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작가(본명 구경선·35)는 두 살 때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동물 중 토끼가 가장 듣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베니’라는 토끼 캐릭터를 만들었다. 대신 많이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가 준비한 파워포인트를 넘기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600여 장의 슬라이드에는 준비한 말이 한두 마디씩 쪼개 적혀 있었다. 발음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화면의 글과 함께 들으니 금세 이해가 되었다.

구작가는 살면서 귀가 안 들리니까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숱한 좌절을 겪으며 남들이 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뒤 꿈이 많아졌다. ‘피터 래빗’처럼 베니를 100년 넘게 사랑받는 캐릭터로 남기고 싶다는 그가 베스트셀러를 내서 600억원을 벌고 싶다는 꿈을 밝히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으로 자존감을 세워주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시각장애가 겹쳐 시야가 8.8㎝밖에 되지 않는 구작가가 한 시간 내내 청중과 시선을 맞추고 손 제스처를 이어갔다.

고등학생 160여 명이 눈과 귀로 그의 이야기를 좇았다. 6월11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미국 대학 한인학생회와 함께하는 2018 〈시사IN〉 청소년 리더십 포럼(이하 리더십 포럼)’ 현장이다. 2010년에 시작해 올해로 9회를 맞은 리더십 포럼은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인 강사들이 청소년들과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이날을 시작으로 6월12일(충북 청주), 6월15일(전북 전주) 행사까지 이어졌다.

ⓒ시사IN 이명익6월15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2018 〈시사IN〉 청소년 리더십 포럼 현장.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인 강사들이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별 게스트 구작가의 강연에 이어 차형석 기자의 사회로 강사 6명이 ‘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각자 내놓은 6개 키워드 중, 먼저 듣고 싶은 내용을 학생들이 직접 골랐다. ‘인생샷, 밑바닥, 내 나이 열다섯, 폭망, 0.45°, BTS’ 중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밑바닥’이다. 주인공은 최영원씨(UC 버클리 통계학 학사과정·28)였다. 그는 “제 인생 스토리를 통해 ‘저 사람도 저렇게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용기를 얻어 가시길 바란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이성교제, 축구, 컴퓨터 게임 이 세 가지에 매진했다. 재수는 예정된 순서였다. 3수 하기 싫어 대학에 들어갔다. 최씨의 수능 성적은 4~5등급이었지만 친구들은 7~8등급이었고 ‘나는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휴학하고 3수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행복한 순간엔 멈춰 서도 괜찮아”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던 그는 월스트리트에 가서 금융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에 갔다. 언어가 서툴러 처음 산 침대 프레임이 반쪽만 배달됐는데도 항의도 못하고 그냥 버렸다.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지우고 현지 라디오 채널 하나를 깔았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교수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교과서를 팠다. 점차 공부의 노하우가 생겼고 UC 버클리에 편입할 수 있었다. 그 뒤에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고 한인 봉사 동아리의 회장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좋아하는 오은실씨(하버드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33)는 고등학교 한자 수업 시간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한자 이름을 보던 교사가 아들 낳으려고 만든 이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알아보니 남동생을 보기 위해 할아버지가 돈을 주고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은 사회학자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화가 날 만한 상황이 많았다.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저지에 머물렀을 때도 친구에게 선물한 필통이 통째로 없어졌다. 백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걸 보고 따졌는데 교장은 그 애가 훔친 게 맞느냐고, 흑인 아이가 훔친 게 아니냐고 물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두발 규제가 부당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분노하게 되는지, 그에 맞는 언어를 찾고 싶었다. 택한 게 사회학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우리의 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했다. 여자라, 동성애자라, ‘흙수저’라 안 된다는 생각이 자신의 능력에 의심을 갖게 하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된다는 것. 편견과 차별에 분노하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오씨는 방탄소년단의 ‘낙원’ 가사 중 공감할 만한 부분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멈춰 서도 괜찮아.”

열다섯 살에 혼자 미국행을 택했던 탁아름씨(컬럼비아 대학 간호학 박사과정· 32)는 가정의학 전문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전북 익산 출신인 그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유학길에 올랐다. 옥탑방과 반지하를 전전했고 버려진 박스를 책상 삼아 공부했다. 현지 병원에 입원했던 걸 계기로 미국 의료 시스템의 장점을 한국에 전하고 싶어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겨우 영어에 적응했지만 대학에서 쓰는 영어는 또 달랐다. ABC부터 다시 배우게 해달라는 그에게 교수가 한마디 했다.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그의 4년을 바꿔놓은 말이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소아암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살면서 받아보지 못한 칭찬을 들었다.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뒤 또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자격증 따는 과정과 달리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식이라 낯설었다. 1등을 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즐기기로 했다. 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사람들과 교류를 늘리자 고통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꿈은 크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무언가 되어야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영어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배준환씨(프린스턴 대학 전자공학·뇌과학 박사과정·25)는 자신의 인생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그의 키워드는 ‘0.45°’였다. 크게 좌절했거나 성공한 일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확대해보면 굴곡이 많았다. 부모를 따라 초등학교 때 미국에 갔다가 중학생 때 돌아왔는데 기본적인 교과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자존심이 무너지니 부끄러움이 없어졌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서도 잘하는 친구를 붙들고 배웠다.

그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활을 쏠 때 0.45°만 벗어나도 과녁을 빗나간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매사 신중하게 노력하라는 의미인데 그는 다르게 해석한다. 목표한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그곳에 새로운 과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과녁 역시 처음에는 뇌과학이 아니었지만 목표에 실패함으로써 새 과녁을 찾을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시사IN 조남진6월11일 서울에서 열린 〈시사IN〉 청소년 리더십 포럼에 참석한 학생들.
김성일씨(MIT 컴퓨터공학·통계유전학 박사과정·23)는 ‘인생샷’ 찍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해 학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생 때 하루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A학점을 받으면서도 1년에 2000시간 일했다. 집에선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심리상담사가 좋아하는 걸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카메라를 사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후 1년에 3개월가량은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하며 사람들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그는 사진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포토 테라피스트’이기도 하다. “내 사진에 나는 나오지 않지만 내가 주인공이다. 사진 뒤에 이름이 희미하게 적혀 있더라도 만족스럽다. 꿈도 마찬가지다.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여러분이 주인공이라는 걸 기억하시라.” 인생샷은 결국 가장 ‘나다운’ 사진이었다.

1년 전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하버드 대학 공공예술 영역 석사과정에 진학한 이지성씨(28)의 키워드는 ‘폭망’이었다. 어릴 때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며 화려한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첫사랑을 따라 명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재수 시절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단시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연필을 손에 감고 잠들기도 했으나 결국 실기가 아닌 수능 성적으로 실내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2000만원 연봉’의 현실을 보며 욕망을 바로잡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10년 전이 떠올랐다. 기름이 유출된 태안 앞바다를 찾았을 때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키친타월로 기름을 닦아내고 있었다. 선한 의지로 연결된 세상이 보였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장학금 제도가 아니었다면 형편상 유학은 불가능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정답을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교수에게 답이 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애초 답이라는 게 있긴 하냐는 반문과 함께. 그는 우리가 무엇을 질문하고 있고 어떤 답을 찾고 있는지 공부한다.

6명의 강사 모두 실패를 경험했으며 학생들에게도 그 경험을 강조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극복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이후 학생들은 멘토로 삼고 싶은 강사를 직접 선택해 소그룹으로 만났다. 학생들은 멘토들의 전공 분야를 비롯해 유학 준비 과정에 대해 질문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에서부터 성차별적 발언을 들을 때의 대처법 등 각자의 고민에 따라 질문도 다양했다. 참석한 학생들은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소감을 많이 남겼다. 지방에 살아서 해외 유학이 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후기도 눈에 띄었다. 〈시사IN〉 구독자인 아버지의 권유로 제주도에서 올라와 서울 행사에 참가한 김하늘양(19)은 “강사들 모두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대학 입시라는 고비가 남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괜찮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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