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2004)은 누가 봐도 ‘미스터 인크레더블’이 주인공이다. 지난 15년 동안 보험회사 평사원으로 살아온 그가, 알고 보니 왕년의 슈퍼 히어로. 하지만 초능력자 슈트를 벗으며 세운 은퇴 후 인생 설계는 그에게 권태와 무기력을 안겼을 뿐이었다.

다시 히어로가 되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는 그래서 달콤했다. 뱃살부터 줄이려고 피나는 하드 트레이닝에 돌입한 아빠. 낡은 경차를 멋진 스포츠카로 바꾸고, 그동안 잘 놀아주지 않던 아이들과도 기꺼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저씨에서 ‘상남자’로 돌아온 남편을 아내 역시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한번 이불 속으로 들어온 그이를, 웬만해선 침대 밖으로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브래드 버드 감독이 고백했다. 실은 어른들의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기획한 영화라고. “일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감독 자신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기보다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어른의 이야기였다. 특히 다시 되찾은 남자의 전성시대가 포인트. 아빠를 응원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기를 살리는 아내가 서포터.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감독은 스타가 됐다. 그로부터 14년 만에 속편이 나왔다.

〈인크레더블 2〉는 누가 봐도 ‘엘라스티 걸’이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보험회사 평사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그녀 역시, 우리 모두 알다시피 왕년의 슈퍼 히어로. 초능력자 슈트를 벗고 선택한 전업주부의 삶은 가사 노동과 육아 부담을 안겼을 뿐이다. 다시 히어로가 되어본 1편의 경험이 남편 못지않게 짜릿했다. 온 가족이 함께 ‘가업’을 잇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세상이 슈퍼 히어로를 원치 않는다. 악당이 파괴한 도시는 보험으로 처리하면 될 일, 괜히 나서서 일만 복잡하게 만든다며 싫어한다. 일감이 없는 히어로는 그냥 실업자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 파워를 가졌지만, 딱 하나, 생활고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남편은 곧 죽어도 다시 직장인으로 사는 건 싫다고 한다.

실패를 모르는 애니메이션 감독

바로 그때, 돈 많은 후원자가 등장한다. 여론을 반등시켜 ‘히어로 합법화’를 이루겠다는 계획. 거칠고 힘만 세 보이는 남성보다는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의 여성을 앞세우는 게 마케팅 전략이다. 그리하여 엘라스티 걸이 홀로 활동을 재개한다. 경력 단절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다시 ‘일하는 여성’이 된다. 남편은 호기롭게 말한다. 집안일은 걱정 마. 까짓 거, 내가 하면 되지 뭐.

“까짓 거.” 그 한마디로 절대 눙칠 수 없는 게 바로 가사 노동과 독박 육아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신나는 코믹 어드벤처로 풀어낸다. 진정한 슈퍼 히어로는 알고 보니 여성이라는, 자칫 어설픈 선생질로 그치기 쉬운 이야기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톤 앤드 매너로 슬기롭게 녹여낸다. 1편을 특히 사랑하게 만들었던, 액션의 속도감과 장면의 리듬감도 여전하다. 마이클 지아치노의 음악은 이번에도 신의 한 수이고, 막둥이 잭잭의 귀여움 앞에선 누구나 무장해제된다. 브래드 버드의 애니메이션은 실패를 모른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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