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서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가슴을 부여안았다. 작가의 말까지 읽은 후에는 한참을 훌쩍였다. 그 어떠한 탄탄한 서사도, 이처럼 민낯을 드러낸 사실적 스토리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이 책이 그렇다. 미바와 조쉬 프리기 커플의 〈다시 봄 그리고 벤〉에 이은 두 번째 창작집 〈셀린 & 엘라 ; 디어 마이 그래비티〉.
어디까지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건지 혹은 무엇이 허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는 상처받은 사람들이고 그 치유의 과정이며, 느릴지라도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희망이다.
두 소녀 셀린과 엘라의 성장 드라마로 읽을 수도 있는 그래픽노블 〈셀린 & 엘라 ; 디어 마이 그래비티〉는, 가슴 아프게도 우리 모두의 삶, 상처받은 영혼의 아픈 흉터를 후빈다. 그래서 이 책의 인트로에 적힌 글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언제나 그곳으로 가 있어./ 당신에게 상처를 준 말들이, 나에게 상처가 된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중력이 되어버린 그곳에.’
그토록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끌리듯 돌아온 상처의 근원, 그래비티. 그것은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그리고 어쩌면 꼭꼭 봉인해둔 과거의 나일 수도 있다.
셀린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계 입양아인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슬란드에 산다. 셀린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섞인 감정으로 살면서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갈 꿈을 꾼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록밴드 시규어로스의 음악을 듣는다. 백인들이 대다수인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아픔의 날들 한복판에서 어느 날 엘라를 만나고 둘은 친구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루만져야 할 상처
셀린은 우연히 스쿨버스에서 만난 엘라가 아무런 아픔 없이 사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소녀라 생각했지만, 엘라 역시 아픈 가정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엘라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다. 늘 당차고 긍정적인 어머니와 달리 예민한 엘라에게 이웃들의 관심은 버겁기만 했는데, 그런 그녀 곁에 셀린이 다가온 것이다.
이 책의 글에도 참여하고 그림을 완성한 작가 미바의 노력은 군데군데 빛을 발한다. 함축된 언어, 상상을 증폭시키는 대사. 그런 대사를 채우는 배경의 그림, 각자의 캐릭터를 받쳐주는 색과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는 색채(푸릇푸릇한 색으로 시작했다가, 과거사를 말할 땐 짙은 보라와 갈색 계열을 사용하고, 둘의 사이가 진척될 때는 밝은 분홍색을 배치하는 등)에서는 서사를 배려한 작가의 세심한 의도가 돋보인다. 맨 처음에 읽을 때는 스토리에 집중하고, 두 번째는 그림에 집중하게 되는데, 어떤 컷은 따로 확대해 보관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책은 작가가 구상하는 4부작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이 두 소녀의 관계가 동성애로 이어질지 아닐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고, 과연 셀린이 아버지를 만나 화해하는 기적이 일어날지 아니면 미완의 숙제로 남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전작에서 보여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껴안는 상처, 고통스럽지만 꺼내어 어루만져야 할 상처, 그래서 세상을 향한 따듯한 시선을 계속할 것이라는 믿음만은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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