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반대 2차 집회가 7월14일 서울에서 열렸다. 난민 허용을 반대하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에 70만명 넘게 서명했다. 반대 집회에 나온 이들의 현수막에는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절이 단연 돋보인다. 난민 반대자들은 예멘으로부터 온 난민들이 단지 경제적 혜택을 보려는 이유로 국경을 넘었으며, 동시에 여성과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잠재적 범죄자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부 기독교인은 그들이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난민 혐오의 정치를 극대화한다. 그들은 대통령에게 난민이 먼저인지 국민이 먼저인지 양자택일하라고 재촉한다. 국민과 난민을 대립관계에 놓는 ‘폐쇄적 국민주의’가 이슬람 혐오주의와 함께 한국에서도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 가운데 헌법 여러 부분에서 ‘국민’을 ‘사람’으로 대체한, 대통령이 3월에 내놓은 헌법 개정안은, 좁게는 한국 사회 그리고 넓게는 세계가 직면한 다층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담고 있다. 국민이라는 국가적 소속성을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인간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인류 보편 공동체로 확장해나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연합뉴스 14일 저녁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난민대책국민행동이 난민법, 무사증 제도 폐지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세계화가 불러온 지구적 상호 연관성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 즉 양면성을 지닌다. 기후변화의 위기,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새로운 양태의 질병, 그리고 난민 문제는 세계 곳곳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어느 곳에 살든 ‘모든 사람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일상적 현실이다. 이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위기는 이제 어느 한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작은 사회(small village)’가 되어가고 있다.

글로벌 공동체 개념은 모든 사람들이 사실상 두 종류의 소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묘사적 개념이기도 하다. 울리히 벡은 〈코즈모폴리턴 선언〉에서 현대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위험의 세계성(globality of risk)’에 대해 강조한다. 위험 사회로 던져진 인류는 새로운 의미의 국민 또는 시민 개념을 형성하는 절박한 요청에 응답해야만 한다. 다층적 위험과 위기를 공유하는 초국가적 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라는 영토적 경계 안에서만 자유·평등·정의·평화 등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적용하는 것은, 인류가 처한 위험을 공유해야 하는 현재에선 무책임한 정치윤리가 되었다. 국가라는 절대 경계를 넘어서 인류 공동체가 핵심 단위가 되는 ‘코즈모폴리턴 공동체’ ‘코즈모폴리턴 민주주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인간은 두 종류의 소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이 태어난 장소의 소속성과 태양 아래의 소속성이다. 이러한 두 가지 소속성에 대하여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들은 ‘코즈모폴리턴 소속성’이라는 정치철학 개념을 만들었다.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지역 공동체와 세계시민이라는 인류 공동체, 즉 코즈모폴리턴 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21세기 세계 평화를 모색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다.

현대의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함께 살아감’

살아감이란 언제나 이미 ‘함께 살아감’이다. 자크 데리다가 한 말이다. ‘타자들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의 윤리’라는 코즈모폴리턴 원리는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주민들, 즉 이주노동자, 난민, 국적 없는 이들, 또는 망명자 등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적 타자, 인종적 타자, 종교적 타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포용과 ‘함께 살아감’의 차원으로 확장하게 한다.

ⓒ연합뉴스종교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 이란 국적 중학생 B군의 친구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19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공정한 심사를 통한 B군의 난민 지위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개별적 국가들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서 일어나고 있는 현대의 다양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국민’만이 아니라 국적과 시민권을 넘어서는 ‘사람’에 대한 강조는, 21세기 인류 공동체가 ‘영구적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정치적·도덕적 나침판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땅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난민들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며, 우리 모두 그들과 ‘함께 살아감’의 과제를 모색해야 하는 것은 인류 공동체에 대한 사회정치적·종교적 책임이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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