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이 개정되기 전,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는 날은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앞문도 뒷문도 꼭꼭 닫고 혹여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국어 수업이라고 하면 일단 〈읽기 4-1〉을 펼쳐서, 9일이면 출석번호 9번이 지문을 한 페이지씩 읽고 난 뒤 내용 파악 질문에 답 쓰는 게 당연시되던 제7차 교육과정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다양한 도서를 활용하라고 권하면서도, 교과서의 지문과 문제를 기본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수준과 문항의 완성도는 높았다. 목표가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국어의 다양한 개념과 기능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문학 단원을 지도할 때면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독서 수업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
수업 시간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해당 단원의 목표를 충실히 달성할 수 있는 책을 골라 수업을 재구성하면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양질의 작품으로 독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면 번번이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교수나 전공자들이 만든 교과서를 쓰지 않고 굳이 다른 책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느냐?”라는 딴지 때문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교사의 전문성을 불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교과연구회와 현장 교사들이 꾸준히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수업 사례를 중심으로 힘을 보탰다. 교사는 정식으로 교육학을 배웠으며,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다수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노하우를 갖춘 교육 전문가다. 최근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도 교사의 전문성 존중과 열린 교재관에 근거하고 있다.
문학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반 아이들을 가장 잘 알고 수업 경험이 풍부한 담임교사가 최적의 교재를 선정해 활용할 수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자유로운 독서 단원 도입은 학습 공동체의 풍경을 바꿨다.
“학교에서 똥 싸는 주제로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한 건 처음이에요.” 〈마법사 똥맨〉 토론 과정에서 아이들은 변비로 얼굴이 노랗게 되었던 흑역사, 대변보려고 조퇴한 사연, 똥 참다가 숨 막힐 뻔한 사연을 쏟아내었다. 감정이입하여 책을 따라가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레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고 성격을 분석했다. 교과서 활동이 책 한 권에 녹아 있었다.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이다. 마침 7월부터는 도서구입비를 소득공제까지 해준다. 책 읽기 참 좋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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