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는 그랬다. 껌을 돌리며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소리쳐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주머니를 뒤져서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털어 주었다. 뭔가 불공정하다 느꼈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20대. 어설프게나마 눈뜨기 시작한 사회에 대한 의식은, 1000원짜리 한 장을 건넸던 내 행동을 그저 값싼 동정이나 자기만족 정도로 전락시켰다. 거대 독점 권력과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한 싸움만이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이라 여겼다. 그 후 거리에서 동냥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주머니 속 작은 돈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직장에 들어간 30대에는 10대 때의 순수한 동정도, 20대의 치열한 싸움도 없었다. 순수한 마음만으로 행동하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했고, 사회 변화에 열정적이기에는 내 생활이 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보고 들은 건 많아 비판적이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죽지 않은 입만이 불의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40대. 누누이 들어왔던 불혹이기도 했고,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사장이 되기도 했다. 세상은 더 ‘불의’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고 감동적이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나에게 무엇이라도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큰 목소리가 아닐 바에는 결국 일신의 안위를 위할 뿐이라 여겼던 나에게, 큰 목소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웃과의 커피 한잔만으로도 얼마든지 떳떳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은 지인이 얘기했다. “이 책은 안 팔릴 거 같아.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그러기엔 우리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잖아? 주변을 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러니까 필요한 책이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책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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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말은 세상을 향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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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형 MBC 아나운서는 끝끝내 험한 말을 쓰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에 맞서다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아나운서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힘들게 했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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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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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자만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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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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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가운데 [밤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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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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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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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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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을 따를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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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석 (도서출판 항해 대표)
직관(直觀)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가령 특정 기기의 조작 편의성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사용법이 ‘직관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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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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