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더위가 절정이던 때 선생이 돌아가셨다. 2012년 8월1일, 국내 최고 라틴아메리카 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이성형 교수(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암 투병 끝에 53세 나이로 숨졌다. 추모는 결국 산 자를 위한 ‘위로’라 여기면서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선생만을 생각하는 그 시간이 좋아 기일이면 납골묘를 찾았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까만 옷을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면 여름의 한가운데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지도 벌써 6년째다. 선생은 2008년 석연찮은 이유로 이화여대 교수직 재임용에 탈락했고, 이것이 그의 생 마지막을 규정하는 중요 사건으로 남았다.
선생의 삶을 좌절로만 기억하진 않지만, 재임용 탈락 후 그가 겪은 고통을 짐작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일개 학생이었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종종 후회가 차올랐다. ‘그 불행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의 옆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의 소중함을, 그렇게 꼭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깨닫는 일만은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대화 교수로 대표되는 어떤 승리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정 교수는 김문기씨가 다시 총장이 된 상지대 문제의 중심에서 싸웠다. 2014년 12월 파면당한 그는 수업은 물론이고 연구실의 전기와 난방까지 빼앗겼다. 학기 중에 쫓겨난 선생을 둔 제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학교 측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대체 강사를 거부한 채, 천막 수업을 자청했다.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2016년, 정 교수는 상지대의 부당한 파면에 맞선 소송에서 이겼다. 복직된 그는 지난해 8월 총장직무대행을 맡았다. 지난 6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 위원으로도 임명됐다. 사분위가 이름과 다르게 비리 사학의 편을 들어주는 퇴행적 결정을 할 때마다, 이에 항의하며 단식하고 삭발하고 농성을 벌였던 그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놀라운 변화다.
“사분위 안팎에서 10년을 지킨 내가 진짜 전문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정 교수가, 이 몇 걸음의 전진을 잘 가꾸어가길 기대한다. 본의 아니게 사학 민주화의 상징이 된 그를 잠시 옆에서 목격한 이로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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