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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고립된 가정 의심하고 살펴보라

2018년 07월 24일(화) 제566호
예테보리·글 변진경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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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아버지는 성인이 되어 자기 딸을 때렸다. 고립된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문제를 제기한 영화 <에이니의 숲>은 감독 한나 스쾰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에이니의 할머니는 미혼모였다. 아버지는 이모를 엄마로 알고 자랐다. 아버지의 이모부는 이모와 아이들을 때렸다. 성인이 된 아버지도 딸 에이니를 때렸다. 아버지는 매를 들고 난 뒤 속삭였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이니가 아버지의 세계에 불을 지른 채 바깥 마을로 빠져나가기까지, 영화 <Granny’s dancing on the table>(2015)의 앵글은 단 한 번도 에이니의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2016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에이니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이 영화의 감독 한나 스쾰드 감독(사진)을, 지난 5월16일 스웨덴 예테보리 시 예테보리 대학 발란드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고립된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문제를 제기한 이 영화는 한나 스쾰드 감독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스웨덴에도 여전히 자녀 체벌과 같은 가정 내 아동학대가 벌어지나?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스웨덴 사회에는 이 문제에 대한 ‘거대한 침묵’이 존재한다. 체벌금지법이 있지만, 혹은 그 법이 있기 때문에 가정 내 폭력에 관한 질문은 너무 큰 금기(터부)가 되어버렸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때리면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이건 불법이니까 알려지면 우리를 격리시킬 거야”라고 아이들 입을 막는다.

ⓒ시사IN 조남진
한나 스쾰드 감독은 “아이들의 권리를 높이는 것이 모든 사람의 권리를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체벌금지법이 없다면 나을까?

그건 아니다. 여전히 체벌을 금지하는 법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의 고립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개인화·핵가족화하면서 가족도 점점 작은 단위로 축소되고 외부와 단절되고 있다. 열리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니 부모와 아이만 남아 고립된다.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스웨덴은 그래도 가정 내 아동보호를 위한 지원과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

사회복지사들이 가정에 개입하고 있지만, 문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개입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 십상이다. 아무리 예방하고 관리한다 해도 국가의 정책이나 공공서비스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고립도 아동학대인가?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아이를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두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아이가 바깥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 외 누군가 한 명은 아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스웨덴은 짧은 시간 안에 가정폭력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손자 손녀 세대의 삶은 꽤 다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윗세대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에이니의 할머니가 미혼모로서 겪은 문제, 에이니의 아버지가 겪은 폭력이 가정 내 트라우마가 되어 후손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우리 스스로 쉽게 알아채지 못하지만 분명히 구세대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런 유산을 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녀 체벌에 관해 금기시하지 않고 입을 열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도 그동안 숨기고 있다가 이 작품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내 경험을 얘기할 때 치유가 되고 힘을 얻었다. 폭력의 피해자든 가해자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왜 아이가 맞지 않아야 할까?


아이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 자연 파괴, 전쟁…. 세상의 모든 폭력을 끊을 수 있는 다음 세대가 바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의 권리를 높이는 것이 곧 다른 모든 사람과 생명체의 권리를 높이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먼저 폭력을 겪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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