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은 1승2패로 막을 내렸다.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잡으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축구 팬을 자처하는 몇몇에게는 그조차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입국장에서 선수단을 향해 날달걀과 쿠션을 던지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조별 예선 기간에는 선수는 물론이고 가족의 SNS까지 악플로 뒤덮였다. 급기야 조현우 선수의 아내는 “아이가 나중에 글자를 알게 되면 상처가 될까 봐” SNS를 중단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독일전을 앞두고 칼럼을 통해 “가족을 괴롭히고 선수의 인격을 짓밟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라고 호소했다.
선수단을 향한 조롱과 모욕을 지켜보며 또 하나의 월드컵, 또 하나의 축구 국가대표팀이 떠올랐다. 2015년 캐나다 여자 월드컵 당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브라질에 0-2로 패했을 때도 어김없이 비난이 쏟아졌다.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라면 선수로서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건 난데없는 ‘화장 논란’이었다. 선크림을 바른 선수들의 하얀 피부를 두고 ‘화장할 시간에 연습이나 해라’ ‘화장 안 한 상대 팀 선수들이 더 예쁘더라’ 같은 외모 품평이 포털사이트 댓글을 뒤덮었다. 긴 머리 선수들이 흔히 하는 ‘당고 머리(묶은 머리를 정수리 위로 둥글게 말아 올린 헤어스타일)’까지 ‘헤딩에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자신들이 바른 것이 선크림이었는지 BB크림이었는지, 다른 나라 선수는 어느 정도까지 화장을 하는지, ‘당고 머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선수들은 날아드는 외모 지적에 구구절절 해명해야 했다.
그동안 겪어온 지독한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낫다며 선수단이 자조 섞인 위안을 삼았을 정도로 한국 여자 축구 현실은 열악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19 캐나다 여자 월드컵을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에이스 지소연 선수(첼시 레이디스)를 배출한 한양여대 축구부는 내년이면 문을 닫는다. 지난해에는 한국여자축구 리그(WK리그) 명문팀 이천대교가 해체해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진학과 취업이 불확실해질수록 축구선수를 꿈꾸는 여학생은 줄어들기 마련이고, 좋은 선수가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희박해진다. 한국 여자 축구는 2010 U-17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첫 FIFA 주관대회 우승 기록을 남겼다. 성인 대표팀 역시 일본·북한·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여자 축구 강국 사이에서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 영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영화 〈당갈〉의 대사를 떠올린다
인도 여성 레슬링 최초로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낸 기타 포갓 선수를 모델로 한 영화 〈당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의 승리는 너만의 것이 아니야. 너는 여자를 하찮게 보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거야.” 어린 시절, 지소연 선수는 같이 뛸 여학생이 부족해서 남학생들과 축구를 하면서 자랐다. 그녀의 플레이에 반해 축구화를 신은 소녀들이 지금 연령별 여자 축구 대표팀을 떠받치고 있다. 이번에도 다시 한번 여자 축구 대표팀이 ‘공 차는 소녀들’뿐 아니라 모든 소녀들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선수들은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외모보다는 진실한 땀방울을 먼저 봐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7월9일부터 WK리그가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전국 8개 구단의 홈 경기장(입장료 무료) 또는 한국여자축구연맹 홈페이지(www.kwff.or.kr)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중계로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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