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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민주당 깃발 꽂은 ‘문재인 친구’

2018년 07월 02일(월) 제563호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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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자는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과 함께 ‘영남 인권변호사 3인방’으로 통했다. 국회의원·시장 선거에서 여덟 번 낙선했고 아홉 번째 도전에서 승리했다.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자의 말씨는 묘했다. 어휘는 경상도 쪽이었지만 억양에는 전라도 방언이 섞여 있었다. 그와 함께 ‘영남 인권변호사 3인방’으로 불리던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과는 판이했다. 널리 알려진 ‘8전9기’나 ‘울산 최초의 민주당 민선 시장’ 타이틀 뒤에 ‘정통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는 첫 울산시장’도 붙여봄 직하다.

송 당선자가 울산에서 선택받는 데에는 26년이 걸렸다. 국회의원 선거 여섯 번, 시장 선거 두 번을 내리 졌다. 진보 단일 후보나 무소속으로 나온 적도 있으니 민주당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부산 출신으로 전라도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를 이방인 취급하는 유권자가 많았다.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고 정치 인생 전부를 보낸 곳인데도 그랬다. “암만 해도 고향 까마귀가 안 낫겠느냐”라고 묻는 상대 후보들에게 늘 승리가 돌아갔다. 무엇이 그를 ‘9수’의 길로 이끌었을까? 6월19일 예순아홉 살 송철호 당선자를 만났다.



ⓒ송철호 제공
송철호 당선자는 “지역 갈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선거 이튿날(6월14일) 첫 일정이 경남 김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였다.


당선 뒤 봉하마을부터 찾았던 것은 권양숙 여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6·13 지방선거 출마 선언 뒤 만난 자리에서 권 여사가 “당선되고 꼭 한번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오라”고 권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당선된 직후 노 전 대통령이 많이 생각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도 소망하던 지역 갈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이 순간을 함께했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는 마음에 먹먹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별도의 축전을 받았나?


언론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참 곤란하다. 답변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40년을 동고동락했던 사이라 별도의 만남이나 전화가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아마도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라 본다.

울산에서 정치를 시작한 계기는?

변호사 시절 주 무대가 울산이었다. 일종의 역할 분담이 있었다. 노무현·문재인 변호사는 부산, 나는 울산에서 시위 노동자와 학생을 변론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당선됐다. ‘초선 의원 노무현’은 문재인 변호사와 내게 “혼자서는 외롭다. 선거에 출마해 같이 활동하자”라고 설득했다. 이 말을 듣고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내게 “형은 그래도 나보다 낫다. 나는 죽어도 정치 체질이 아니다. 노 변호사님 봐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1992년 울산 중구 총선에 출마하게 됐다. 울산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이었다. 지역구를 선택하는 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 조언이 영향을 줬다. “기왕 영남권에서 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한다면 가장 센 상대와 붙어야 명분이 서지 않겠나”라고 했다.

울산에서만 여덟 차례 도전하게 될 줄 알았나? ‘될 때까지 한다’는 결심이었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오랫동안 선거에 나올 생각을 누가 처음부터 하겠는가? 그것도 여덟 번이나 떨어지면서도 계속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그저 정서상, 정치 철학상 처음 출마한 곳을 지키게 된 것이다. ‘처음의 뜻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새로움’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른 곳에 가면 당선될 수 있는 것을 알았고, 기회도 있었지만 체질이 그렇게는 못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까지 우리 모두 그렇다. 첫 출마한 곳이 울산이 아니었다면? 그 뒤 인생도 완전히 달랐을지 모른다.

ⓒ연합뉴스
2014년 7·30 울산 남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송철호 당시 야권 단일후보(무소속·왼쪽).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함께 지지를 호소했다(오른쪽).
‘첫 출마 지역’ 외에 다른 이유는 없나?


내가 이 지역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선대는 호남 쪽이다. 호남 할머니 댁에 이사 가서는 부산 출신이라고, 부산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전라도라고 놀림받았다. 동서를 넘나드는 개인사적 고통이었다. 단순히 내 개인사만은 아니다. 울산은 토박이보다 외지 출신이 더 많은 도시지만 모든 게 지역 출신과 자유한국당 계열 특정 정당을 중심으로 굴러갔다. 나처럼 복잡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한번 뜻을 세워서, 비록 지더라도 끝까지 이를 관철해야만 지역주의가 극복되고 동서가 화합한다고 여겼다.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남북 평화통일을 완수하는 데에도 내부 갈등 해소가 선결 조건이다. 내 도전이 그 중요한 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곳에서만 출마를 결심한 이유였다.

40%대 득표하며 석패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지역주의가 당락을 갈랐다고 보나?


첫 선거는 분명 어려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당은 당시 영남에서 배척되다시피 했고 상대 후보들도 거물이었다. 정치 입문생으로서 낙선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본다. 이후에는 당선 가능한 경우가 몇 번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늘 지역주의가 발목을 잡았다. 상대 후보 측에서 ‘호남 시장 웬 말이냐!’라는 식의 호외를 만들어 뿌려대기도 했다. 시민들도 이런 형편을 다 알지만 그걸 전제로 하고, 바탕에 깔고 승리를 한 번은 해야 한다고들 말했다. 여덟 번이나 떨어질 여건이 종합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었던 거다(웃음).

이번 6·13 지방선거는 어떻게 달랐나?


배경은 유권자들의 자기반성적 의식 변화였다. 자유한국당이 20년 이상 지방권력을 독점하며 무엇이 좋아졌는지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으로 숨 가쁘게 달렸고, 지방선거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문재인 친구 송철호’도 재평가받는 계기였다. 무관의 시민운동가인 내가 울산의 광역시 승격, KTX 울산역 유치, 울산과학기술원 설립에 일정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 작용하면서 유권자들의 시선도 180° 달라졌다. 유세 현장에서 손을 잡으며 “이번에는 꼭 돼야 한데이”라고 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울산의 당면 과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울산은 현재 사상 최악의 불황이다. 3대 주력산업(자동차·조선·석유화학)이 주춤거리면서 일자리가 줄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복합 불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자립도 1위’는 결코 자랑이 아니다. 울산에 필요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하려면 광역시에 걸맞은 규모의 정부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우선 문재인 정부와 모든 부문에서 협치를 꾀하겠다. 특히 남북 경협과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정부와 교감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분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노동의 가치 존중’과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고는 경제 도약이 불가능하다. ‘노·사·민·정 화백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노사정협의회처럼 내용 없는 모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사 화합을 이끌어낼 조직을 만들어 지혜를 구하겠다.

시장 임기를 마친 뒤 계획이 있나?

나는 울산 사람이다. 시장 이후에도 울산의 평범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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