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난민영화제에서 상영된 〈나이스 피플〉은 스웨덴의 작은 도시 볼렝에로 망명한 소말리아 난민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인구 4만명인 작은 도시에 3000명이나 되는 난민이 몰려오자 지역 주민들의 난민 반대 정서가 예사롭지 않다. “소말리아인은 나쁘다. 3000명이 대체로 다 그렇다”라며 노골적인 반감과 혐오 감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파트리크라는 한 볼렝에 시민이 “어떻게 하면 스웨덴 사람과 난민이 서로 대화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난민 청년들로 구성된 ‘밴디’ 팀을 만든다. ‘밴디’는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경기다. 빙판에서 스케이트도 타본 적이 없는 적도 출신 청년들의 밴디 세계대회 도전에 볼렝에 시민들은 반신반의한다. 게다가 대회 개최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세상 어디든 선한 의지를 갖고 모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있는 법. 자원봉사자로 나선 스웨덴 밴디 코치들은 미끄러지는 청년들의 손을 잡아주며 서로를 알아간다. 삶이 뿌리째 흔들렸던 난민 청년들은 빙판에서 몸만 일어서는 게 아니라 무너진 마음과 신뢰까지 서서히 일으켜 세운다.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속눈썹에 하얀 눈꽃을 달고 경기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패배는 명약관화하다. 관심은 스코어 차이일 뿐. 경기마다 13-0, 12-0으로 완패하던 난민 팀은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에 22점을 내주고 소중한 1점을 쟁취하는 ‘개가’를 올린다. 볼렝에는 물론 스웨덴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환호했으며 볼렝에 시민들은 시가행진과 파티까지 열어 그들을 격려했다. 난민과 볼렝에 시민들 간의 꽉 막혔던 마음의 장벽을 밴디 한 골이 뻥 하고 뚫어버린 것이었다.

 

 

ⓒ 다큐멘터리 〈나이스 피플〉 캡쳐

 

 

 


콩고 출신 난민 미야 씨는 에코팜므라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다. 2004년 난데없이 밀어닥친 정치적 박해를 피해 007 작전 같은 모험 끝에 비행기를 탔고, 기내에서야 자신이 한국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콩고에서는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정도로 인텔리 여성이었던 그녀는 한국에 온 뒤 한동안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만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미야 씨의 한국에서의 삶은 한 난민단체 활동가를 만나면서 180°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어 강습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후 난민 여성들이 자존감을 갖고 한국 사회에서 어엿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뭔가’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공모전의 상금을 모으고 재능기부를 받아 난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술 및 공예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야 씨를 비롯한 난민 여성들은 그림 그리기와 바느질을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치유됨을 느꼈다. 말이 안 통하는 한국인들이 작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때는 피난 과정에서 직면했던 고통이 어루만져지는 것 같았다.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공감하는 경험

미야 씨는 한발 더 나아가 아프리카 동화구연을 하고 이야기 콘서트를 열었다. 도우려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했던 한국인들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공감하는 경험을 맛보고 돌아갔다. 요즘 미야 씨는 아예 에코팜므의 활동가로서 콩고의 문화를 소재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음식도 전파하는 문화 전령사로서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다른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소말리아 난민 청년이나 미야 씨의 경우 폐허 같은 환경에서나마 작고 소박한 일상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나눈 시민들과 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난 덕분이었다.

성경의 히브리서 13장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그네에서 천사로의 변모.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마음과 달라진 태도에 달려 있는 듯하다.

기자명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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