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7월6~7일)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난기류에 빠진 모양새다. “생산적인 회담을 했다”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평가와 달리 북한은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라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실제 비핵화 시간표를 신속히 마련해 핵 신고, 검증 절차에 착수하자는 미국에 맞서 북한은 ‘단계적·동시 조치’ 원칙을 고수하는 등 북·미 간 견해 차이가 팽팽하다. 미국은 과연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을까?

2004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핵 시설을 방문했던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 대학 교수는 북한 핵·미사일 시설의 민수용(民需用) 전환을 핵심으로 하는 비핵화 프로그램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이 핵 기술을 폭탄 대신 원자력 전기나 의료 등에 활용하도록 만들자는 이야기다. 미사일 기술 역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보다 기상 예측이나 우주 탐사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헤커 박사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의 민수용 전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경우 임기 중 최대 업적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워싱턴 주재 정재민 편집위원이 헤커 박사를 인터뷰했다.

ⓒEPA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뒷줄 왼쪽)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뒷줄 오른쪽)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북핵의 민수용 전환’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나 ‘전면적 비핵화’가 현 상황에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인가?

북한은 아마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활용(발전과 의료) 및 우주개발용 위성 발사 프로그램은 보유하겠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면적 혹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어려운 이유다. 군사용 핵 프로그램의 제거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행하는 데도 수년이 걸린다. (북한이 실제로)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제거했는지에 대한 검증 또한 북한이 협조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10년 로드맵’을 제안했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는 구조적으로 함께 실현되도록 북한과 합의해야 한다. 우선은 북한 핵무기 및 관련 프로그램 동결, 점진적 감축, 궁극적으로 폐기에 이르기까지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민수용으로 전환하자는 내 제안은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미국 측의 추가 조치들(일부 대북 제재 해제, 잠재적 에너지 지원, 정상적 외교관계 수립, 종전선언)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철폐하기 위한 북한의 상당한 조치와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주장한다. 북핵 검증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완전한 검증이 가능할까?

(북·미 양측 사이에) 상호 협력이 불가능하다면, 북한이 실제로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제거했는지 (미국이) 검증할 방법도 없다. 북한이 확보한 핵·미사일 규모와 그 나라의 폐쇄성을 감안할 때 ‘완전한 비핵화’ 역시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북한처럼 미국에) 특히 적대적인 환경에서 사찰관들이 핵무기 몇 개, 플루토늄 몇 ㎏, 은밀한 우라늄 원심분리 시설 한 곳 또는 그 이상을 은폐했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미국 측이) 북한의 모든 핵 시설에 아무런 제한 없이 접근하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다만 양측이 북한의 핵무기 기간시설을 민수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상호 협력할 수 있다면 (검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Rod Searcey1943년 폴란드 태생. 핵물리학자.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 금속공학 박사.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1986~1997년).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공동소장(2007~2012년). 미국 국립엔지니어링학회(NAE) 정회원. 2004년 북한 영변 핵연구단지 최초 방문. 엔리코 페르미 상 수상(2009). 스탠퍼드 대학 경영과학 및 공학부 명예교수 겸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현재).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협력적 전환(cooperative convers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협력적 전환’은 북·미 양측이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이다(헤커 박사의 ‘협력적 전환’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북측 과학자 및 엔지니어들과 협력하면서 핵무기를 제거하는 절차가 핵심이다). 최대 갈등 원인이었던 북한 핵 프로그램을 양측의 신뢰 구축에 필요한 촉매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민수용 핵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북측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가운데 북한 핵 프로그램의 성격과 범위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핵 시설까지 보게 될지도 모른다.

민수용이라 해도 북한에 원자력과 우주개발 능력을 허용한다면, 미국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지 않을까?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방북 과정에서 북측의 비밀 핵 프로그램 가동의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북한이 미국과 체결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당시(2002년 10월) 상황을, 단지 ‘북한이 미국을 속였다’고 정리하기는 힘들다. 훨씬 복잡했다. 북한이 당시 영변 플루토늄 핵 시설을 동결하면서도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초기 단계로,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 종식이 정당했다’라고 할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더욱이 북한 역시 미국 측이 기본합의와 관계 정상화에 대한 북·미 공동 코뮤니케(2000년 10월)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었다. 기본합의가 나온 클린턴 행정부 당시 난관은 2000년 말까지 해결됐거나 거의 해결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로 집권한) 부시 행정부는 2001~ 2002년쯤, 기본합의를 폐기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갖고 있었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조치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약속(북·미 관계 정상화)과 분명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의 관계 정상화 약속을 ‘진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민수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이 또한 국제적 사찰을 통해 감시돼야 한다. 미국과 한국인들은 북한의 비핵화를 좀 더 완전히 검증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북핵의 민수용 전환’ 조치는,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잃을 게 너무 많아지는 단계까지 충분히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의 민수용 전환과 비핵화 조치들로 인해 더 많은 혜택을 얻게 될수록 (미국과의 합의에서 이탈할 때 치르게 될) 대가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잠재적 핵 능력 보유와 관련해 무엇보다도 수천명에 달하는 북한 핵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거취 문제가 있다. 이들이 북한 땅에 있는 한 김정은 정권은 어느 때라도 이들을 활용해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수 있지 않겠나?

(핵 프로그램의) 민수용 전환을 통해 이들의 거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핵시설 해체와 청소를 돕는 일뿐 아니라 원자력 의료 및 전기 발전 등 조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 영변 핵단지를 여러 차례 방문할 때 나는 북한 핵 담당 관리들과 토론을 한 바 있다. 당시 그들은 자국의 핵 기술자들이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기여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나타냈다.

ⓒAP Photo2008년 2월14일 북한을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재처리 공장에서 분리된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당신이 비핵화 방안으로 제시한 10년 로드맵은 ‘완전한 비핵화’보다, 북한의 핵 위협을 상당히 감소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나?

이 로드맵은 단기와 장기의 조치를 통합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당면한 최대 위협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군사적 위협을 제거한다. (북·미 양국 간에) ‘협력적 전환’이 이뤄진다면, 북한에 민수용 핵 및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동시에 군사적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핵탄두 혹은 핵무기를 북한에서 반출하는 등 구체적이고 신속한 비핵화를 원한다. 가능한 일인가?

핵무기를 북한 바깥으로 반출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우발적인 핵폭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핵무기를 조립했던 바로 그 북한 기술 전문가들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해체해야 한다. 플루토늄 혹은 고농축 우라늄 폭탄 연료 이외의 모든 부품들은 상당히 쉽게 해체할 수 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은 북한 바깥으로 선적되거나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돼야 한다. 신속한 비핵화에 관해 언급하자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당장엔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북한이 추가로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등을 감행하지 않으며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도 추가로 생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핵화 행동의 일부를 북한이 먼저 취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북한은 핵 실험장을 폐쇄함으로써 이미 일부 그런 조치를 취했다.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에 대한 영구적 불능화 조치 등 여러 다른 행동이 곧바로 뒤따를 수도 있다. 이런 행동들이 이뤄지면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비핵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

앞으로 2년 남짓 남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미국이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비핵화 목표를 뭐라고 보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주도로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인 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고 한반도를 전쟁 직전에서 구하는 가장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2년 동안 민수용 핵 프로그램을 위한 협력적 전환을 지지한다면 북한 핵 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위협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지난 70년간의 적대감을 종식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트럼프 행정부에겐) 역사적인 성취가 될 것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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