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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소나기처럼 산사에 내린 축복

2018년 08월 02일(목) 제567호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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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 7개 사찰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불교계의 자랑만은 아니다. 누구든 산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산이 있는 곳에 절이 있다. ‘산사’다. 가을밤 산사 음악회가 열리거나, 하룻밤 묵어가는 템플 스테이를 체험하는 곳이다. 최소한 등산 중에 한 번쯤 들렀을 수 있다. 불교 신자든 아니든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해서 달리 볼 것이 있을까 싶은 공간이다.

인류가 보호해야 할 문화·자연유산을 선정하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 기구)는 한국의 산사를 특별하게 봤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했다. 유네스코는 6월30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7개 사찰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석굴암·불국사, 종묘,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에 이은 한국의 13번째 세계유산이다.

ⓒ시사IN 이명익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통도사는 사찰 내 건축물이 60채에 달하는 웅장한 절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영축산 기슭에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정식 명칭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다. 영어로는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다. ‘산사(Sansa)’가 아예 고유명사로 쓰였다. 산지승원 (山地僧院)은 ‘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무방하다.

사찰은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와 중국·일본에도 많다. 유네스코는 우리 산사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일까. ‘산사’라는 단어 자체가 열쇳말이다. 세계적으로 산속의 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동남아의 경우 탁발(스님들이 무소유를 깨닫기 위해 음식을 얻어먹는 것) 수행을 위해 사찰이 도심 주변 평지에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산사가 사라졌고, 일본은 집에서 출퇴근하는 승려가 많다.

외국 사찰과 달리 한국의 산사는 실제로 승려들이 먹고 자고 밭을 일구며 수행하는 생활과 종교의 터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찰을 ‘절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찰의 역사가 최소 1000년을 넘으면서 창건 당시 형태를 유지한 ‘지속성’도 중요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산사의 건축미 또한 후한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예산 수덕사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 사찰은 왜 빠졌을까. 최근 7개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 뉴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 불교 종단, 정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 위원회’는 등재를 추진한 산사의 선정 기준을 이렇게 밝혔다. 법에 규정된 전통 사찰, 산지에 위치, 국가 지정문화재 보유, 7~9세기에 창건, 사찰 관련 역사적 자료의 신빙성, 원 지형 보존, 선원(승려 교육기관) 운영 등 7가지였다.  

전통 사찰 1000여 곳 가운데 이 모든 기준을 충족한 곳이 이번에 등재된 7개 사찰이다. 해인사와 수덕사의 경우 건설 공사 등으로 원 지형이 훼손됐고, 화엄사는 특정 시기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제외됐다. 불가항력도 있었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점도 있었다. 한두 가지 기준을 벗어나 탈락한 곳만 해도 열 곳이 넘는다. 그러므로 위 7개 사찰만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를 독점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유네스코가 선택한 것은 한국 불교 전반의 가치와 정신이다.

세계유산 등재가 불교계의 자랑만은 아니다. 누구든 산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다. 세계유산 등재를 맞아 이들 7개 사찰을 찾아가봤다. 이번 호에 먼저 영남권 사찰 3곳을 소개한다.

■양산 통도사, 불자들의 성지


폭염이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산사 입구(산문)에 다다르자 기온이 바뀌었다.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길 이름이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였다. 이름을 살짝 바꿔 ‘소나무가 춤추고 바람이 서늘한 길’이라 불러도 될
법했다. 소나무숲 곁에는 장쾌한 계곡이 흘렀다.

산문에서 경내에 이르는 길은 평탄하다. 언뜻 보면 평지에 있는 사찰인 것 같지만 고개를 들면 해발 1000m가 넘는 영축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축산은 고대 인도에서 부처가 설법한 곳이다. 통도사 기록에 따르면 사찰 뒤편 산의 모습이 인도 영축산과 닮아 영축산이라 이름 붙였다. 통도사(通度寺)라는 이름 역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해서 그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통도사는 웅장한 절이다. 산문에서 계곡을 따라 사찰 맨 안쪽까지 0.8㎞에 달한다. 사찰 내 건축물도 60채에 이른다. 유모차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편의시설도 갖춰놓았다. 19곳이나 되는 부속 암자까지 둘러보려면 통도사에서만 며칠을 머물러야 할 판이다.

통도사 하면 떠오르는 건 진신사리(眞身舍利: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다.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진신사리를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곳)에 봉안했다. 그래서 통도사 대웅전은 좀 특별하다. 여느 대웅전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만큼 따로 불상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은 모든 불교 신도의
성지다. 사찰을 안내한 도문 스님은 “통도사를 일컬어 ‘불지종가(佛之宗家)’
즉 사찰 중의 으뜸이라 부른다. 금강계단에서 계율을 받는 일은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율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통도사를 둘러본 뒤 19개 부속 암자 가운데 한 곳인 서운암에 들렀다. 도문 스님은 서운암 오르는 길에 시시각각 변하는 영축산 풍경이 좋다고 했다. 서운암은 스님과 불자들이 담그는 된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자급자족과 수행의 방편으로 시작한 일이 유명해졌다. 높은 곳에 오르니 된장 독 가득한 서운암 뜰과 영축산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서운암에서 내려오면서 아직 18군데 암자를 더 둘러볼 수 있음에 설렜다.

ⓒ시사IN 이명익
경북 영주시 부석사 안양문 너머로 무량수전 지붕이 보인다.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다.
■영주 부석사, 사무치는 아름다움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끝내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고마움에 사무쳤을 뿐이다.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주심포 양식인지, 엔타시스 양식인지까지 알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것, 그 기둥이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 모양이라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무량수전에서 소백산맥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부석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산과 산이 끝없이 너울 치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풍경 앞에 작고한 미술사학자처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자문자답하게 된다.

ⓒ시사IN 이명익
무량수전 안 불상은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부석사 입구인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는 가파른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무량수전 앞에 세워진 안양문(安養門)을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이게 된다. 안양문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뜻한다. 극락세계에 이르러 만나는 곳이 부석사의 중심 전각인 무량수전(국보 18호)이다.

무량수전에는 좀 특별한 불상이 있다. 진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45호)이다. 무량수전 문을 열면 이 불상은 정면이 아니라 측면, 즉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통일신라 시대 문무왕의 명을 받은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만큼 동해바다를 수호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설이 쉽게 다가온다.

무량수전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안양문도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이른바 ‘공포불(拱包佛)’이다. 멀리서 보면 안양문 지붕을 올릴 때 쓴 포(기둥)와 포 사이 빈 공간에 좌정한 부처 형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빈 공간이 부처의 실루엣처럼 보이는 위치가 있다. 그 위치는 각자 키와 시선에 따라 다 다르다.

부석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문화해설사가 알려준 내용이다. 해 질 녘 무량수전 앞에 서면 발갛게 놀이 진다. 너무 진하지 않은 놀이 발아래 펼쳐진 산맥을 따라 은은하게 번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바로 이 무렵 범종이 울리면서 산사를 휘감는다. 여름철로 치면 저녁 7~8시 사이다. 차가 없는 뚜벅이족도 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부석사에서 영주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 8시30분에 있다.

■안동 봉정사, 숭유억불을 견딘 비결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개 사찰이 발표됐을 때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했던 곳이 안동 봉정사였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능가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극락전(국보 15호)을 비롯한 굵직한 문화재가 있는 곳이지만 그 규모가 다른 사찰에 비해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흔하디흔한 조선 시대 고택에 지나지 않는 규모다. 그 때문에 세계유산 등재에서 탈락할 뻔했지만, 역설적으로 여기에 봉정사가 지닌 역사적 가치가 있다.

ⓒ시사IN 이명익
경북 안동시 봉정사의 건물 배치는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 구조와 닮았다.
봉정사가 위치한 안동은 성리학의 중심지였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 아래 봉정사가 무사히 유지될 수 있었던 건 불교와 유교 간 문화 교류에 있었다. 우선 봉정사는 건물 배치부터 소박하고 단정하다. 요란한 단청도 없다. 사대부 가옥의 ‘ㅁ’자형 구조를 닮았다. 입구 관문인 ‘덕휘루(德輝樓, 이후 만세루로 개칭)’의 덕휘는 ‘덕이 빛난다’는 뜻의 성리학 용어다. 퇴계 이황도 봉정사를 자주 방문했다. 이황을 기리는 누각인 명옥대가 봉정사 지척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방한했을 때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보고 싶다며 찾은 곳이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였다. 불교와 유교가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풍경, 맞다.

봉정사에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영산암이라는 부속 암자가 있다. 마치 봉정사의 축소판 같은 ‘ㅁ’자형 암자다. 봉정사의 단정함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우화루(雨花樓)’ ‘관심당(觀心堂)’ 같은 이름을 가진 전각이 방문자를 맞는다. 1989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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