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수도 사나에 사는 움무 바시르 씨(51)는 원래 3남 2녀를 두었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자녀는 셋째 아들 한 명뿐이다. 그 아들도 멀리 떠나보냈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이 그녀의 삶을 바꾸었다. 가장 먼저 서른 살 큰아들이 실종됐다. 이웃들은 후티 반군이 그녀의 큰아들을 강제로 끌고 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내전이 계속되면서 병사가 부족하자 후티 반군은 남성들을 강제징집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의 생사를 알고 싶어 정부기관을 찾아다녔지만 공무원들이 대부분 피란을 가서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의 폭격으로 그녀는 1년 전 남편과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 집 앞마당이 폭격당했다. 폭격 당시 집에 없었던 그녀와 스물한 살 셋째 아들만 무사했다.
아랍 동맹군의 폭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셋째 아들은 살아남았지만 언제든 반군에 강제징집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나 남은 아들을 지키는 방법은 예멘 탈출뿐이었다. 그녀는 금붙이를 팔고 집안의 모든 현금을 모아 아들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는 지난 1월 아들을 이슬람 형제국인 말레이시아로 보냈다. 말레이시아에 몰려든 예멘 난민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셋째 아들과 거의 비슷하다.
이처럼 움무 바시르 씨의 삶을 통째로 바꾼 예멘 내전은 2014년 9월 본격화됐다. 당시 예멘 북부를 장악한 시아파 후티 반군은 수니파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정부를 공격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했다. 2015년 3월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 동맹군이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유엔에 따르면 지금까지 내전으로 민간인 약 1만명이 사망했다. 피란민이 300만명 이상 발생했다.
예멘 내전은 악화 일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아랍 동맹군은 6월20일(현지 시각)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남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아랍 동맹군은 후티 반군이 이곳을 통해 무기를 들여온다고 보았다. 내전 이후 최대 규모로 치러진 전투 때문에 정부군이나 반군 모두 피해가 컸다. 민간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예멘에 들어오는 생활필수품, 의약품, 구호품의 약 70%가 호데이다를 거친다. 호데이다는 예멘으로 유입되는 구호품의 주요 보급로다. 예멘 국민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아랍 동맹군은 후티 반군의 작전지를 공격했지만, 이 전투로 예멘 국민들의 생필품 보급로마저 끊긴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아랍 동맹군 작전 개시 직전에 유엔은 호데이다의 통제권을 넘겨받기 위해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중재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고 보급로가 끊기면서 예멘 국민들은 최악의 위기에 놓였다.
반군 돕는 이란 때문에 미국·영국 ‘소극적’
유엔에 따르면 현재 예멘에서는 2200만명이 국제 구호단체의 구호품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중 840만여 명은 아사 위기에 놓였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위험하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내전이 길어지면서 예멘에서는 10분에 한 명꼴로 어린이가 굶어 죽고 있다. 유니세프 예멘 지부에 따르면 예멘 어린이 중 22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긴급 구호를 해야 하며, 170만명이 영양실조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멘에서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어린이들이 콜레라로 숨지기도 했다(〈시사IN〉 제515호 ‘내전의 포화 뒤에 콜레라가 왔다’ 기사 참조). 유니세프도 호데이다를 통해 긴급 구호품을 보내고 있었다. 유니세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데이다를 공격하는 바람에 예멘 어린이 30만명이 위험에 처했고, 추가로 수백만명에 대한 원조가 차단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아랍 동맹군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미국과 영국이다. 미국과 영국은 아랍 동맹군의 호데이다 공격을 막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이란 핵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후티 반군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 수니파 위주의 아랍 동맹군이 미국과 영국의 정적인 이란과 사실상 전쟁을 벌이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국제전으로 번졌다. 여기에 국제적 이슈가 더해지면서 더 복잡해졌다. 후티 반군도 예멘 국민들의 안전보다는 남자들을 강제징집하는 등 내전 승리에만 집착한다.
내전으로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예멘에 긴급 구호품보다 총기가 범람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국제 무기 조사기관인 스몰암스 서베이가 전 세계 2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예멘 인구 100명당 민간인 보유 총기가 52.8정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1위는 미국).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예멘 전쟁 종식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움무 바시르들’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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