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하고자 했다. 2001년 1월 상하이 푸둥 지역을 방문한 그는 황푸강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상해가 천지개벽을 했다.” 그 상하이의 번영과 발전을 신의주로 옮겨와 북한의 천지개벽을 이루는 게 바로 김정일 시대 북한의 꿈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상케 하는 행보를 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싱가포르가 듣던 바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마다 특색이 있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경험들과 지식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꿈이 상하이에서 시작됐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꿈은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셈이다. ‘싱가포르의 경험과 지식을 배우려고 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012년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싱가포르 모델을 집중 연구해왔다. 베트남이 사회주의로부터 체제 전환 과정의 모델이라면, 김정은 세대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모델은 바로 싱가포르다.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세계경제와 연결된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장경제 체제, 바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꿈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북한의 꿈은 순탄치 않았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시장경제를 시험 도입하기 위한 신의주경제특구 지정(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9월) 등으로 본격화된 김정일 시대의 야심적인 평화 부상 시도는 이후 중국과 일본, 미국의 방해로 좌절되었다. 여기에 한국의 이명박 정권까지 가세하며 북한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것은 김정은 시대로 이어지면서 북한으로서는 핵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남겼다. ‘가난한 핵보유국’으로 남을 것인가, ‘핵이 없는 평화 번영 국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를 가늠할 장면이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목격됐다. 김정은 위원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악수하는 장면이다.

존 볼턴 보좌관이 누구인가? 그는 끊임없이 북한의 의도를 의심해온 장본인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29일 화성 15호 미사일을 발사하며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 존 볼턴 보좌관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도 미사일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라며 의심했다.

볼턴 보좌관의 의심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과 로켓 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 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공화국 창건 70주년(올해 9월9일)’을 특별히 강조하며 ‘남조선의 겨울올림픽’과 북의 ‘공화국 창건 70돌’ 기간에 ‘북·남 사이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자’라고 제안했다. 공화국 창건 70돌을 축하하는 축포이자 ‘핵·미사일 무력의 완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평화가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긴장 완화와 평화가 지속되는 기간에 핵·미사일의 양산 및 실전 배치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으로 비칠 수 있다.

다시 주목받는 미국의 ‘북핵 정책 3단계’

ⓒ조선중앙통신김정은 국무위원장(맨 오른쪽)이 6월11일 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본토 타격을 위해서는 화성 14호와 15호 엔진으로는 역부족이다. 기존 미사일 엔진인 백두산 엔진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6월12일 북·미 확대 정상회담 마지막 즈음에 김정은 위원장은 ‘폭탄선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5월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를 능가하는 비핵화 조치다. 이는 북한의 불완전한 ICBM급 미사일을 몇 개 내놓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행동이다. 볼턴 보좌관 같은 회의론자들에게 김 위원장이 직접 핵보유국으로 돌아갈 길을 차단하고, ‘평화로운 부상’이라는 꿈을 향해 직진하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준 셈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꿈은 평화로운 부상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봉쇄에 맞서 핵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핵을 저지하는 것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미국 행정부의 꿈이 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북핵 정책은 ‘3단계’를 거쳤다. 1단계가 1991년 12월31일 남과 북이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남북한이 체결했는데 왜 미국 북핵 정책 1단계인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물밑에서 이뤄진 북·미 접촉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5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NPT에 가입하면 의무적으로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하고 사찰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러던 중 1989년 9월 프랑스 상업위성 스폿 2호(Spot-2)가 영변 핵시설을 촬영했다.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북·미 간 물밑 접촉 과정에서 북한은 남한까지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했다. 남한에 배치된 주한 미군의 전술핵 철거와 한·미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의 요구대로 1991년 가을 미국의 전술핵이 철거되고,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면서 비핵화 공동선언이 체결되었다.

미국의 북핵 정책 2단계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다. 6·15 남북 정상회담은 1999년 10월 발표된 페리 보고서와 직결돼 있다. 대북 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위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주도한 페리 보고서는 단기-중기-장기 대책으로 나뉘어 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키고 제재를 완화해주며, 그다음 단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완전히 동결시키고, 장기적으로는 한·일 양국과 협조해 한반도 냉전 구조를 종결시킨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위한 클린턴 대통령 방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은 바로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수교로 가기 위한 중간 기점이자 디딤돌이었던 셈이다.

 

3단계는 2001년 부시 정부 등장 이후 미국이 북·미 양자 해법을 포기하고, 다자 해법으로 전환한 시기다. 즉 2003년부터 2008년 12월까지 진행된 6자회담의 시기다. 6자회담이 마지막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단된 이래 10년의 공백기를 거쳤다. 이 기간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그렇다면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떤 길을 걸어왔나? 앞서 말한 미국 역대 정부의 3단계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순서가 바뀌었다. 먼저 2단계에서 1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2단계인 2000년 6·15 정상회담에 해당하는 게 바로 4·27 남북 정상회담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 직전 한·미는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호흡을 맞추며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전반을 조율했다. 이번 4·27 남북 정상회담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남·북·미 정보기관이 호흡을 맞춘 결과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남북은 사실상 단절됐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관계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케네스 배 등 억류 미국인 2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당시 클래퍼 국장은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국가정보국과 정찰국의 라인이 이어져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이 이 라인에 합류했고, 남북 정상회담 후 북·미 정상회담의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EPA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확대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그럼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공동성명에 담긴 결과만으로 보자면 이번 회담은 북핵 해법 1단계로의 복귀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해 전술핵을 철거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한 것과 이번 회담에서 드러난 결과가 일치한다. 먼저 미국이 회담 전날까지 관철하려 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공동성명에 포함하지 못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사용된 용어다. ‘완전한’이라는 말을 빼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용어인 ‘한반도 비핵화’로 귀결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취할 조치 역시 똑같다는 의미다. 지금은 1990년대와 달리 한반도에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대신 미국은 핵 전략자산이 투입되는 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선물을 북한에 주었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한 것처럼 대화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것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2단계 해법에서 시작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라는 1단계 해법에 도달한 것이 이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퇴행을 의미할까?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벌써부터 미국의 주류 언론들과 과거 정부의 관료들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54~55쪽 기사 참조).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지난 20년간 불가능한 목표를 내세워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아왔던 장본인들이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겠다’며 ‘얻을 수 있는 것조차 포기’함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수준을 끌어올리게 한 ‘일등 공신’들이다. 미국에서조차 정상회담 전부터 관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료들은 CVID라는 성을 쌓아놓고 그것이 마치 성전이나 되는 양 포장해왔다. CVID의 I(irreversible), 즉 ‘불가역’이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쓰던 말이다. 독일의 재무장을 ‘불가역적’으로 막기 위해 석탄·철강 군수공업지대를 철저히 해체하고 국제적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CVID에 따르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허용하고 있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조차 불가능해진다. 북한이 ‘우리가 패전국이냐’며 끝까지 거부하는 이유다.

북한의 거부에 기존 관료들이라면 돌아섰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하고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쌓아가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보여줬다. CVID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 북한의 체면과 명분을 살려주는 대신 실질적으로 ‘불가역’에 해당하는 양보를 받아냈다. 앞서 언급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조치가 그것이다. 엔진 시험장 폐쇄는 실질적인 불가역 조치다.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약속을 받아낸 미국은 더 이상 북한 미사일의 능력 향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확대 정상회담 이후 다소 상기한 표정의 존 볼턴 보좌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붙잡고 뭔가 확인하는 장면을 보면, 이번 회담이 본인의 의구심 해소와 직결돼 있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은 안전만 챙긴 것이 아니다.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해외에 산재한 전몰장병 유해(MIA) 송환이라는 뜻밖의 선물까지 챙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미군 유해 약 8200 구 중 7700여 구가 북한에 남아 있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가족들의 요구가 빗발쳤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해 송환은 미국 정치인에게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다. 전날까지 CVID에 목을 매던 폼페이오 장관마저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로 유해 송환을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

ⓒ청와대 제공6월14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 나온 유해 송환이 제1항에 제시된 새로운 북·미 관계를 추동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공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놓인 카펠라 호텔 회담장에서 말한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대표적인 게 한국전쟁이라면, 유해 송환은 그 유산을 청산하는 조치 중 하나다. 그다음이 서로를 ‘악마’로 규정하며 “눈과 귀를 가리고 잘못된 관행과 편견”을 극복하는 길이다. 이를 통해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면 비핵화는 그 결과로서 따라온다는 것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 가능할까.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책임져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누구보다 강하게 CVID를 주장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의회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것 같지만 외국과의 관계에서는 의회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판문점 실무대화가 난항을 빚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판문점 실무대화 때 북한의 비핵화 선행 조치에 대해 미국은 뚜렷한 보상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미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 억류 미국인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했는데 미국은 아무런 보상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 처지에서 미국이 CVID만 요구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이 솔직하게 토로했다. CVID가 돼야 의회를 설득해 대북 지원금을 쓸 수 있고, 북·미 합의를 조약으로 만들어 북한이 원하는 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안전보장)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 동의 없이는 수교도, 불가침조약도, 평화협정도, 경제제재 해제도 불가능하다. 종전선언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도 그나마 의회와 무관하게 대통령 재량으로 해줄 수 있기 때문인데, 북한 처지에서는 ‘법적 보증’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해 미흡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앞으로 고위급 회담을 통해 북한의 선행 조치, 즉 IAEA 사찰단의 영변 핵시설 단지 복귀, 핵과 미사일 일부 국외 조기 반출과 신고 목록  및 비핵화 시간표 제출, 그리고 검증의 이행 등을 통해 의회를 설득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서나 트럼프 행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가 모두 나서서 북한의 비핵화를 돕고 평화로운 부상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것이 바로 미국 북핵 정책 3단계에 해당하는 다자 해법 단계로의 진입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 5월31일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동방경제포럼에 초청한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했다. 동방경제포럼은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데, 김 위원장을 초대한 것은 다자 해법을 위한 포석이다. 이 포럼에 중국 시진핑 주석도 참석해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협상의 마무리를 도모할 것이다.

물론 다자 해법이 역내 국가들의 영향력 확대 경쟁의 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제사회가 북한 비핵화와 국제 무대 등장을 돕는다는 순수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 6자회담 국가 외에도 유럽연합과 아세안 등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국제적 포럼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국제 포럼을 통해 비핵화 이후 북한 경제 재건의 비전을 공유하며 경제 지원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가 다음 단계에서 지향해야 할 목표라 할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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