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봄, 홍준표 검사(전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그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안기부에 파견근무 중이었다. 기자는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과정에서 경호 등을 담당한 한국계 야쿠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야쿠자들이 겪은 한·일 회담 뒷거래 의혹을 취재해 보도한 뒤였다.

한 일식집에서 마주한 홍 검사는 “정 기자, 김종필씨가 일본에 숨겨놓은 부동산 소재지를 나한테 넘겨주소”라고 요구했다. 그는 “김종필 같은 낡은 구태 정치인을 추방해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정보 요청이 오로지 ‘정의의 발로’임을 강조했다. 기자는 홍 검사가 원하던 일본 내 김종필 재산의 정확한 주소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시사IN 양한모

이듬해 총선에서 홍 검사는 ‘젊고 참신한 건전 보수’를 내세우며 신한국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김종필은 3당 합당 후 민자당에서 동거하다 쫓겨난 뒤 충청도로 내려와 ‘핫바지론’을 설파했다. 그는 간신히 자민련으로 부활했다. 이후 김종필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손잡고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 하지만 2004년 총선 이후 정계를 떠났다.

정치 입문 초기 젊고 참신한 건전 보수를 표방하던 그는 한때 자기가 ‘수구’로 지목한 김종필을 닮아갔다. 김종필은 지난해 5월4일 홍준표 후보의 방문을 받고 문재인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나는 뭘 봐도 문재인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이 얼마 전에 한창 으스대고 있을 때 당선되면 김정은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김정은이가 자기 할아버지인 줄 아냐. 빌어먹을 ××.” 홍준표 후보는 이에 한껏 고무돼 ‘보수 원로’ 김종필이 자신을 적통으로 지지한다며 자랑하고 다녔다.

6월24일 김종필은 생을 마감했다. 빈소를 찾은 홍준표 전 대표는 “큰 어른을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기록은 정명(正名)이 중요하다. 그의 죽음을 ‘3김 시대의 종언’으로 뭉뚱그려 평가하기보다는 ‘수구 세력의 종언’으로 보는 게 맞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게 보수이고, 버릴 것을 버리는 게 진보이고, 버려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수구다.” 언론인 고 정운영의 일갈이 요즘처럼 딱 들어맞는 때도 없는 것 같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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